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유럽 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정책

하계훈

유럽 박물관의 소장품 수집정책


1

박물관의 운영에 있어서 유럽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그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박물관의 양적, 질적 측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박물관은 19세기 유럽의 특징적인 사회현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19세기 유럽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면 박물관의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이 성립하는 동력이 된 사회현상 가운데에는 18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로 이어진 산업혁명에 의한 생산성 증가와 그에 따른 해외 원료공급지 및 상품시장 개척, 이로 인해 축적된 유럽사회의 부의 증가와 부유해진 유한계급의 지적 호기심 확대,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시민계급의 확대와 이러한 사회의 상부 계층의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정신에 의한 소장품과 자료의 사회 환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이처럼 식민지에서 채집한 신기한 자료들, 귀족들과 부유한 사업가들이 지적 호기심과 개인적 취향 등을 반영하여 대대로 수집해 온 자료와 예술품의 사회적 환원 등을 거쳐 오늘날의 박물관들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군주시대의 수집품들이 근대 이후에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와 같은 인물들 때문에 문화재가 전리품으로서 이동한 역사의 과정에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난과 회복이 이루어진 점도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유럽 박물관의 소장품을 둘러싼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품에 관한 정책은 시대와 지역의 특징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달리 해왔다. 예를 들어 시민혁명과 전쟁의 상황 속에서 획득된 소장품들은 복원과 보수의 필요성이 높게 요구되었으며, 이러한 혼란 상황이 없이 기증과 유증 등의 필란트로피정신에 의해 수집된 소장품은 수복, 복원 보다는 온전한 상태에서의 보존과 연구 등에 그 강조점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부여되었다.

따라서 시민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의 소요, 그리고 2차 대전 기간 동안의 나치에 의한 점령과 미술품 수탈의 수난을 겪은 프랑스의 경우에는 보다 세심하고 강도 높은 문화재 보호와 소장품 관리 정책이 필요하였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정책의 파장이 최근 우리나라가 프랑스로부터 되찾으려 하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영국이나 그 밖의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소요와 나폴레옹이나 나치의 직접적인 약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는가에 따라 박물관 소장품에 관련된 정책의 방어적 태도의 정도가 달리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과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 소요의 결과로 박물관이 세워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필란트로피 정신에 입각한 사회 환원의 결과로 박물관들이 세워졌으므로 소장품의 관리에 있어서 강조점이 가해지는 것은 주로 소장품을 활용한 학문적인 연구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관람객 교육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유럽의 박물관 소장품들은 구입과 함께 약탈이나 기증, 발굴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해당 박물관으로 유입되어 왔다. 오늘날 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환되기 이전에 작품과 유물에 대한 사회 지도층들의 수집 열기가 활발하였던 시점에서 잘 알려진 소더비, 크리스티와 같은 경매회사도 생겨나게 되었고 미술시장이나 골동품 시장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유럽의 박물관에서는 소장품을 구입에 의해 확보하는 경우 담당 큐레이터가 중요한 결정권을 갖는다. 유럽 박물관과 우리나라의 박물관의 유물 구입 과정의 다른 점은 권한의 위임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물 구입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나 행정적인 절차가 박물관장 소관이며 일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나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하여 유럽의 많은 박물관들은 소장품을 구입할 때 담당 학예부서의 큐레이터에게 결정권이 위임되어 있는 편이다.

그리고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 부서의 담당 큐레이터의 경력과 직급에 따라 구입 가격의 상한선을 두어 일정 금액 이하의 소장품을 구입하는 문제는 담당 큐레이터가 책임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소장품을 구입하는 것은 해당 박물관의 이사회가 소장품 정책의 큰 틀을 제시해 준 범위 안에서 박물관측이 담당 큐레이터의 경험과 전문성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르는 책임의 대부분도 담당 큐레이터가 지게 되므로 담당 큐레이터는 자신의 학문적 명예를 걸고 더욱 더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박물관의 소장품을 확보하는 방법 가운데 약탈의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이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현상으로서 소장품의 소실과 훼손이 심각하게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소요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대대적인 회복의 과정이 뒤따르게 되며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미술품의 복원과 보존과학 기술이 발달하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측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잘 알려진 것처럼 제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커다란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소장품의 파손과 유실을 경험하였고, 그 결과로서 자국의 문화재에 대한 보호법이 강력하게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에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불법적으로 가져온 소장품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국가들로부터 불법적으로 반출되었다고 판단되는 소장품 반환을 둘러싼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적절한 해결방법은 도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소장품의 약탈과 관련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 가운데 또 하나는 나치 치하의 유대인 소유 문화재에 대한 불법적인 약탈과 이에 대한 반환의 문제일 것이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로 내모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정에서 소유하고 있던 문화재들을 불법적으로 탈취하고 추후에 이러한 문화재 가운데 일부를 불법적으로 시장에 유통시킨 사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유럽의 박물관들은 이러한 유대인 원소유 문화재의 반환에 대한 정책도 계속해서 정비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이집트나 그리스의 유물을 원소유국으로 돌려보내는 문제에 소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대인 소유의 문화재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데에는 적극적인 이유는 전쟁중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둘러싼 극적인 배경상황과 이 사건에 얽힌 도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대인 소유 문화재에 대한 반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의 유대인 자본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정치적 논리가 가동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품 확보에서 비교적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회 지도층의 기증과 유증 등에 의한 개인 소장품의 사회 환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의 박물관들을 방문하다 보면 무슨 무슨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공간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개인 소장가의 수집품을 둘러싼 기증이나 유증 등의 사회 환원에 의한 기증 유물을 보여주는 공간들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귀족사회를 거쳐 시민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역사적 배경으로 갖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회 지도층이 그 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책임의식을 갖고 봉사와 헌신을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의 전통이 잘 이어져 오고 있는 까닭에 오늘날 우리는 유럽에서 적지 않은 숫자의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사회 지도층의 소유에서 공공의 소유로 전환되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국가의 정부에서는 이러한 박물관 소장품을 둘러싼 사회 환원 행위를 사회지도층의 당연한 의무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기부행위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명예로운 추대나 실질적인 세제 혜택 등에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박물관에 기증된 소장품과 관련하여 기증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 가운데 하나는 현물납세제도(AIL, Acceptance in Lieu)다. 이 제도에 의하면 납세자는 증여세나 상속세를 문화재로 납부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르는 세제상의 금전적 혜택도 제공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납부하는 문화재의 가치 여하에 따라 일부 금전적인 환급도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박물관에서 소장품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발굴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폼페이 유적이나 페르가몬 신전, 바티칸 박물관 소장의 라오쿤 상 등은 발굴의 성과로서 오늘날 해당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발굴에 의한 소장품의 획득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발굴에 의해 확보할 수 있는 소장품의 종류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박물관 소장품의 확보 방법으로서 발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4

유럽 박물관에서의 소장품의 활용은 일차적으로 전시와 연관되어 있으며 점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소장품을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소장품의 보존에서 활용으로 정책 방향이 선회하는 것에는 점점 취약해지는 박물관들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으며, 그밖에도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문화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박물관들의 관람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한편으로는 소중하게 보존하여 후대에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사는 동시대 사람들의 학습과 여가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목표에 봉사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처한 상황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보존과 활용의 양면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사회적으로 더욱 더 그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추구하고 있는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정책은 각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소장품의 보존보다는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박물관의 소장품이 관광산업이나 문화산업의 중요한 컨텐츠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의 각국은 박물관이라는 공공 기관의 사회적 임무로서 개인 소장품이 공공의 장소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된 소장품이 한편으로는 잘 보존되어 후대에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현재를 사는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학습과 여가의 원천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도록 그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