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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진 / 풍요사회에서의 소통전략

하계훈



배혜진 / 풍요사회에서의 소통전략


 
하계훈 | 미술평론가

 
현대사회의 특징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과잉’이라고 한다. 물론 사회의 모든 부분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확대된 물질적 풍요 속에서 희로애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질적 풍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각종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고 전에 없던 각종 편익을 제공해줌으로써 우리들 사이의 소통을 더욱 효율적이고 심층적으로 진행시켜 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풍요와 발전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풍요가 동반하는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는 ‘과잉’은 우리들의 희망처럼 인간관계의 긍정적 발전과 확산으로 이어지기도 하겠지만 부조리한 현대사회를 만들고 역설적으로 소외와 불통의 삶을 보다 빠르게 앞당기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물학적으로 군집행동(또는 무리행동 herding behavior)은 멀리서 바라볼 때와 달리 개체 사이의 본능적 이기심이 순간순간 작동하며 개체간의 소통은 정서적이거나 이성적이기보다는 물리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바로바로 복제되어 무리 속에서 확대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간을 동물과 수평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동물학적 속성은 우리들에게서도 일상에서 종종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즉 주변의 풍요로운 물질과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 과밀을 염려할 정도로 모여 살고있는 우리는 사회에서 타인에 대해서 군집행동의 특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이기심과 불통, 그리고 더 나아가 배제의 정서를 드러내는 군집행동 본능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초점을 미술로 좁혀보자. 현대미술 역시 ‘과잉’이다. 통계학적 숫자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시각예술가들과 그들이 생산해낸 작품들과, 그리고 그 작품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각자 나름의 해석을 붙여가며 감상하고 연속된 복제를 통해 미디어에 넘쳐나게 유통시키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저널리즘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대척점에는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하면서, 때때로 그것을 가공하고 유통, 소비하는 관람객이라는 대중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함께 현대를 살아가면서 작가와 관람객은 불가피하게 상호소통과 공감이나 비판의 과정을 거쳐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배혜진은 이러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로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 특성을 파악하여 보다 행복하게 소통의 효율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하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Sugar-coated man>은 비록 진중함보다는 가벼움 속에서 위태롭게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묘사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채꼴로 배치된 인물형상의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표현된 달콤한 캔디 인형 오브제가 화려한 무대 위의 군무처럼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익명성을 띠는 군중의 속성을 드러내주면서도 이러한 작품을 매개로 관객들을 달콤함에 이끌리는 소비 주체로서 소통의 장으로 나오도록 초대하고 있다.

작품 <소비_Freshly popped>에서 전시장 한 편에 설치된 팝콘 기계에서 쏟아진 팝콘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영화를 보거나 무료함을 달랠 때 무심히 입에 넣는 기호식품 가운데 하나로서 현대사회의 관계와 관심의 가벼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기계에서 쏟아진 팝콘 더미 양옆으로 세워진 펜스 줄에 매달린 인간 형상의 오브제들은 한 줄에 매어져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자의 휴대전화 조작 행위에 몰두하여 옆사람과의 연대와 연관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퇴근길 지하철에 가득 찬 사람들의 ‘같은 공간에서 상호 단절된’ 모습이나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과 같은 집단 주거공간에서 이웃에게 일어나는 일에 무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의 사정에 대해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눈과 귀, 그리고 입이 없이 솜사탕으로 표현된 <소통_Cotton man> 속의 인물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소통은 공감을 전제로 하며 공감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개방성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상대방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더 나아가 방어적 자세를 취하거나 배척의 제스처를 보여준다면 소통은 실패한다. 그러므로 소통을 희망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관람객과의 공감과 열린 자세로 관람자를 대하며 작가의 예술성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 배혜진이 관람객과의 소통과 공감의 접점으로서 <Sugar-coated man>, <소비_Freshly popped>, 그리고 <소통_Cotton man>과 같은 작품을 선택한 전략은 탁월하였다고 볼 수 있다. 긴장과 방어라는 무장을 해제하는 작품 형식과 색상, 형태 등은 소통의 전초로서 유효하게 작용하여 먼저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작품에의 접근을 유도하며 마침내 작가와의 대화와 소통에 이르게 된다.

20세기 초 프랑스 화가 마티스는 미술은 색채만 가지고도 특정한 분위기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서 미술작품에 있어서 색채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지한 소통은 소통 의지와 그 진정성만으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굳이 거창한 환경을 조성하고 물질적으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배혜진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막대사탕 모양의 오브제나 심심풀이 정도로 취급되어온 팝콘 등으로 풀어나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소통에 적절하고 유효한 시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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