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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숙 / 창작의 근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점

하계훈

권시숙의 이전 작품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가벼운 충격이며 놀라움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시숙은 이제까지 주로 한지에 먹을 사용하여 수묵화나 채색화를 솜씨있게 제작해왔기 때문에 작가의 지인들은 이번 전시회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의 작품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우선 재료 면에서 이전의 한지나 먹과는 전혀 다른 캔버스와 아크릴, 그리고 색종이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표현 방법과 주제에 있어서도 붓의 움직임과 먹색의 농담이나 스밈의 조화를 추구하던 이전의 작품과 자연스런 연결고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져 있다.

 

예술품을 창조하는 작가에게 일률적이고 절대적인 창작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밝혀졌다. 과거 서양의 살롱전이나 아카데미의 교육방식,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에서 19세기 후반무렵부터 진행되어 온 관주도의 미술행사에서 적용하던 창작의 기준과 원칙은 21세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잘못이 증명되고 그 원칙이 폐기되었다. 이제 작가의 창작활동에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늘날 작가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창의적인 발상과 자유로운 사고를 담은 완성도 높은 형식의 작품일 것이다.

 

권시숙이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상으로 이러한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킨 배경은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가는 한국화에서 아직까지 고집스럽게 유지되고 있는 스승과 제자의 가르침을 둘러싼 형식적 실험의 한계와 작품상에 드러나는 표현의 유사성에 대한 평가 논리가 작가를 숨막히게 한 것같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깨닫게 된 창작의 근본적인 의미, 어느 순간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작가로서의 출발점에 대한 환원과 회귀를 지향하는 자세,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현재의 좌표를 수정하는 계기, 이러한 것들에 대한 사유가 이번 전시에서 권시숙의 작품을 획기적으로 변하게 만든 것이다.

 

권시숙은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하여 사전에 어떠한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모든 재료와 모든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였고 마침내 개인적인 삶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의 단순화된 표현을 바탕으로 색종이나 대중잡지에서 발견하는 이미지의 조각을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 기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파피에 콜레 기법은 1912년경 소위 종합적 큐비즘 시대의 피카소와 브라크가 정물화 표현에서 주로 사용한 기법이며 말년의 마티스도 비슷한 형식의 종이 오려붙이기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이들 작가들은 표현성의 확장이나 개인적 건강상의 이유로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필자와의 대화에서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의식한 표현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결국 예술적 본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다다른 결론이 이러한 작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형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개인적인 창작의 궤적을 회고적으로 돌아볼 뿐 아니라 일상의 삶으로서의 작가적 경험을 새로운 형식의 표현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로서, 주부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을 조형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에 있어서 작가는 긍정적이고 미래를 밝게 내다보는 작품들을, 스스로에게는 조금 낯설고 새로울 수도 있는 캔버스와 아크릴, 색종이 등의 재료를 가지고 창작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권시숙의 이러한 작업을 우리 모두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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