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전시 비평, 완펀치-형님전, 2013. 10. 11~10. 24, 대안공간눈
둔탁하지만 매서운 '한 방의 펀치' (1편)
김성호(미술평론가)
무명(無名)씨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것은 미술현장에서 이름을 떨치지 못한 아마추어 혹은 신진의 전시가 아니라 이미 한국의 예술 동네에서 작가적 역량을 검증받은 유명(有名)한 중견 작가들의 전시이다. 그런데 웬 무명씨인가? 우리는 이러한 무명 아닌 유명 작가들의 '스스로 무명 되기에 관한 전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전시취지에서 곱씹어볼 수 있다.
'목표를 향하여 앞만 보고 달렸던 기억을 공유한 세 사람이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변태를 도모해 보려한다.'
그것은 출품작가 3인이 자신의 작가명을 내려놓고 익명의 자격으로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무한 자유를 만끽하는' 전시임과 동시에,개별 작가들의 자유로운 전시 결과물에 대해 서로가 '연대의 무한 공동책임을 지니는' 전시를 지향한다. 달리 말하면, 이번 전시는 한편으로는 중견작가들이 익명 속에서 원초적인 표현의지를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 실험의 장이자, 한편으로는 공동의 의미론적 함의와 예술적 메시지를 하나의 주제 아래 수렴하는 발언의 장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몇 개의 소테마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형님이란 이름
3인의 작가들을 공동창작이란 이름 아래 모이게 한 화두는 '형님'이라는 글자 속에 한가득 녹아 있다. 주지하듯, '형(兄)'이란 용어는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인척이 아니든, 항렬이 같은 남자들 사이에서 '나이 어린 남성 주체'가 손윗사람을 존칭의 비교급으로 호명하는 용어이다. '형님'은 결혼한 여성이 손위 시누이나 동서를 이를 때 사용하기도 하는 등 쓰임새가 무척 다양하다. '형님'보다 격이 낫고 친밀한 의미로서 사용되는 '형'이란 용어는, 심지어 여성이 자신보다 어느 정도 연배가 많은 남성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의 대명사만큼 특이한 용어가 된다. '우리'라는 말의 과도한 친밀함이 '우리 남편'과 같은 불가능한 용어 조합을 일상으로 사용하게 만들었듯이, '형'은 한국 사회에서 친밀함의 대표적 언어로서, 문법적 엄밀함을 배제한 채 곧잘 사용된다. 즉, 나이가 엇비슷한 상대편을 배려해서 사용하거나, 아예 나이 많은 선배가 나이 어린 후배들에게 친밀한 감정 반, 우대의 의미 반으로 사용하는'형씨(兄氏)'라는 특이한 이인칭 대명사나 '김 형(金 兄), 박 형(朴 兄)' 등의 호칭이 그것이다.
따라서 '형'의 존칭으로서의 '형님'은 혈연, 지연, 학연 등 한국의 인맥사회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결속시키고 그것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대표적 호칭으로 기능해왔다고 할 것이다. '형님'은 건달들의 집단에서는 물론이며 동문 집단, 취미 동호회에 이르기까지 부권사회 속 공동체에 만연한 손윗사람들에 대한 친밀함과 예(禮)를 겸비한 호칭으로 사용되면서, '아우들'이 뒤따르고 있는 기대치를 수렴하고 그들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유무형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형님'을 화두로 내세우는 이번 전시는 피보다 진한 의리 속에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오늘도 끼리끼리의 문화를 위해 건배하는 '인맥의 한국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적 고발이라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비판적 내용이라는 것이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는 진부한 내용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3인의 작가들이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강조함으로써, 이 전시는 외려 중진에 이르는 세월을 살아온 3인의 참여작가들 스스로의 과거에 대한 자기비판으로서의 참회록이 된다. '자기비판으로 귀결되는 사회비판'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하나의 딜레마이다. 이러한 딜레마조차 비판의 대상으로 기꺼이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둔탁하지만 매서운 한 방의 펀치'가 된다.
'첫 번째 모씨'의 완펀치
'첫 번째 모씨'의 종이 작품에는 한국적 인맥사회에 대한 냉소적 비판과 불안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흰 모조지에 물로 써진 글은 다름 아닌 성경의 텍스트를 변조한 '너희 형님이 너희들을 복되게 하리라.'라는 글귀이다. 물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간신히 읽어낼 수 있는 '아포리즘(aphorism)'으로서의 텍스트는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이라는 것이 '은폐된 채 작동하는 인맥의 질서'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러한 장밋빛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작동하는 교활한 것이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견해처럼 '은밀한 공모로서의 범죄'가 된다. 이 작품은, 기득권자들이 증거를 지우면서 몰입하는 네트워크 구축 놀이이라는 것이 '투명한 절차'라는 변명 아래 언제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범죄임을 우리에게 고발한다.
'첫 번째 모씨'의 또 다른 영상작품에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범죄자일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영상작품은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프롤로그를 연다.: '수원의 양대 인맥은 수성고, 수원고이다.' 이윽고 영상은 양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 형식으로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수성고 건물 영상에 이어 수원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고, 수원고 건물 영상에 이어 수성고 학생들의 등교 모습이 보이는 식으로 전개되는 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팩트(fact)'에 관한 양자의 변별성을 혼돈한 상태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러한 '팩트'의 뒤섞음을 통해 '픽션(fiction)'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팩션(faction)'의 내러티브는 학연이 유발하는 인맥사회의 입장에서 수성고 동문과 수원고 동문의 근본적인 차별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해석을 반증하듯이, 영상의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드리운다.: '수성고, 수원고 학생들은 말하지 않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인맥문화에 속하지 않고 형님 밑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첫 번째 모씨'는 이러한 불안한 예감을 담은 미확정적 답변 언저리에서 나름의 해답을 기성인인 자신에게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 작가의 이전 전시 출품작이었던 환삼덩굴을 빌려와 포대에서 꺼낸 덩어리 상태 그대로 전시장에 설치한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그 단초를 엿본다. 분명코 쓰고 버려진 건초더미란 훗날 자신이 썩어 타자들을 위한 퇴비가 되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유물을 주거나 버릴 수밖에 없는 예정된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도 두 손을 그러쥔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 삶이 죽음을 향해 달음질하는 것임을 자명하게 알면서도 그저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모씨의 이 설치물들은 신진이라는 남아있는 이들의 몫을 위해서 기성인들에게 이러한 움켜쥠의 삶으로부터 손을 놓아보자고 청유하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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