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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브라더스 투자은행

하계훈

리먼브라더스 투자은행


우리는 2008년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사건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미국에서 주택에 대한 부실대출로 인해 야기된 6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리먼브라더스 투자은행은 결국 2008년 가을에 파산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리먼(Lehman)이라는 이름은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증오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직접적으로 금융상의 손실을 본 사람들이나 기관들이라면 더욱 더 그 이름에 대해 증오심을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리먼(Lehman)이라는 이름은 박물관 미술관이나 미술계에서는 그렇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름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리먼 브라더스라는 회사는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에서 19세기 중반에 미국으로 이민 온 리먼씨 형제 3명이 알라바마주에 설립한 회사로서 면화(cotton), 커피, 시가 등을 다루는 무역과 유통 사업을 거쳐 투자회사로 성장하였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합병하기도 했던 리먼브라더스사는 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점차 사업을 확장하여 금융 분야에서 한때는 세계 4위에 오른 거대한 국제적 금융회사였다.

1925년부터 이러한 리먼브라더스사를 대표하던 로버트 리먼(Robert Lehman)은 1929년의 뉴욕 주식시장 폭락과 1930년대의 경제 공황기를 잘 견뎌내면서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세계 최대의 재산가로 등극하기도 하였다. 로버트 리먼은 사업가로서도 명성을 날렸지만 1910년대 초반부터 부모가 수집해 온 미술품 컬렉션을 이어받아 평생 동안 소장품을 키우고 가꾸어서 1956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 그의 컬렉션 가운데 선발한 300점 정도의 작품만으로 단독 전시가 열리기도 하였다.

로버트 리먼은 이러한 미술품 컬렉션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사회적 명성을 바탕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름을 딴 로버트 리먼 재단은 그가 사망하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3000점이 넘는 미술품을 기증하였으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68년에 예일대학에서는 그의 문화 분야에 대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로버트 리먼 재단이 기증한 작품들은 1975년 같은 재단에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증축해 준 로버트 리먼 별관(Robert Lehman Wing)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기증품에 의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르네상스와 후기인상파 등 서양미술사의 중요한 시기의 작품을 다량으로 소장한 미술관이 되어 그때부터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많은 연구자들과 관람객들을 맞아들이며 미술관의 명성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로버트 리먼은 우리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하는 리먼브라더스 투자은행의 사업상 선임자라고 할 수 있지만, 파산 사태가 오기 이전에는 리먼브라더스가 국제적인 사업체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선구자로서 비즈니스 분야에서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고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든든한 자선가(philanthropist)로서 미국미술관의 발전에 크게도 기여한 인물이었다. 로버트 리먼 재단은 현재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교육 등의 사업에 많은 기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 등의 기관에 크고 작은 기증을 실천한 자선가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로버트 리먼 같은 사업가보다는 학자나 예술애호가 출신의 자선가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제 우리 국가경제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국제적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가는 초대형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주역들이 문화적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감은 결여된 채 단지 돈을 잘 벌었던 사업가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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