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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진 / 영원한 존재 앞에서 현실의 나약한 자아를 감싸는 껍질

하계훈

영원한 존재 앞에서 현실의 나약한 자아를 감싸는 껍질



조각 작품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 사람의 몸은 항상 그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조각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간의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마다 그 의미를 달리해왔다.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들의 문화가 중세 말에 다시 부활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아름답고 당당한 몸의 소유자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Sound Body, Sound Spirit)’는 믿음으로 인간의 아름답고 균형잡힌 몸을 자랑스럽게 표현해왔다. 그들은 그러한 몸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기는커녕 당당하게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의 올림푸스 언덕에서 열린 고대 올림픽에는 젊은 남성들이 누드로 참가하여 빠르고, 높게, 그리고 더 멀리 도약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르네상스 조각가들이 바라보는 인간의 몸도 역시 아름다웠다. 르네상스 조각가들은 중세 기독교 시회에서 원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의 후손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떨쳐버리고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의 몸을 표현하였다.
조각가 윤두진은 인체를 표현한다. 그가 표현하는 인체는 고전적 조각에서 발견되는 엄숙한 정면성이나 대칭성과 비례를 따르는 듯한 경직된 표현과 함께 양쪽 다리의 힘의 분배 균형을 무너뜨리는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자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작가가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엄숙한 종교적 메타포가 담겨있는 듯하면서도 다시 그것을 뒤집는 상상력이나 재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윤두진의 작품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재현되지 않거나 아예 머리 부분의 표현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그가 조각 작품에 표현되는 인물의 개체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간의 신체에서 시작하여 보편적 생명체로서의 인체에 대한 관심과 사유로 확장하는 조형작업을 통해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과 불안, 욕구 등과 같은 심리적 측면에 몰두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형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윤두진의 작품에서 인체는 부분별로는 해부학적 사실성과 현대적인 조형성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신체 부위들이 서로 결합되는 방식이나 결합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관람객의 인식반응은 고전적 조각을 바라볼 때 느끼게 되는 감흥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는 주로 인체의 팔과 상체 부분을 표현할 때 사실성을 넘어 과장되게 확대하거나 왜곡시킨 표현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러한 표현은 인간이 가진 물리적,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희망과 상상은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 로봇이나 프라모델(plastic model) 인형 또는 사이보그의 표현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작가는 분절된 신체의 조합을 통해 표현된 인물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이 현실에서 맞대하기 어려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능력자로서의 대체형 인간상을 꿈꾸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윤두진이 창조해내는 인물상은 유독 팔 부분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상당수가 비상을 위한 장비와 준비를 마친 모습으로 좌대 위에 자리잡고 서있으며 어떤 작품에서는 도약 직전의 움츠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날개를 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하여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가려 하였던 이카루스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는 듯한 인물들의 모습과 동작에서 관람객들은 날개에 실려 올라가는 자신을 상상하면서도 이카루스의 일화에서처럼 추락과 좌절의 결말을 염려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변화시켜 자유롭게 활동하고 필요한 때마다 마음대로 신체의 일부분을 재생하고자 하는,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는 상상을 허락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과장된 인체의 표현이 ‘껍질’처럼 그 안에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감싸는 외피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더욱 더 인체의 모습을 과장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작품 제목인 <껍질의 힘>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인물상은 영원한 존재 앞에서 나약한 실체를 감싸는 껍질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구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는 또 다른 연작인 에서 보다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윤두진은 인물 전신상을 환조 형태로 제작하던 작품에 더해서 부조 형태의 토루소로 인물상을 표현하는 쪽으로 창작 방향을 확대하고 있다. 인물의 대퇴부에서 목 사이의 몸이 후면이나 측면으로 표현된 저부조 형식의 화면 위에 작가는 이전의 환조 작품에서처럼 인물의 팔을 중심으로 과장된 모습을 추가한 인물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 역시 <껍질의 힘>이라는 동일한 제목을 갖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관람자들은 이러한 윤두진의 작품에서도 환조 작품 등에서 느꼈던 감상과 상상을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평면 작품이 주는 회화성에 의해 보다 집중적으로 주제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윤두진은 작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유한함, 상실과 소멸에 대한 불안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 등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희망과 욕구, 즉 현실에서 자신 또는 타인의 모습을 자유로이 변화시키며 재생하는 것이 가능한 지점으로서의 껍질 속의 자아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껍질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동시에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강조하며 이들 두 개체 사이의 괴리만큼 존재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상황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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