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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하계훈

4년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가 1부와 2부로 나누어 보여준 작품들은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획기적인 전환으로 읽혀질 가능성도 있다. 1부 파초(芭蕉), 2부 Drawing 으로 구성된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이 두 전시가 동일인의 작품인가를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질적인 작품들을 경험한다. 사실 권기수는 동그리라는 검은색 그래픽 형식으로 단순화된 인물의 모습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며, 더 나아가 동그리와 작가가 거의 동일시되는 정도로까지 해석되어 왔다. 
동그란 얼굴에 두 개의 점으로 표현된 눈과 언제나 U자형으로 크게 그어진 입모양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웃어야 하는 동그리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불안,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적인 책임감에 대한 부담을 감추고 항상 밝은 웃음으로 포장해야 하는 작가의 모습이자 현대인의 모습으로 해석되어져 왔다. ‘Permanent Blue'라는 부제가 붙은 1부에서 채도 높은 색면들이 깔끔하게 채색된 풍경을 배경으로 동화 속의 인물처럼 단순화된 동그리가 인간 활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은 2부에서 종이나 캔버스에 거칠게 그려진 대형 꽃 등의 이미지 위에 흘러내리는 물감으로 구성된 작품들과 형식상으로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1부의 작품들은 표현 형식에 있어서 아크릴 물감을 얇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발라올림으로써 형성되는 세련되고 장식성 높은 평면적인 화면을 구성하게 되고, 그 결과로 대중들과 미술시장에서의 호의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2부에서 보여주는 대형 드로잉 작품들은 1부의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거친 표현과 즉흥성, 우연성이 화면 구성의 일부 요소가 되는, 그리고 먹이라는 동양적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가의 기존 회화와 전혀 다른 매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1부의 기존의 아크릴 작품들이 화면 위에 물감을 반복적으로 쌓아올리는 작업으로 구성되는 것에 비하여 반복성이 절제되고 한 번의 획이 물감을 종이의 조직 안으로 스며들게 함으로써 이미지를 결정하는 작품이 이루어진다는 대조적인 면이 드러난다. 권기수는 이전의 동그리 주제의 작품에서부터 언제나 자신의 작품에서 그리기 이외에 ‘친다’(붓이나 연필로 점을 찍거나 그리다)라는 개념을 강조해왔는데 이것은 작가가 당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작품의 성격에 수묵화적 근원이 맞닿아있음을 강조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미술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와 어떻게 이용되는가에서 그 가치를 평가받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가에 따라서는 자신이 창조해내는 작품이 이러한 두 가지 쓸모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게 되는가를 의식하고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전통회화의 정신을 몸에 익힌 작가가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길은 작품의 이용 가치보다는 해석과 감상의 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된 권기수의 초기 작품들은 대중적이고 일면 팝아트적으로 해석되어 오기도 하였다. 작가는 회화의 정의를 편협하게 적용하지 않고 매체의 확장을 시도하겠다는 의미에서 동그리로 대표되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최근에 와서 권기수는 자신이 새롭게 시도하는 드로잉을 통해 이전 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조형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국화로의 환원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러한 전환의 징후는 이미 이번에 출품된 2018년작 <My favorites-a yellow boat-red>에서 보여준 한국화와 서예의 대련(對聯) 형식이나 2018-9년 작품 가운데 배경이 빈 공간으로 제시되는 형식으로 전통회화의 구도와 형식을 자신의 화면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White-Oar>, <Oar-Black> 등의 작품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가 보여주는 이러한 전환은 자신의 작품의 가치와 쓰임새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한층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의 결과로 추측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내용과 형식의 획기적 전환은 모종의 위험성을 함께 동반할 수 있다. 모쪼록 이번 권기수 작품의 환원과 전환의 시도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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