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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돌아 왔다

하계훈

경기도미술관에서는 매년 미술관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학예부서의 기획성이 돋보이는 비중 있는 전시를 기획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언니가 돌아왔다>전은 이런 의도로 기획된 경기미술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다. 개관 1주년을 넘긴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이 지역성이 강한 전시를 기획해나갈 계획이라고 하는데, 국공립미술관의 기획력에 대한 우려가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오늘날 이러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그 파급효과가 우리나라의 다양한 형태의 미술관으로 폭넓게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미술관의 규모에 걸맞은 국제적 성격의 전시와 함께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지역성을 반영하여 다층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맥락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요람으로서 경기도미술관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획하는 연례전으로 미술관측에서는 앞으로도 경기도의 정치, 사회, 문화적 이슈 가운데 시의적절한 주제를 선택하여 매년 전시 주제로 삼아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전시가 경기도 지역을 관통하는 1번국도라는 공간적 환경을 주제로 삼아 경기도의 문화지리학적 좌표를 확인하고 분단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정치적, 역사적 성격의 전시였던 것이라면 이번 전시는 경기도 지역에 뿌리를 두고 전개된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의 한 줄기를 추적해보는 미술사적 고찰에서 출발하였다. <언니가 돌아왔다>전은 제목에서 어느 정도 주제를 간파할 수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을 주제로 전개되는데, 발상의 단초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여성미술의 문을 연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수원 출신의 나혜석과 화성 출신의 윤석남이라는 두 여성 작가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이들을 축으로 하여 경기 지역에서의 여성미술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올해는 나혜석의 작고 60주기를 맞아 전시회 개최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언니’는 여성들 사이에서 세대와 연령을 초월하여 불리는 호칭으로서 여성성과 여성상의 의미를 넓게 인식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우마드(Womad), 여성의(Her) 이야기 또는 역사(Story)를 의미하는 허스토리(Herstory), 영화 제목으로도 우리에게 낯익으며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여성성을 개입시킨다는 의미로서의 시스터 액트(Sister Act), 그리고 미술사에서 당당하게 하나의 모티브를 형성해 온 요부적 이미지를 지칭하는 팜므파탈(Femme Fatale)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27명의 작가가 출품하였다.

우마드는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생활 근거지를 옮겨 다니던 추종적 유목민이 아니라 자기결정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아성취를 추구하고자 유목생활을 택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유목민 사회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어 평화와 사랑, 열정과 진취적 활동으로 신모계(新母系)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관점을 반영하는 안진우, 원성원, 이민, 정은영, 하차연 등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들의 작품에서 이러한 주제가 항상 직설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스펀지와 같은 부드러운 소재를 이용하여 여성적 오브제를 표현한다거나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격리와 외국생활에서 느끼는 자기존재에 대한 성찰 등이 회화, 사진, 입체, 영상 등의 작품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온 남성 중심적 역사에 대한 평형추로서의 ‘그녀들의 역사’를 당당히 주장하고 기술해 나아가는 허스토리에서는 김인순, 김진숙, 류준화, 봉인옥, 윤석남, 이수영, 정정엽, 태이가 출품하였는데 역사와 신화 뿐 아니라 일상의 공간 속에서 굴절된 시각으로 관찰되던 여성성을 새롭게 바라보며 상상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시스터 액트에는 김주연, 방정아, 송상희, 이순종, 장지아, 홍현숙이 출품하였는데 제도와 관습이 만든 의식과 공간에서 여성성의 맥락을 개입시켜 비판과 도발을 실천하는 작품들이 출품되었으며, 팜므파탈에서는 강은수, 김희정, 박영숙, 손정은, 손국연, 이순주, 이은실이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 야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위험한 여성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활달한 여성, 여성 특유의 욕망과 환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아로서의 여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변화된 오늘날의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사진과 영상, 회화 등의 매체를 통해 재해석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 가운데 유일한 남성작가로서 여성을 주제로 일관되게 작품을 발표해 온 조덕현 작가가 특별 초대되어 본 전시의 두 축인 나혜석과 윤석남을 작가의 독특한 시각에서 재해석한 초상설치작품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페미니즘이 오늘에 와서 다시 거론되는 것에 대한 시대적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경기지역에 연고를 가진 나혜석과 윤석남이라는 두 여성 작가로부터 비롯된 여성성의 다양한 측면을 재조명해보는 시도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되며 이러한 의미에서 관심을 가져볼 만한 전시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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