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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예술평의회(Arts Council)의 미술 지원에 관한 연구

하계훈

Ⅰ. 서론

역사상 화가와 조각가 등의 시각 예술가들은 주술사, 장인, 천재예술가, 사회 계몽가, 그리고 정치권력의 협력자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며 오늘날까지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활동을 전개해왔다. 비록 일부 예술가에 국한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높은 평판과 함께 부와 명예를 누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예술의 생산 형식이 노동을 바탕으로 한 방법에서 크게 변화됨이 없이 작가의 수작업에 의해 전개되어온 반면에, 재화의 사회적 생산과 소비의 패러다임은 노동집약적인 방법에서 기계화에 의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정보화에 의한 신속한 유통 등의 방식으로 크게 변화하여 왔고 이 과정에서 계속된 기술의 발달은 예술품을 대체할 다양한 문화상품들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사회의 경제구조의 틀 속에서 경쟁력을 잃은 채 뒤쳐지고 점차 소외되어 왔으며 마침내 창작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도 확보하지 못한 채 한계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상품가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사회의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원천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자양분의 공급자인 예술가들과 그 생산, 유통, 소비를 둘러싼 시스템은 보호되고 존속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위하여 누군가의 후원에 의존하여왔으며 그 후원의 주체는 군주, 교회, 근대 시민 정부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오늘날 각국 정부는 이러한 예술의 사회적 교육과 계몽 기능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순기능을 위하여 공공재정을 통해 예술가와 예술기관에 대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 각 나라마다 지원의 규모나 방법 등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예술가의 창작활동, 대중의 예술향수 활동,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매개하는 인적 구조와 물적 토대의 보장 등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예술 후원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예술평의회를 통해 미술 분야의 후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거기에 함축된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공공 영역에서의 미술지원 방식에 참고로 삼고자 한다.
<Ⅱ. 영국의 문화정책과 예술평의회

영국의 전반적인 문화정책의 좌표는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을 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프랑스와 이에 대조되는 민간주도의 문화정책을 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정부 기구에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공식기구가 생긴 것은 1964년 예술도서청(Office of Arts and Library)이 교육과학부(Department of Education and Science)의 한 부분으로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예술도서청은 나중에 국가유산부(Department of National Heritage)로 확대되었다가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문화관광부에 해당하는 영국의 문화 미디어 체육부(DCMS, 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s)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DCMS는 부서의 행정목표를 ‘문화와 스포츠 활동을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우수성을 개발하며, 관광, 레저산업을 촉진하는데 있다’1) 고 천명하고 있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문화를 통한 계몽과 교육, 국위선양, 산업발전 등의 의지가 골고루 담겨있다.

DCMS의 업무 가운데 예술분야에 관한 지원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주로 예술평의회(Arts Council of England)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영국 정부는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직접지원은 지나친 간섭과 통제, 검열 등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경계하기 위하여 비정부기구(NGO)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평의회를 정부의 대리기관으로 개입시켜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소위 ‘양팔 거리만큼의 정책(arms length principle)을 펴고 있다.2) 예술평의회는 사업 목표를 첫째, 예술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실천을 증진시키고, 둘째, 일반 대중에게 예술 접촉 기회를 증가시키며, 셋째로 이러한 목적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서 정부 각 부처, 지방행정 당국, 기타 단체에 권고 및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원래 예술평의회는 제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심신이 지쳐있는 국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설립한 기구인 CEMA(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and Arts)라는 조직을 종전 후에 발전적으로 재편한 기구로 1946년에 탄생되었다. 영국의 주요 정책이나 국책사업 가운데 상당부분은 그 출발점이 의식 있는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CEMA 역시 영국계 미국인으로서 철도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에드워드 하크니스(Edward Harkness)가 1930년에 40억원을 기부하여 설립된 필그림 재단(Pilgrim Trust)이 위원회(Committee for the Encouragement of Arts and Music)를 구성하면서 시작되어 1940년에 CEMA로 개편되었다. CEMA는 명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술과 음악, 그리고 연극 분야에서 진흥 사업을 펼쳤으며 초기에 각종 예술 활동에 필요한 기금지원 정도에 머물렀던 위원회와는 달리 나중에는 내무부나 교육부와 협력하여 정부에 대한 자문활동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3) 초대 이사장은 유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였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1월 독일의 폭격과 선무공작으로부터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정신무장을 통해 대항력을 갖기 위해 설립된 CEMA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당장 먹고 입을 것이 모자라던 영국 국민들에게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자마저 확보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자양분 공급을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력과 전투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CEMA에서 발전된 예술평의회에 투입되는 예산은 의회에서 직접 배정하고 그 구체적인 사용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주무 장관의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특이한 형식을 갖고 있다.4)

원래 영국의 예술평의회의 명칭은 ‘Arts Council of Great Britain(ACGB)’으로서 이 위원회에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두 지역의 예술지원 활동이 지방 사무소(regional office)로, 그리고 나중에는 자문기능만을 갖는 위원회(committee) 형식으로 합병되어 있었다. 그러나 1967년 두 지역이 자체적인 집행기능을 갖게 되었으며 마침내 1994년에는 분리 독립되어 Arts Council of England와 Arts Council of Scotland, Arts Council of Wales로 나뉘어져 의회로부터 각각 독립적으로 예산을 배정받고 이를 집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ACGB는 오래 전부터 사실상 Arts Council of England의 기능을 해왔던 셈이었다. ACGB는 각 지역에 12개의 지역예술위원회(RAA, Regional Arts Association)를 두고 있었다. 1956년 서남부 지역 예술협회(South-Western Arts Association)로부터 시작된 지역 예술위원회역시 대부분이 지역의 단체나 개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출발하여 지방 정부가 합류하는 형식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탄생하였다.5)

영국예술평의회와 정부와의 관계는 형식상 국왕의 칙허(Royal Charter)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평의회의 의장을 정부의 장관이 임명하도록 되어있어서 어느 정도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나, 예산의 운영과 사업의 집행 등에 대하여 비교적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다. 국왕의 칙허에 의해 탄생된 기관이란 의미는 예술위원회가 법률적으로 정부기관이 아니며, 의회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예술위원회의 예산은 의회에서 직접 배정해주지만 예술위원회는 이 예산을 회계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사용 결과만을 DCMS를 통해 통보하면 될 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의회의 추궁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위원회를 의회와 정부기관으로부터 분리시킨 이유는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서 예술위원회가 정부의 명령계통에 들어가거나 의회의 감사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6)

예술평의회나 정부에서는 각 분야의 직원들의 전문성을 존중해주고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적 권한을 위임하려고 하고 있으며, 윤리헌장을 통하여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오직 두 가지 사항은 업무상의 취득정보 등을 통하여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부당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말 것과 정치적인 행동에 개입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Ⅲ. 영국미술의 특징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문화예술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비중이 적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약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술 분야에서 그나마 관심과 지원을 받는 분야는 현대미술보다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미술 쪽이었다. 미술에 대한 영국인들의 소극적인 관심의 부분적인 원인은 1649년 청교도에 의해 처형된 찰스 1세의 미술품 컬렉션이 청교도의 윤리 기준으로 볼 때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의 물적 증거로 낙인찍혀 국외로 경매 처분된 사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음에도 군주들은 찰스 1세의 사례를 마음에 두고 미술품 수집에 적극성을 띠지 않았으며 미술활동에 대한 후원에도 비교적 소극적이었다.7)

실제로 영국의 많은 공공기구들이 상징적으로 왕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을 자신들의 단체의 수장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에 그칠 뿐이다. 예를 들어 미술 분야에서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의 경우에도 ‘왕립’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왕실로부터의 재정 지원은 전혀 없이 회원들의 자체적인 노력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영국에서의 미술은 근대 산업혁명 시기를 전후하여 영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력으로서의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이에 따른 사회, 교육, 보건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이용되기도 했다. 예술과 도덕성을 연관시킨 존 러스킨(John Ruskin)의 견해나 빈민구역의 주민들을 순화시키기 위하여 전시회를 조직했던 사뮤엘 바넷 목사(Rev. Samuel Barnett)의 사례는 이 점을 잘 설명해준다.8)

문학과 연극, 음악 등을 선호하는 국민성과 전통에 대한 애착을 갖는 영국인들의 태도는 때때로 정부의 무역과 통상 외교 등에서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사회의 각 분야가 점차 개방화되는 국제 관계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영국 정부는 미술 분야에서 영국인들의 취향을 현대적으로 바꾸고 미술을 통한 국가 이미지 개선을 이루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미술계와 언론, 상업화랑 등이 보조를 맞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영국인들의 취향을 비교적 현대적으로 바꿔놓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로지 밀라드(Rosie Millard)는 그녀의 저서에서 영국인들의 이러한 과거지향적인 태도를 ‘모더니즘에 대한 알레르기(British allergy to modernism)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9) 그런데 이러한 알레르기적 태도가 지난 20년 사이에 크게 변화하였다. 예를 들면 테이트 브리튼에 있던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들이 테이트 모던으로 이관되어 오면서 과거에는 영국인들로부터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던 동일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거의 열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84년부터 시작된 터너상(Turner Prize)은 이제 미술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터너상의 성공을 본떠서 비슷한 시상제도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몇 해 전부터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영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토탈미술관,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등을 통해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활발하게 소개되어 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의 현대미술을 국내외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하여 예술평의회와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Ⅳ. 예술평의회의 미술지원

영국의 예술평의회는 영국의 미술 분야의 활동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미술에 관한 진흥 활동 가운데 국내활동은 주로 예술평의회가 담당하며 국제적인 진흥사업은 영국문화원이 담당한다. 예술평의회 이외에도 넓은 의미의 미술 분야를 지원하는 기관으로는 공예 분야를 지원하는 공예평의회(Craft Council), 디자인평의회(Design Council)가 예술평의회와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국 정부와 예술평의회는 시각예술(visual arts)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가 전통적인 미술로 인식하는 분야에 덧붙여 패션, 영화, 건축,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한 영상이미지들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시각예술의 개념을 설정하고 있다.

예술평의회의 미술지원에 대한 기본 입장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적 향수 기회의 확산과 우수한 예술의 육성이라는 이원적인 목표를 통해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부가하여 미술의 산업적 가치 창출과 관광 및 고용 효과의 증대 등의 실용적인 가치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중적 향수 기회의 확산을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초중등 교육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며 그밖에도 영국의 전역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잘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과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re)나 대학 부설 주민교육기관 등을 국민들의 예술향수 기회 확대를 위한 채널로 이용하는 것이다.

1995년 영국의 박물관/미술관 위원회(Museums & Galleries Commission)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에는 약 50만 명의 인구가 디자인, 공예, 미술 등의 분야에서 직업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체 노동인구의 2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효과는 줄여 잡아도 연간 30조원이 넘게 되므로 미술 분야의 지원은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10) 예술 향수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예술위원회는 창작지원과 시상 등을 통하여 활발한 활동을 격려하고 있으며, 이들의 컨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의 확산과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1997년에 발간된 정부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영국의 미술계에 필요한 사항을 몇 가지 나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예술가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지원, 전국 예술 공간의 유기적 연결망 구성, 국제적으로 잘 훈련된 큐레이터의 육성, 예술 출판사업 지원,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등을 들고 있다.11) 이러한 사업 목표는 대부분 그대로 예술평의회의 주된 활동으로 연결된다.

예술평의회는 매년 의회로부터 자금을 배정받아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복합예술 등 의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주로 예술평의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영국 정부의 시각 예술에 대한 지원은 전체 예술지원 예산의 약 8 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며 1992년부터 여기에는 건축과 영화 등의 분야에 대한 지원도 포함되어 미술 분야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전체 지원액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연극과 음악에 비하여 비중이 적은 편이다.

예술평의회의 다른 부서들이 대부분 예술가들과 예술기관에 대한 지원사업을 업무의 대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비해서 미술 분야를 지원하는 시각예술부(Visual Arts Department)는 부서에서 직접 기관을 운영하거나 진흥사업을 펼치는 것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시각예술부는 초창기부터 테이트 갤러리와 협력하여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여왔으며 1968년에는 런런의 테임즈강 남안의 복합문화공간인 사우스뱅크 센터(South Bank Centre)안에 헤이워드(Hayward) 갤러리를 열고 1970년에는 하이드 파크 안에 서펀타인(Serpentine) 갤러리를 열어 독자적인 전시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12)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작품을 구매해줌으로써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판단아래 시각예술부는 자체적으로 소장품(Arts Council Collection)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 작품들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보존, 관리하며 전국 순회 전시회에 활용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미술부문의 지원금은 각 도시의 시립미술관을 지원하는데 집중되었다. 1984년부터 1995년까지 미술발전전략(Art Development Strategy)이라는 이름으로 미술부(Art Department)13) 에서 주도하여 진행된 사업에서 예술위원회는 전국의 22개 공립미술관에 기금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지방 미술관들은 현저하게 시설을 개선할 수 있었으며 지역에서의 현대미술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증대시키고 50명이 넘는 인력의 고용효과를 창출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협동하여 작업함으로써 작가에게는 기금지원 효과가 있었으며 작가와 주민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평의회는 1994년 일명 ‘일출 계획(Sunrise Scheme)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의 22개 미술관뿐 아니라 신규로 지원한 미술관들을 대상으로 6개 기관을 엄선하여 전문 인력을 고정적으로 확보한다든지, 잠재 관람객을 개발한다든지, 해당 미술관들 사이에 인적, 물적으로 긴밀한 네트워크가 구성되도록 격려하는 사업을 추가하기도 하였다.14)

한편 작가들에 대한 지원은 정부와 예술평의회에서 작품을 구매해준다든지, 작가들의 작업실을 제공해준다든지, 또는 시상제도를 통하여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업 이외에도 예술위원회는 대대적인 특별행사를 통해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2000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1년간은 예술평의회 산하 지방의 10개의 예술위원회(Regional Arts Board)15) 를 통하여 전국의 미술관뿐 아니라 병원, 학교, 도서관, 유원지 등 1000개의 다양한 장소에서 1000명의 작가가 작품 활동을 벌이는 ‘Art 2000-작가의 해(Art 2000-Year of the Artist)라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격인 남서부 예술위원회의 닉 카팔디(Nick Capaldi)가 언급한 것처럼 위원회는 이 행사를 통하여 예술의 효용성과 작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16)

영국 예술평의회의 미술에 대한 지원은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의 미술관과 작가들의 미술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국내적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이러한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국가의 기념비적 문화사업을 유도해내고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영구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으로 이어진다. 몇 해 전에 개관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이나 작년에 북부 지방에 개관한 발틱 센터(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등은 이러한 단계적 전략의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실행해가는 단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Ⅴ. 결론

이상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영국의 예술평의회는 영국의 문화예술을 육성,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서 문화예술의 특성을 고려한 특수한 법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출범 단계에서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역할을 조정하고 활동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민간재단과 정부의 협력이 조화를 이룬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 예술위원회는 오랜 기간동안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오면서 영국 국민들의 문화 향수권을 신장시키고 국제적으로 영국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외교와 통상 등의 분야에서도 국가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봉사해오고 있다.

영국의 예술위원회를 통한 예술지원 사업 가운데 미술 분야의 지원은 다른 분야와 다르게 지원사업과 자체 사업이 절반 정도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속성이 다른 까닭이라 볼 수 있으나, 헤이워드 갤러리와 서펀타인 갤러리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점차 직접사업을 축소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지원은 현대로 오면서 패션, 영상 등으로 그 지원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현대미술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분야의 각종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국이 현대미술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문학, 연극, 음악 등의 공연예술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문화대국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에 대한 육성보완으로 볼 수도 있고, 현대미술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는 순수하게 국민문화 복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미술 진흥에 관하여 우리가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영국의 전통미술을 포함한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 육성도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역시 한 편에서는 이 분야의 사업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1946년에 시작된 영국의 예술평의회와 1973년에 출범한 한국문화예술 진흥원은 약 3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으로서 상당히 유사한 방향으로 접근해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세부적으로 비교해보면 몇 가지 뚜렷한 차이점도 드러난다. 그 차이점은 군주국가와 민주국가라는 국가체제에서부터 법률적, 제도적 차이점이나 정치적 경제적 환경의 차이 등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기관의 자율성과 직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 해당 기관의 존재와 활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정도 등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와 영국이 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 비하여 상호 의존도가 낮을지 모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상호 참조할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영국의 예술평의회가 미술 분야를 지원하는 방식을 연구하여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미술 분야에 대한 공공지원을 함에 있어서 미래의 방향을 잡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1) http://www.culture.gov.uk/about+dcms.htm

2) 정부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비정부 기구의 성격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정부의 대리역할을 하는 기구들을 ‘유사 비정부기구’ 또는 ‘준(準) 정부기구’(QUANGO, Quasi-NGO의 약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3) 비록 민간주도로 시작된 활동이지만 나중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CEMA의 활동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교육부의 국고보조도 이루어졌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총서1 <예술행정> 253-260쪽 참조

4) 예술평의회에 대한 주무 장관의 의회에 대한 책임 범위는 연간 예산의 규모와 그 예산의 안정적 집행, 위원장 및 위원들의 임명 등 커다란 틀에 머물러 있었다. Robert Hewison, The Heritage Industry-Britain in a Climate of Decline, (Methuen, 1987) pp. 108-9 참조

5)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총서1 <예술행정> 259쪽 참조

6)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The Economic Situation of the Visual Artist, (1985, London) p. 118참조

7) 하계훈, “합리적인 투자, 최대한의 효과” 월간미술(1998년 10월호) 137-42쪽 참조

8) Frances Borzello, Civilizing Caliban-The Misuse of Art 1875-1980, ( )

9) Rosie Millard, The tastemakers-U. K. Art Now, (Scribner,2002) pp.19

10) DCMS의 보고서 Visual Arts - A Policy for the Arts Funding System in England, (1997) p.9에서 재인용

11) 위의 보고서 p.6

12) 헤이워드 갤러리와 서펀타인 갤러리는 대략 중진작가와 신예작가의 전시장으로 분리하여 운영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1987년부터 서펀타인 갤러리는 예술평의회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운영을 시작하였고 1988년부터 헤이워드 갤러리는 사우스 뱅크 센터에 이양되었다.

13) 예술평의회의 미술관련 부서는 Art Department에서 1990년대에 시가예술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여 Visual Arts Department로 바뀌었다.

14) DCMS의 보고서 Visual Arts - A Policy for the Arts Funding System in England, (1997) Appendix 5-6 참조

15) ACGB의 12개 RAA는 ACE로 바뀌면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독립시키고 10의 RAB(Regional Arts Board)로 명칭을 변경하여 존속하게 되었다.

16) Nick Capaldi, Introduction to Year of the Artist/June 2000-May 2001, Breaking the Barriers, (Art 200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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