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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 | 김미진 / 육화된 마스크의 변주와 코라의 공간

김성호

김미진 작가론 
육화된 마스크의 변주와 코라의 공간


김성호 (미술평론가)


김미진의 작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수성(獸性)과 그 원시적 물신(物神)을 인격화하는 애니미즘(animism), 그리고 불가해한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의 원초적인 존재 욕망 사이를 주술(呪術)로 매개하는 샤머니즘(Shamanism)이 일렁인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 세계가 인류 시원의 문화원형을 찾아나서는 침묵의 문화인류학임과 동시에 내면의 깊은 세계로 침잠하는 직관의 감성학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육화된 마스크의 변주

김미진의 작품에서 ‘마스크(mask) 시리즈’는 주목할 만하다. 마스크는, 한자어 ‘가면(假面)’이 알려주듯이,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만들어 쓰는 ‘가짜 얼굴’이다. 그녀가 진짜의 얼굴을 감추고 가짜의 얼굴을 드러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왜 이것에 관심을 기울일까? 

생각해보자. 원시시대에 가면은 수렵 대상인 동물들을 기만하는 현실의 변장용이었거나, 살상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애니미즘의 제례용이었다. 또한 그것은 동물에 내재한 것으로 믿는 주력(呪力)을 ‘육화(incarnation)’하여 축사(逐邪)와 기복(祈福)을 도모하려는 샤머니즘의 주술(呪術)용이었다. 따라서 대개 그것은 현실계의 인간을 동물과 융합하여 과장한 무엇이거나 상상계의 몬스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원시적 마스크(primitive mask)는, 눈 혹은 얼굴만 가리는 고전적 마스크(classic mask)와 달리, 대개 전신을 둘러싸는 위장복이다. 

김미진의 마스크는 이러한 원시적 마스크의 형식을 계승한다. 그녀의 마스크 시리즈 작품은 머리, 몸통, 팔, 다리가 분리 착용 가능한 전신의 ‘마스크-의복의 융합형’으로 만들어졌다. 양자가 다르다면, 역사상 실재했던 마스크들이 현실 속 ‘자기보전’을 위한 도구적 ‘유용’을 지향했다면, 그녀의 마스크는 예술 속 ‘자기확산’을 위해 도구적 ‘무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쓸모’를 접고 ‘쓸모없음’을 지향하는 그녀의 가면은 “스스로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가 되어 보고자 하는” 단순한 바람으로 시작된 것이다. 

달리 말해 그녀에게 있어 가면은 ‘현실계에서 실현 불가능하지만 상상 가능한 예술적 변주’가  실천되는 장(場)이다. 보라! 그것은 작품 〈악몽(Nightmare)〉(2008)에서 여러 날개를 가진 곤충이 되거나 작품 〈뿌리(Racine)〉(2008)에서 뱀처럼 꽈리를 틀고 있는 식물이 된다. 새와 뿔이 달린 동물의 기이한 합체가 되게 만드는 작품 〈둥지(Nid)〉(2007)나 구약 전승의 ‘요나의 고래’로 변환시켜주는 작품 〈고래(Baleine)〉(2008) 또한 김미진의 ‘또 다른 생명체 되기’의 상상을 넉넉하게 예술로 실천한다. 주름이 잡히는 연성의 직물류와 견고한 세라믹, 철 등이 결합되어 구현된 그녀의 가면은 인간 의복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가면의 변이 주체를 상상하고 과장함으로써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드러낸다.     
  
그 변이의 과정이란 들뢰즈(G. Deleuze)의 ‘~되기(devenir)’라는 철학의 예술적 실천에 버금가는 것이라 하겠다. 존재의 방식을 변용(affection)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이것은 인간으로부터 대상화된 모든 존재를 동등한 차이의 주체로 되살려낸다. 위계화 된 질서 아래 한 인간 주체로부터 대상화된 곤충, 식물, 동물, 나아가 소년, 노인, 그, 그녀, 외국인, 소수자에 이르는 모든 타자와의 ‘상호 변용’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되기’의 변용 철학은 그녀의 작품에서 애니미즘이라는 물활론(物活論)과 샤머니즘이라는 원시성에 근간한 생성 미학으로 변주된다. 그녀의 가면이 시도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몬스터와의 상호 변용을 보라! 그것은 다분히 문예적이다. 그것은 들뢰즈보다 어떤 면에서는 크리스테바(J. Kristeva)의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는 비평 개념에 더 가까이 내려와 있다. 김미진의 가면이 관객으로 하여금 “주체도 아니고 대상도 아닌 제3의 존재”를 가상 체험케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품 〈두 머리(Deux-tetes)〉(2007)는 ‘머리가 두 개에 몸은 하나인 동물의 형상’인데 관객은 이 가면을 ‘입음’으로써 비로소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과 만나게 된다. 즉 두 개의 머리를 지닌 몬스터에 자신의 또 하나의 머리를 포함시키면서 관객은 비로소 현실계에선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애니미즘/샤머니즘과 육화된 제 3의 존재 몬스터로 변주하게 되는 것이다.




Kim Mijin, Cockscomb (mask 5), 2007, ceramic, fabric (screen printing), fringe, tulle, 60x100x25cm




Kim Mijin, Deux-ttes (two heads, mask 6), 2006, button, copper wire, fabric, lamb fur, metal, 140x130x30cm




Kim Mijin, Chauve - souris(mask 8) , 2013, aluminum, ceramic, cotton, fur, ruban, stone, 95x175x54cm



아브젝시옹과 코라의 공간 

주지하듯, 마스크는 종종 페르소나(persona)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이성적 본성, 즉 인격을 지닌 개별적 존재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변환되어왔다. 융(C. G. Jung)에 의해서 ‘외적 자아’로 고찰된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어진 자아’, 즉 ‘타인에 의해서 발견되는 자아’이다. 김미진의 가면은 이러한 페르소나의 내/외적 한계를 탈주하는 육화된 마스크이다. 즉 자신과 현실 사이에서 인터페이스(interface)로 매개되는 제 3의 존재인 ‘육화된 가면’(예술)인 것이다. 따라서 은폐와 위장 뒤로 숨은 듯이 보이는 그녀의 예술적 자아는 실제로는 ‘육화된 가면’의 접촉지대를 통해서 이미 타자(관객)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은 지 오래이다. 

‘마스크 시리즈’ 뿐 아니라 일명 ‘평화 성취(Attaining peace) 시리즈’라 지칭되는 일련의 드로잉, 조각, 설치 작품들에서 우리는 그녀의 ‘~되기’의 소망이 페르소나라는 가식의 사회적 가면을 벗고, 탈주하고 있음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후자의 시리즈는 ‘마스크 시리즈’에 드러난 작가의 욕망을 보다 구체화한다. 그것은 ‘육화된 가면’을 넘어서 이미 ‘육화된 타자’로서 주체와 타자의 경계와 관계항을 ‘주체/타자’로 묶어낸다고 할 것이다. 

작품 〈잘려진 조각(Coupure)〉(2008)을 살펴보자. 못과 망치를 이용해서 동물 형상으로 잘라낸 나무판에 빨간색의 과슈(gouache)를 칠한 이것은 이미 그녀로부터 대상화, 타자화된 동물이 더 이상 아니며 ‘주체로 육화된 타자’, 즉 주체와 타자의 구분이 모호해진 ‘주체화된 타자’ 혹은 ‘주체/타자’라 할 것이다. 여기서 버려지듯 쌓여진 알 수 없는 동물 군집의 존재는 주체/타자, 죽음/삶의 경계를 탈주하는 존재가 된다. 다른 작품 〈일화(Anecdote)〉(2008)는 자동기술법으로 접근된 즉발적 드로잉이다. 곤충과 식물이 합체된 이것은 곤충이자, 이미 식물이며, 드로잉과 합체된 작가 김미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드로잉이 색종이로 입체화된 작품 〈파리(Flying)〉(2013)는 ‘주체/대상’, ‘주체/타자’가 한 덩어리 작품으로 육화된 ‘김미진/파리’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분명코 ‘비천한 것’(l’abjection)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 그리고 그것과 다시 결합하려는 욕망이 모순적으로 충돌하는 아브젝시옹의 존재이자 그것이 거하는 원형적 모체(母體), 즉 생성의 자궁인 ‘코라(chora,χώρα)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이곳은 주체가 생성되는 동시에 부정되는 장소이다. 즉 ‘주체/객체’, ‘자아/타자’라는 ‘생성 과정 중의 주체’가, ‘타자를 욕망하는 주체’가, 경계선을 탈주하는 ‘혼성의 몬스터’가, 위계를 무너뜨리는 ‘비천한 것의 광기적 변주’가, ‘죽음 안에서 생성(genesis)’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김미진의 설치 작품 〈살아있는 무덤(Tombe vivante)〉(2005)은 이러한 죽음과 삶이 맞물린 코라의 공간을 동화적으로 그려낸다. 무덤 속에 은폐된 생명의 씨앗이 계속되는 생명체의 잉태를 유발한다는 그녀의 상상은 이러한 ‘코라’의 공간을 지키는 근위병인 9마리의 사슴들과 생명의 불꽃을 담은 화산들을 통해 실감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훗날 〈사슴벌레(Cerf-volant)〉(2009)라는 이름으로 야외 현장에 변형 설치될 만큼, 그녀에게 주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죽음에서 삶을,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우리는, 고통의 순간을 시각화한 그녀의 또 다른 작품 〈고통 막기(Anti – douleur)〉(2008)에서, 인간 육체를 상징하는 파편화된 오브제들의 재배치와 변주를 통해서 고통과 치유의 접점을 찾고 있는 그녀의 예술관을 목도하게 된다. ‘고통/치유’가 우리의 현실계의 삶이고 그것이 곧 예술에 다름 아님을 성찰하고 있는 김미진의 예술관을 말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원시의 애니미즘과 문화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이 현대에 내려앉은 김미진의 작품 세계는 ‘육화된 가면과 ~되기의 생성미학’과 ‘코라의 공간과 주체/객체를 허무는 융합의 아브젝시옹의 존재’를 통해 원초적 욕망이 자유롭게 탈주하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



Kim Mijin, Nid (Nest, mask 4), 2007, cotton, fabric (screen printing), lamb fur, wrought iron, dimension variable




Kim Mijin, B.A.-BA., 2012, ceramic, beeswax, dimensions variable



출전/
김성호, 「육화된 마스크의 변주와 코라의 공간」, (김미진 작가론),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 자료집』, 201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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