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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명상

하계훈

테크놀로지의 명상


포항시립미술관이 개관1주년을 맞아 ‘테크놀로지의 명상’이라는 주제 아래 두 번째로 기획하는 <테크놀로지의 명상-미디어의 정원>전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미디어 아트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를 돕고 현대미술의 여러 분야가 미디어와 결합하여 연출해내는 예술의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이러한 작품들을 매개로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미디어 아트는 예술과 기술의 접목에 의한 예술 개념의 확장과 표현 형식의 진화를 이룩한 예술로서, 현대 사회에 들어서서 대중적 파급 효과가 큰 잡지, TV,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등과 같이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하여 관람객과의 소통의 영역을 확장하고 소통의 채널을 다양화 한 것이 기존의 예술 형식과 차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아트는 다른 예술 형식에 비하여 관람객과의 소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예술형식이며, 우리 사회에서의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점점 더 확장되고 다양해 질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예술 형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 아트의 세계는 기존의 회화나 조각 등의 단일 장르가 주로 단선적이고 일방향적인 소통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상호 소통적이며, 적지 않은 작품들이 관람자의 참여와 반응에 의해 완성된다는 의미에서 인터랙티브하고 보다 역동적인 예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양방향 소통성 혹은 상호소통성에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고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고 확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전개될 수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실제에 있어서 미디어 아트는 가상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고, 예술 작품의 환상에 관람자의 상상력이 결합하는 정도에 따라 그 세계는 무한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작가와 관람자가 상호 의존하여 작품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미디어 아트가 회화나 조각과 차별되는 점은 창작자로서의 작가뿐 아니라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일상에서 친숙하게 발견할 수 있는 매체들이 이용된다는 점이며, 그 때문에 다른 예술형식보다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교감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TV 모니터나 컴퓨터 화면, 그리고 이러한 영상들을 확대하는 빔프로젝터 등이 대부분의 미디어 아트 작품에 동원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물들은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들을 통해 전달되는 영상이 대부분 정지영상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점도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하며 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그들이 전통적 예술이 주는 미학적 아우라의 무게를 벗어 놓으며 스스로가 익숙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부분 관람객의 참여를 전제로 하여 관람객들이 작품에 접근하면 센서의 의해 작품 속의 영상이 변화하거나, 아니면 관람객이 화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모종의 동작을 펼쳐 보임으로써 화면 속의 영상이 변화하는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존의 회화나 조각, 설치 등의 작품들에 비하여 관람객의 관심과 흥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상 이미지나 표현 내용의 미학적 가치와 가상현실성(virtuality)의 완성도, 작품 주제의 설득력에 따라 관심의 지속성이 좌우될 수 있다는 매체 스스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품작 가운데 양민하, 오창근, 진시영, 채진숙, 최승준 이경호 등의 작품에서는 관람객이 벽에 비춰진 영상에 개입함으로써 센서가 작동하여 나뭇가지에 쌓인 듯한 눈이 흩어지기도 하고 마치 군락 식물같은 이미지들이 춤추는 듯 하늘거리기도 하며, 자기장이나 수면 위의 동심원과 같은 이미지가 환상적으로 굴절되고 왜곡되면서 흥미로운 이미지를 연출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 이미지의 변화는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며 변화하므로 관람객들은 회화나 조각 작품을 감상할 때보다 더욱 작품과의 교감이 깊어지고 적극성을 띠게 된다.

팝아트가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작품을 전개했다면 미디어아트는 다시 팝아트의 이미지와 컨텐츠를 역으로 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품작가 가운데 이이남은 우리 전통미술 혹은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들과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잘 결합하여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 1층 로비에 설치된 작품 <박연폭포>는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여 수직으로 연결된 여러 개의 TV화면 속에서 폭포수의 낙하를 실감하게 해주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기존의 회화가 움직임이나 수평 또는 수직으로의 확장성에서 제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극복한 박연폭포와 같은 작품은 미디어 아트의 장점을 잘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이남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고 혼재하는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참신한 발상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이이남이 풀어야 할 과제는 오늘날 월트 디즈니의 정밀한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류의 입체 영상에 길들여지고 있는 현대의 관람객들에게 주제를 뛰어넘는 기술의 완성도가 수반되어야 작품의 생명이 길게 지속될 수 있다는 한계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구현모는 디지털 미디어가 주는 반자연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자신의 영상 작품 속에서 식물이나 곤충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가가 실제의 자연을 디지털 환경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속에 담기는 자연의 이미지는 역설적이게도 더욱 더 자연적이고 생명의 느낌을 발산해준다. 김영식의 작품은 우리가 십자수를 제작할 때나 혹은 브라운관 텔레비전 화면을 확대시켰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처럼 화면 안에 일정한 유닛이 집적되어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해체되면서 유동적 액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마블링 기법과 같은 현상이 전개되는 작품을 한 화면에 병치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화면 속의 작은 유닛 하나하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체되면서 전체 화면이 사실적 이미지에서 추상적 이미지로 전환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기존의 화회에서 담기 어려운 프로세스를 관람객에게 제시해줌으로써 영상작품이 갖는 득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류재하의 작품은 이미지가 단순한 사각형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각형의 화면이 집적된 전체 화면에 투사되는 가운데 영상의 범위가 조절됨으로써 관람객들이 이미지의 변화를 좀 더 다양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김창겸의 작품에서는 영상이 내려앉는 구획 범위를 정밀하게 규정함으로써 영상의 투사 유무에 따라 그 구획된 영역이 생명감과 활력을 띠기도 하고 그저 무덤덤한 단색의 매스로 남아있기도 한다. 김창겸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영상이미지의 일루젼을 연구해 온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마샬 맥루한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미디어의 발전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켜주고 감수성을 증진시켜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20세기에 들어 전신,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전화, 컴퓨터 등 커뮤니케이션의 전자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생활과 감수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미디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결정론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결국 인간이 서로 의사를 교환하는 수단인 매체에 의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해 왔다는 맥루한의 말처럼 미디어 아트 역시 우리 시대의 우리 자신들의 중요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 비하여 출발은 늦었지만 최근에 들어서서 IT 산업의 발전에 힘입은 우리나라의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날로 다양해지고 그 형식은 다른 장르나 매체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급속도로 변화하고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가 다양한 예술형식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예술표현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현 시점에서 포항시립미술관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13명의 미디어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의 미디어 아트의 현주소를 진단해보고 IT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미디어 아트가 어떻게 정의되고, 또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해 관람객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값진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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