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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형식의 일치에서 오는 부드러운 설득이 가능한 작품들

하계훈

작가가 관람객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전시회다.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람객과 소통한다. 그렇다면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의 적절한 순간은 언제일까? 이번에 GPS전을 준비하는 미술대학 대학원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필자는 대학원 재학 중에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들의 예술적 태도가 궁금했다.

작가로서 관객과의 소통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일관성 있게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형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이 어눌하게 말하는 것이 잘 이해가 안되거나 우리가 외국어를 모를 때 외국인 앞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30 여명의 예비 작가들은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저마다의 선택을 하였을 것이다. 우선 출품을 할 것인가 아닌가, 한다면 어떤 작품,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어떠한 조형언어를 구사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결정의 순간에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적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개인의 결정의 집합이 하나의 전시로 드러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룹전은 동일한 수련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작품을 전시하거나 동일한 태도를 가진 이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정기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태도를 발표하게 된다. 이번 GPS전을 굳이 정의하지면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참가자들의 선택이 반드시 하나로 귀결되는 태도나 의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작가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작업 스타일과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가 상이하고 그것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다양성 속에서도 작가들의 의식에 내재된 공통점을 몇 가지 끌어내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우리시대의 문화 환경을 반영하는 소통과 단절의 문제를 다룬 작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즉각적인 소통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와 지금과는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초고속 통신망과 스마트 폰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이제 몇 시간 혹은 반나절 정도의 소통실패는 사고 수준에 해당하게 된다.

 

많은 수의 작가들이 SNS를 통한 신속한 소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주체로서의 고민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속하고 풍요로운 다자간의 소통의 시대가 유발해내는 가볍고 표피적인 소통, 그리고 그 배후에 잠복해있는 역설적인 단절과 불안, 다수에 함몰되는 자아의 발현에 대한 욕망과 진정한 관계망 형성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이러한 ‘소통’과 ‘관계’에 대한 바람이 조형적으로 담긴 작품들이 이번 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우태경, 남지은, 고은해, 김지수, 김미지, 박혜준, 안민영, 윤자영, 정형대, 최소희, 홍성준 등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소통과 관계의 문제는 직설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장재민과 김다솜은 과거의 자아를 통해 불안과 소통을 탐구하며 윤홍과 이정은 등은 자신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외부와의 관계를 맺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혜선과 한아름은 동물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거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작품에서 남녀의 역할을 전치시킴으로써 사회적 관념과 기치관의 전복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혜연은 인사하는 자세를 통해서, 박아람은 언어를 이용한 개념적인 작업을 통해 사회적 소통의 부조리성을 확인하려한다.

또 하나의 흐름은 시대의 목격자로서의 사회의식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순수하게 조형적 탐구를 작업의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박준석은 옵티컬 아트 기법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신윤경 역시 색의 번짐을 통한 실험에 집중하고, 임정혜는 화면에서의 서로 다른 표현기법에 의한 시각적 효과에 집중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별 출품작의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작가 개개인의 작업성과를 자세히 살필 수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주제의 선택이나 표현 기법 면에서 조형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작가들답게 각자의 다양한 목소리와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몇몇 작가들의 경우에는 작업의 개념과 작품이 일치하는 정도가 상당하였으며 앞으로 이들의 작업 전개과정이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일부 작품에서는 작품 표현과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사이의 모호한 간극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아직 수련의 단계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동안 작업의 질보다는 양적인 시도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맛볼 수 있게 되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창작의 과정은 고통스런 수련의 과정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관람객과 소통하는 단계에서는 부드러운 설득의 힘도 있어야 한다. 20세기 초 유럽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이 마치 안락의자와 같이 편안함을 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처럼 이번에 출품한 학생들이 무리한 표현과 논리적 과장에 의해서 소통에 실패하거나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내는데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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