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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아우르는 이미지의 서정과 조화

하계훈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미지의 서정과 조화

하계훈(미술평론가)


1986년 제 6차 베트남 공산당 대회에서 선언된 일명 도이모이(doi moi) 정책은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베트남에 새로운 혼합경제 정책 도입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이와 비슷한 공산주의 국가의 전환적인 경제정책으로는 1978년 중국 11기 공산당 중앙위 3차 전체회의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개방을 선택한 모델을 참조할 수 있다. 현재 아세안 10개국의 동맹체인  ASEAN(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으로 결합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19세기 후반을 전후하여 대부분 유럽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들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 혹은 영향권에 들어감으로써 사회생활 전반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외부에서 유입된 서유럽 문화가 충돌하고, 공존하고 융합하는 형태로 오늘날까지 그 흐름을 유지해오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근대 이전까지는 북으로 국경을 이룬 중국이나 서쪽의 태국과 오랜 시간동안 교류와 긴장의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근대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그 뒤를 이은 미국의 지대한 영향 속에서 현대사가 형성되어 오면서도 그들만의 전통을 보존하는 두 가지 경로로 사회가 전개되어 왔다. 미술에 있어서도 이러한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의 전통사회에 서구식 미술이 전통미술에 접목하게 된 계기는 1925년 프랑스 식민지 통치하에서 프랑스식 미술교육기관인 인도차이나미술학교(EBAI, Ecole des Beaux Arts dIndochine)가 하노이에 설치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베트남으로 건너온 프랑스인 화가 빅토르 타르듀(Victor Tardieu)에 의해 설립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는 12세기 이후 베트남의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불교미술이나 도자기, 나전칠기, 비단 그림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발전해온 전통미술계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식 미슬교육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베트남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장인(artisan)의 활동으로 인식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현대적인 미술교육 제도가 도입되어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1925년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이 장인의 일에서 예술가의 창조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비궉힙(Vi Quoc Hiep)은 이러한 사회적 변환기의 전후에 베트남 미술계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 남부의 호치민에 가까운 국제적 휴양도시 달랏(Da Lat)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작가는 유화뿐 아니라 파스텔, 과슈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인물화, 풍경화 등에서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해오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사회가 서양문화와 접촉하는 시기에는 두 문화의 충돌과 혼합, 그리고 여기서 다시 변증법적인 지양이 이루어져왔다. 예를 들어 20세기에 접어드는 시기를 전후하여 중국의 화가 쉬베이홍이나 우리나라의 화가 고희동 등과 같은 작가들도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동서 양쪽 미술 세계를 체험하고 작품에 반영하면서 자신들의 국가에서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궉힙은 베트남에서 전통문화와 서구문화가 만나던 문화혼성기에 베트남 미술계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에 태어난 작가는 1971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부터 미술협회에 가입하여 창작활동을 전개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부터 작가는 많은 공모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공공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고 여러 전시에 출품작가로서 초대받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나라에서 비궉힙과 비슷한 나이로 평생 미술활동을 해온 작가들과도 비슷한 작가활동의 궤적이 읽혀진다. 다만 두 나라의 비슷한 연령의 작가들이 서로 다른 미술 창작 체험을 한 부분이 있다면, 베트남이 러시아나 프랑스를 통해 서구미술을 토착화한 편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에는 주로 일본과 미국을 통해서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비궉힙의 경우에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어느 정도 통제된 미술활동을 거친 세대의 작가이면서도 자신의 예술세계가 서서히 형성되어가는 30-40대인 1980년대에 들어 Doimoi 미술시대에 작품 활동을 한 세대이다. 이러한 작가들은 비록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졸업 후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새롭게 접한 서양의 미술과 스스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전통미술 사이에서 많은 생각과 경험을 사유하고 실험한 세대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아카데미즘의 조형훈련과 전통적인 도제방식의 조형훈련의 장점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었던 작가들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비궉힙의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주로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인상파 풍의 작품을 구사해 온 작가는 실크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 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유화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작품을 제작하면서 베트남 미술계의 중심을 차지해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인물과의 정서적 교감과 연민을 바탕으로 드러나는 풍속적 아름다움이 읽혀지며, 기법 면에서는 작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참을성과 끈기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2013년작 <예르신(Yersin) 박사의 초상화>와 같은 경우는 작가가 여러 곳의 곡물시장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콩을 구입하여 물감대신 그것들을 가지고 모자이크식으로 화면을 구성한 작품으로서 인물의 유사성은 물론이고 작품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와 아크릴 작품 이외에도 종이 위에 과슈로 표현한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제작 연도를 볼 때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 작품들에서부터 최근작까지 고르게 포함되어 있어서 오랜 동안 창작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온 비궉힙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화면 전체의 색채의 조화와 주제의 서정성,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원숙하면서도 절제된 반추상적 표현들에서 한평생 붓을 들고 살아 온 원로화가의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70이 넘은 나이에 여전히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창작의 수련기와 원숙기를 지나 이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멈출 때를 아는 창작의 타이밍’을 이야기 하는 비궉힙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자들은 베트남과 한국 사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두 나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정서적으로 교감하면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현대 서양 미술, 과학과 더불어 동양문화에 대해 환기적 깊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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