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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동시대를 기억하는 이미지를 재조립한 새로운 산수

하계훈

회화는 일차적으로 재현을 목표로 하므로 작가들은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재현하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적어도 추상회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목표가 화가들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증명해주었으며 추상회화 역시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또 다른 방식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폼페이 벽화에서 발견된 정물화와 풍경화는 이러한 재현의 의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작가들의 유전자로 존재해왔음을 잘 보여준다. 다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많은 작가들이 다채롭게 자신의 방식으로 시각적 재현을 해 온 것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아카데미식의 재현 규범으로 획일화되는 과정이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한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화를 전공한 김봄은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독특한 방식으로 원거리에서 관찰한 풍경을 재해석하여 화면의 구성 요소들을 재배치함으로써 개성있는 화면을 구성해 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림지도를 보는 것처럼 화면 가득 언덕과 숲, 길과 집들이 묘사되고 그 공간의 곳곳에 사람들을 배치하여 마치 그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평면적으로 풀어놓은 시각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행적을 기록한 것같은 이야기를 전개해왔다.

김봄이 재현하는 시각적 경험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다양하게 전개된다.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한 장소에서 오버랩 되기도 하고 실제와 허구의 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남산과 한강, 부산, 그리고 서울의 곳곳을 동양화적 삼단계 원근법이나 서양화의 과학적 원근법에 구속됨이 없이 마치 지도의 형식을 빌어온 듯하게 평면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배열해놓은 듯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화면은 거대한 서사적 내러티브로 읽히기 보다는 마치 지도를 가지고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으로 관람자들이 친숙하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2008년 김봄이 참가한 그룹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는 “숲에서 다양한 시점으로 보고 느낀 부분들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배치하여 잘 짜인 조경 산수를 만든다. 여러 각도에서 보여진 부분들을 조각내어 개별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배치, 재조립 하고, 실제 하는 지형(탑골공원, 종묘, 여의도공원)에 그곳을 상징하는 구조물들을 자연의 구조물들과 혼합한 뒤 균등하게 나열하여 '조립된 산수'를 만든다. 원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본 듯한 화면 구성과 실재 이미지의 생략과 재구성으로 인해 풍경 속에는 부분과 전체, 실재와 허상, 과거와 현재, 디테일과 스케일, 변화와 정지가 공존”하게 하는 것이다.

 

평론가 고충환은 이러한 김봄의 작품에서 일상의 평범한 이미지에 대한 재현을 넘어서서 현대인의 의식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내지는 아이콘의 작동을 읽어내기도 하였다. 그는 김봄이 재현하는 장소는 일상의 평범한 “장소이기도 하고, 각종 이데올로기적 현실과 사건이 부침하는 정치적 풍경이기도 하며,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만나지는 시간이 열어 놓은 전망이기도 하다. 그 장소, 그 풍경, 그 전망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개인사를 넘어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동시대적 역사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김봄의 근작들은 이러한 재현 과정을 거쳐 제작된 채색화와 연필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멀리서 대상을 바라보고 그림지도처럼 채집한 자연의 이미지들을 실제 생활 속의 이미지들과 혼합하여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데, 다시점 화면에 균등하게 배치된 이미지들은 반복적인 산수 이미지들과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생활 이미지들이 교차되어 한 편의 대형 파노라마를 보는 듯하게 전개되고 있다.

 

화면 속의 이미지들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림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동네>라는 제목의 대형 파노라마식 작품 속에는 변두리 어느 곳엔가 위치한 고즈넉한 동네의 일상이 파편화된 이미지들로 제시된다. 낡은 담벼락과 창문,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과 한 곳에 모아둔 연탄재들, 화분에 담긴 가녀린 식물과 돗자리 위에 널어 말리고 있는 붉은 고추, 아직 도시가스 공급이 되지 않아 LP가스통을 사용하는 집들과 가스 공급을 받는 집들의 담벽에 설치된 계량기, 변두리 구명가게 앞에 있을 것같은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와 낡은 간판,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들....

화면 속에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마치 퍼즐 조각의 모습 혹은 아무렇게나 잘라 놓은 접시 위의 빈대떡 조각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물의 형태의 크기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의 화면으로 연결할 수 없는 이미지 파편들이 그 사이사이에 개입되는 초록색 숲의 이미지에 의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며, 고전적 산수와 현대적 도시풍경의 이미지들이 거부반응 없이 하나의 전체로 어우러지는 신비스런 매력이 김봄 작가의 재현 능력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김봄의 작품과 유사하게 다양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화면 안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배치되고 그 사이를 그래픽 기법으로 구획하는 작품들은 이전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그러므로 김봄의 작품이 새롭게 등장하는 형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김봄의 작품은 이러한 형식으로 앞서 시도되었던 작품들과 달리 화면을 기하학적으로 구획하거나 이미지의 기계적 반복에 의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김봄의 작품에서 재구성된 이미지들은 사이사이로 표현된 숲의 형상에 의해 우리가 산수화에서 발견하는 자연스런 풍경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유지하면서 그 사이사이로 재조립된 이미지들을 읽어감으로써 작가가 제시하는 화면의 공간이 완전하게 인위적 배열과 공간적 허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어딘가에 있는 공간(혹은 그 공간은 관람자의 경험에 따라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의 생생한 현실이 될 수 있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함께 출품된 또 다른 작품 <어떤 동네>에서는 어느 변두리 동네에 재개발의 거대한 파도가 문턱까지 들이닥친 모습을 보여준다. 낡고 나지막한 집들이 전면에 웅크린 듯하게 모여있는 배경에 키큰 아파트들과 송전탑이 이들을 몰아내려는 듯이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화면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카메라 렌즈에 의해 왜곡된 어느 동네의 골목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전개된 화면은 조립된 산수와 같은 이미지의 조합과는 사뭇 다르게 좀 더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풍경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도시의 확산에 의해 사라질 운명에 놓인 변두리 동네의 옛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일 수도 있고, 또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한낮의 텅 빈 거리에 멀리서 개 한 마리가 관람자쪽을 응시하는 형이상학적 화면을 구성하는 초현실주의적 환상의 공간일수도 있다.

 

함께 출품된 연필 드로잉 <진안>은 김봄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화면 속의 장소를 특정해주고 있다. 진안이라는 제목에서 더 나아가 화면 우측 상단에는 구체적인 정자와 마을의 위치를 안내하는 이정표까지 등장한다. 채색이 배제된 채 연필 드로잉만으로 세밀한 묘사를 시도한 이 작품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유도하는 듯하다. 배경의 원경에는 현란한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서있고, 중경의 구릉에는 커다란 호수와 몇몇 집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풍경은 좀 더 완만한 전경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 화면 속에는 허공으로부터 내려진 줄에 그네를 타는 사람과 작은 나무를 걸쳐 놓은 냇물을 곡예하듯이 건너는 사람, 울타리 기둥에 묶인 채 이쪽을 바라보는 커다란 개, 그리고 짐칸에 앉아 일터로 가는 듯한 사람들이 배경과 주변 사물의 비례를 무시한 채 그려져 있다. 아마도 이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거나 작가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동물이 작가의 기억에 떠오르는 비중에 의해 화면 속의 비례를 무시한 상태로 표현되어 있는 것같다.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재현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현을 통해 궁극적으로 작가는 관람자와 모종의 소통과 교감을 이루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학습한 것처럼 시대에 따라서 작가의 작품 속 이미지의 재현이 때로는 종교적 함의를 지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세속의 권력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 어디인가를 특정할 수 없는 장소, 서식처를 밝혀낼 수 없는 동물과 식물 등은 화면에 등장할 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그림들은 보는 이가 쉽게 알 수 있는 궁전과 교회나 유명 사건의 현장, 한 번 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인물들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필요에 의해 그들은 사실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사실적 표현을 넘어 이상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어느 하나도 영웅적 자태를 뽐내거나 거대한 담론을 유도하는 위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김봄의 화면 속에 표현된 산수와 인물,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들은 마치 지도 위의 기호처럼 자신들의 좌표를 지키고 있을 뿐이며 이미지 하나하나의 의미를 읽기보다는 전체로 통합된 이미지를 통해 하나로 구성되는 현실의 인식과 역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방법적으로 전통적 산수의 방법론을 현대적 감각과 조형어법으로 응용하여 우리 시대의 산수화를 제작하였으며 그 안에서 작가가 체험하고 느꼈던 감각들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새롭게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의 산수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기는 숲과 다양한 이미지 속에 자신의 영혼과 의식을 담아내려 하였으며 그렇게 제작된 작품을 가지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면서 그들과 함께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를 기억하고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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