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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철 거돈사지 / 폐사지의 시공간에서 흙과 빛으로 뻗어가는 연결사유(chain-thinking)

하계훈



폐사지의 시공간에서 흙과 빛으로 뻗어가는 연결사유(chain-thinking)


하계훈 | 미술평론가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창작의 터를 잡고 30년 넘게 작업을 해 온 장상철은 강원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년에 이어 올해에 두번째 프로젝트로 원주 지역의 주요 폐사지 가운데 한 곳에 의미 있는 대규모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작년의 법천사지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에는 거돈사지 일원에서 ‘폐사지 프로젝트 - 다시 찬란한 빛으로’라는 보다 확대된 설치 작품을 펼쳐 보이면서 작품의 규모와 밀도 및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주제 해석에 있어서 자연의 공간에 작가의 예술 작품이 도입되어 예술과 자연이 접점을 이루며 새로운 의미와 체험을 유도하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평생동안 흙을 만지며 창작의 의미를 사유해 오면서 이제 곧 세상사를 달관한다는 종심(從心)의 경지에 들어가는 경륜의 작가는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의 숨을 멎게 만드는 대작 앞에서 오히려 덤덤하게 자신의 예술관과 창작 철학을 이야기한다. 예술 분야를 포함한 우리 인생의 모든 분야는 하나의 원리가 확산과 환원의 과정을 반복한다. 작가 개인으로 볼 때에도 자기의 예술관을 구체적으로 시각화 하는 작품에서 다양한 조형 요소와 표현 기법을 실험하며 길을 찾아가는 확산과 모색의 과정이 전개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러한 모색의 정점에서 독창적 관점의 정리와 깨달음을 통해 하나의 원리를 도출한 핵심적 예술관으로 귀결되는 것이 곧 예술가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장상철은 이처럼 예술적 조형의 본질을 찾아가는 자신의 창작의 과정을 나무에 비유한다. 작은 나무가 커가면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나아가고, 다시 그 가지에서 작은 가지가 계속 퍼져 나아가는 것은 마치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적 확산이자 작가의 연결사유(chain-thinking)에 비유될 수 있다. 한 가지 생각에서 다시 새로운 생각이 파생되고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마치 사슬처럼 생각의 띠가 확대되어 나아가는 현상이 장상철의 설치 작품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폐사지에 설치되는 작은 도조 육면체를 빚고, 입체의 면을 투각하여 그 내부에 광원을 설치하고 그러한 육면체 유닛이 만개를 넘게 확대되어 역사를 품은 공간에서 마치 은하수처럼 빛의 저수지를 만들어내는 장상철의 설치 작품은 이러한 연결사유를 가시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감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관람객이 예술작품을 체험하고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읽는 방법은 대부분 실내 전시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한정된 공간에서 작품과 관람객이 만나는 전통적인 감상 방법은 마치 종교적 의식처럼, 바라보는 존재와 보여주는 존재의 이원적인 설정으로 전개되어 왔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확대되어 1960년대말부터 시작된 설치미술 작품들 가운데에는 한정된 실내 전시공간을 벗어나서 자연의 광활한 환경을 배경으로 관람객과 만나기도 하였다. 작가들은 작품의 규모를 대형화하고 빛과 공기, 흙과 물 등 생명의 근원물질로서 자연에 존재하며, 그리스 철학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담아내는 근원 물질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당대의 사회적, 철학적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작품을 객체화된 감상 대상으로 마주하는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과 하나가 되어 그 작품이 설치된 공간 전체를 감상하고 체험하며 사유하는 개방적 예술의 장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장상철은 흙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늘의 별빛과 이 땅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이 작품과 어울려서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는 설치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이기에 앞서서 한 인간으로서 시공을 관통하여 인생과 우주를 사유하는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이러한 개념을 포착한 데에는 현실적으로 작가의 활동반경에 존재하는 폐사지의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때마침 진행되고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과정이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현실적 계기에 함몰되지 않고 작가가 오래 숙성시킨 예술작품을 가지고 폐사지에 개입함으로써 그곳에 설치된 작품이 품어주는 공간은 예술성 뿐 아니라 관람자가 정신적으로 고양되어 유토피아적 이상향까지 경험할 수 있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품으로 성립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앉은 형상을 가시화한 작품은 작가의 예술적 재능과 경험에 더해서 물리적으로도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거의 일 년간의 노력이 결집되어 현장의 설치미술 형태로 제시되는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생각과 노력이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가가 우리사회에서 짊어져야 하는 창작의 노고를 정당화해줄 수 있는 지표가 되며 작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은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작가의 예술정신이 시대와 관련 없이 자율적으로 드러남으로써 독자적인 영토를 작가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영토의 출입구를 관람객들에게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열어주거나 혹은 시원스럽게 활짝 열어준다. 부디 이번 설치작품이 장상철 작가와 관람객들 사이의 활짝 열린 만남과 교류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그 공간 역시 나무처럼 점점 자라고 뻗어서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무성하게 커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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