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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개관

하계훈


서양의 미술사는 20세기 전반까지 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미술이 서양미술사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유럽의 미술사는 유럽 문화사의 일부분으로서 지리적으로 유럽인들의 생활 근거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의 생활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과 유럽인들의 종교관이나 세계관의 변화와 같은 정신적 전환의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기록해오고 있는 것이 서양의 미술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미술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단순히 미학적인 관점에서 미술품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는 이들에게 어떻게 예술적 감흥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서양미술사를 연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미술작품에 반영된 사회의 정치적, 사상적, 혹은 종교적 전개과정을 연구해 볼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관점에 의해서 동일한 미술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프라고나르나 와토가 그린 귀부인들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우아한 초상화들은 당시 사회의 문화활동을 주도한 살롱 중심의 귀족사회 여인들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우아미의 극치를 담은 미술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다른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 사회의 하층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한 귀족층들의 사치와 허영의 극단을 보여주는 미술로서 곧 이어 발생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민중혁명을 초래한 장본인들의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미술품이라는 사회적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대륙처럼 유럽대륙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생활해왔으며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미술’이라고 부르는 활동이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의 결과물들이 개인이나 국가 또는 각종 단체의 손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수집되고 보존되고 연구되어 왔다. 우리는 흔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 유럽의 미술을 고대미술, 중세미술, 르네상스미술, 바로크와 로코코, 그리고 이후의 여러 가지 근대미술의 경향에 따라 사실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등의 경향의 연속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서양에서 르네상스 이전까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행위는 예술적 영감에 의해 미적 가치가 담긴 그림이나 조각품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 또는 종교적 공간을 장식하는 장식물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고대의 미술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미술사의 범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조각상이나 동굴벽화 등이 순수한 미의식의 표현이기보다는 주술적 기원의 표현이며 장식적이기보다는 실생활에 도구적으로 이용되어 온 물건들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품을 통해 기대하는 가치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미술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빨라야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리고 좀 더 좁혀서 본다면 근대에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며, 이 무렵부터 오늘날의 미학이나 미술사와 같은 학문도 출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술사보다 더 큰 틀에서 서양의 문화사를 바라볼 때, 유럽은 기후가 따뜻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인구의 집중과 증가가 이루어져 왔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유럽 대륙의 중심부와 북부로 인간의 생활이 확대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인들의 생활이 지중해 연안에서 북유럽으로 확대된 처음 계기는 아마도 로마제국의 정복전쟁을 통한 것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유럽 각 나라의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대부분 로마제국의 군대들이 주둔하던 지역이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은 대도시를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세 말기부터 유럽의 기후가 온화해지고 경작기술이 발달하여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자신이 생기면서부터 유럽인들은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유럽 대륙 깊은 곳으로 생활의 무대를 확대시킬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배경 아래서 문화의 중심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겨지게 된다. 이처럼 유럽인들의 생활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시작된 까닭에 서양미술사는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로 전개되며 중세 이후에 점차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대륙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나간다.

유럽의 문화가 전개되는 바탕에는 크게 그리스와 로마라는 고전문화가 한 축을 이루고, 로마시대 후기에 국가적으로 공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유럽 대륙의 정신을 지배해 온 기독교 문화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인접한 중동지역의 고대문화가 알렉산더 대왕시절 무렵부터 때때로 서양의 고전문화와의 교섭을 이루면서 때로는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도하고 또 때로는 양 진영간의 문화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을 언어적으로 구분해 볼 때에는 남부의 라틴어와 북부의 게르만어 그리고 동부의 슬라브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권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만들어낸 문화가 오늘날의 유럽문화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언어를 중심으로도 상호 교류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근대에 들어서 유럽 대륙의 중앙과 북부 지역이 유럽의 문화활동의 중심으로 부상하자 미술사에서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라틴문화와 근대의 게르만 문화를 비교하는 연구가 이루어지도 하였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비교는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봘플린이 라틴적인 르네상스 미술과 게르만적인 바로크 미술을 비교한 미술사의 원리에서 잘 드러나 있다.

오늘날의 유럽문화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복합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유럽의 문화를 고전중심의 헬레니즘 문화와 기독교 중심의 헤브라이즘 문화로 크게 구분하여 본다면 유럽의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문화적 특징을 보인다고 볼 수 있으며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대는 종교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백 년간의 중세를 통해 유럽을 지배해 온 기독교가 그 세력을 상실한 데에는 교단의 타락과 십자군 원정의 실패에 따른 종교적 권위의 실추 등을 들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세력과 부를 키워온 부르주아지 세력에 의한 고전과 인간성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이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예부흥기라고 불려지는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재생하게 되는 데에는 기독교 자체의 쇠퇴도 그 원인이 되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무렵 오스만 투르크 족에 의해 무너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문화와 예술이 서유럽지역으로 피난처를 구하며 이동해 온 것도 그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천년 넘게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을 보존해 온 비잔틴 제국의 학자와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이 지참한 예술품과 문화재들은 때마침 재력과 권력을 쌓아가던 르네상스 귀족들에 의해 인수되고 보호됨으로써 다시 한 번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서 부르주아지 세력들의 후원 아래 오늘날 천재 예술가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예술가들이 미술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시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미술운동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북유럽으로 펼쳐 나아가면서 지역의 특성과 융합하여 지역적 르네상스 운동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 매너리즘 시기(1520-1600)는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교롭게 이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망하고(1519) 라파엘로가 사망한(1520) 시기와 일치하며 종교적으로도 독일의 루터나 스위스의 칼뱅에 의해 종교개혁 운동이 전개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매너리즘 시기의 미술은 유럽인들이 이제까지 기독교 중심의 생활과 사고가 크게 흔들리게 되고 이어서 신대륙 발견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소개되며 과학의 발달로 기존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반면 아직 이러한 가치관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삶의 지침이 확립되지 않음으로써 여기서 발생하는 사회 구성원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는 미술 경향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또는 르네상스시대에 부활된 고전주의 미술의 쇠퇴나 이에 대한 단순한 반동작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은 종교 때문에 종종 사회적 갈등을 빚어왔고 오늘날의 이라크 전쟁이나 북아일랜드와 영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도 따지고 보면 모두 종교적인 원인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유럽의 기독교 문화는 내부적으로도 세속 권력과 영토 문제나 권력계승 문제로 대립과 전쟁을 겪어왔고 인접한 중동의 이슬람 문화와도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유럽 내에서도 기독교는 왕권과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해왔다. 중세의 교황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군주들을 제압해왔으나 중세까지의 공화국 단위의 조그만 지역의 군주들과는 달리 유럽 대륙의 큰 지역을 다스리는 절대적 권력의 군주들이 등장하자 교회와 군주 사이의 힘의 균형은 이전과 다르게 세속 군주에게 힘이 실렸으며 결국에는 17세기 절대군주 시대를 맞게 된다.

서양미술사에서 17세기는 이러한 절대군주의 왕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바로크 미술의 시기이며 남성적이고 스케일이 큰 극적인 표현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에 군주들은 교회와 힘을 겨루어 승리하며 세속의 궁전을 크게 짓기 시작한다. 파리의 루브르 궁전이나 베르사이유의 궁전 등이 이 무렵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따라서 확대된 공간에 맞는 규모의 미술작품들이 나타나며, 이 무렵부터 미술에 있어서 국가의 후원을 받는 거물급 미술가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왕실은 푸생이라는 화가를 키웠으며, 스페인 왕실은 벨라스케츠를, 벨기에는 루벤스를, 그리고 영국 왕실은 외국에서 유입된 한스 홀바인 등의 작가를 왕실의 화가로 키웠다. 비슷한 시기에 상인들 중심의 무역이 성행하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렘브란트라는 화가가 활동했으며 렘브란트는 군주보다 상인들의 후원을 받았으므로 작품의 스케일이 위에 언급한 다른 화가들보다 작은 것이 대부분이다. 서양미술사에서는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바로크 양식이라는 명칭 아래 하나로 묶고 있다.
바로크에 이어 나타나는 18세기의 로코코 미술은 바로크와 비교할 때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 하며 여성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 시기는 절대군주의 편에서 성장한 귀족들의 시대로서 귀족 부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우아하고 장식적인 미술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이 무렵부터 유럽의 문화는 프랑스가 중심을 이루며 전개된다. 루이 15세, 16세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성공으로 19세기를 맞이하는 유럽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퇴장, 과거의 군주제로의 복귀 움직임.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기차와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른 생활과 상거래의 광역화, 공업화에 따른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 그에 따른 농촌생활에 대한 향수를 강조하는 밀레와 같은 바르비종파 화가들, 전기의 발명으로 가로등이 등장하고 중산층의 행복한 도시생활의 요모조모를 기록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등장, 그리고 세기말의 여러 경향들로 서양미술사의 20세기를 준비한다.

근대 산업화와 식민지 개척에 의해 부를 축적한 유럽은 미래를 낙관했으며 자신들의 이성의 힘을 신뢰하였다. 물론 이러한 낙관적인 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산업화가 가져온 도시빈민의 문제나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도덕적 교훈에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이 식민지 독립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회고발적 사실주의나 현실도피적인 낭만주의적 태도 등도 미술사의 여러 경향에 반영되었다.

20세기의 서양미술은 추상미술의 등장을 예고하는 야수파와 입체파로부터 출발하여 유럽사회의 복잡한 정치현상을 반영하듯이 여러 가지 양식의 미술이 빠르게 이어진다. 세계대전을 앞둔 유럽에서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담은 다다(Dada)나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미술도 등장하며 2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표현주의와 추상이 절충된 소위 추상표현주의적 미술이 뉴욕 화단으로부터 등장하여 전세계적 미술경향을 주도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안정과 풍요를 되찾은 미국에서 1960년대에는 대중문화와 대량 소비문화를 반영하는 팝아트가 등장하고 이어서 옵아트, 키네틱 아트, 개념미술 등등의 다양한 경향의 미술 작품들이 등장한다. 1970년대 이후에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미국사회의 다양한 민족적 혼성을 반영하는 매체미술이나 문화혼성적 미술의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고 장르를 구별하기 어려운 혼합장르의 미술도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서 미술계의 지형을 더욱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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