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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을 통한 예술과 인간의 소통

하계훈

과학기술을 통한 예술과 인간의 소통

하계훈(미술평론가)

<포스트 휴먼: 인간 이후의 인간>전은 현대사회에서 기술과 정보가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환경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입장을 살펴보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전례 없이 확대되어 우리들이 그 확대와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버거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을 모르는 문맹의 상태와 유사하게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술적 문맹(예를 들어 컴맹), 또는 외래어 표현으로서 누군가가 디지털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는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미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기술의 발전은 늘 예술가들의 불안감과 희망이라는 양면을 자극해왔었다. 사진기가 발명된 초기에는 사진이 화가들, 특히 그중에서도 초상화가들의 일감을 빼앗을 것 같은 불안감이 커져갔다. 프랑스의 화가 폴 들라로쉬(Paul Delaroche 1797-1856)는 사진기라는 기계가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회화는 끝났다”며 탄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화는 사진과 병행하여 여전히 화가들의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로 지속되어 오면서 추상의 영역으로까지 발전되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기술의 발전이 일방적으로 예술을 위협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20세기를 앞둔 세기말 전후에는 지금처럼 사회의 변화 속도가 급격한 시기였으며 그만큼 작가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삶이 자의든 타의든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그 커다란 흐름을 거슬러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태도는 두 갈래로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와 변화에 저항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태도가 혼재하였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미래파 화가들은 과거를 폐기하고 새로 다가오는 기술사회의 속도와 역동을 환영하였으며, 그런가 하면 밀레나 일부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작가는 사라져가는 농촌을 찾아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과 파리 외곽의 농촌으로 이주한다든가,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고갱과 같은 작가는 아예 유럽을 벗어나 남태평양의 섬 지역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가들의 시도를 거쳐 이제 한 세기 남짓 시간이 경과한 지금의 사회에서 오늘날의 작가들은 다시 한 번 눈부신 기술발전의 도약을 이루는 환경을 맞이하게 되고, 또다시 과거의 작가들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였던 것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기술사회에 대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클레이아크 미술관에서 기획한 <포스트 휴먼: 인간 이후의 인간>전은 나름대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클레이아크 미술관은 전시 공간의 특성상 일반 전시공간의 사각성의 많이 배제되어 있고 원형적인 공간과 그 주변을 감아 돌아가는 관람동선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공간 역시 작가들에게 이전과 다른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공간에 참여하는 14명의 작가들은 이처럼 새로운 공간에서 각자의 작품들을 통해 오늘날의 예술과 기술의 관계를 사유하고 그들의 관점들을 표현하고 있다.

먼저 전시장 중앙 홀에 작품을 설치한 원로 작가 김광우는 60년 가까이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힘있는 작품들을 구성해 온 작가답게 이번 기회를 통해 흙의 물성을 연구하는 작품들과 함께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전쟁에 대한 경험을 시각화하는 트럭과 미사일과 같은 오브제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쟁중에 빠른 속도로 현장을 누비며 활약했을 것같은 트럭은 이제 그것이 지나온 시간만큼 자연적인 수명을 다하여 녹슨 철이 표면을 뒤덮고 타이어는 펑크가 난 채로 전시장에서 화석화되어 가면서 전쟁의 흔적과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 옆에는 작가가 커다란 흙판을 쇠망치로 깨뜨려 파편화시킨 잔해물들이 수북이 쌓여 전쟁이 가져온 파괴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6.25라는 끔찍한 전쟁을 몸소 겪은 작가로서 전쟁의 기억은 극한의 공포일 수도 있고 커다란 트라우마로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김광우는 이러한 전쟁을 작가의 시선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관조하면서 물성과 상징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일반화시킴으로써 관람객과의 교감을 추구하고 있다.
도예 작업을 20여년간 진행해 온 신이철은 어린 시절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운데 하나였던 로봇 태권 브이를 모티브로 하여 작가 세대의 기억과 꿈을 지금의 세대들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신이철 역시 흙의 물성을 오랜 기간 탐구해 온 작가로서 철제 로봇의 딱딱함을 세라믹 인형 형태의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한 시대의 영웅적인 존재가 물성의 변성을 통해 새 시대의 또 다른 아이콘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독일에서 조형 수련과 작가활동을 해온 작가 김홍진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브를 도출하여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곤충 가운데 개미의 그것에 비유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메운 개미들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이 개미들이 군집된 공간에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숨겨놓거나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현대인들의 삶의 허무와 맹목적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심준섭은 설치 작품을 통해 ‘소리’라는 비가시적인  요소를 시각예술에 도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동기는 작가 자신이 이명증을 앓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명멸하는 공간의 곳곳에 스피커가 부착된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며 복잡하게 연결된 파이프들은 마치 소리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로 전환된 듯하여 시인 김광균의 시 ‘외인촌’의 마지막 구절에 표현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처럼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작가는 우리 삶의 일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소리로서 우리들의 숨소리나 어린 아이들의 심장 소리 등을 통하여 산업사회의 생산설비가 배출하는 소음을 상쇄하는 해결책(antidote)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지수와 김선명은 3년 전부터 융복합적 개념으로 한 팀을 이루어 호흡을 맞추며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결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로부터 침범당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이러한 필요성을 채워줄 공간으로서 그리스어 돌(petra)과 신의 피를 뜻하는 이코(ichor를 합성한 페트리코라는 체험적인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노진아는 인간과 교감하는 기계를 탐구해오고 있다. 생명과 감정을 가진 기계인 사이보그에 대비하여 인간의 몸은 호르몬에 의해 작동되는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이론에서 따온 가이아라는 이름의 기계인간을 조형화하여 전시장에서 인간과 교감하는 작품을 제시하면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좀 더 높은 차원의 교감이 가능하도록 진화가 이루어지는 가이아를 진화시키는 작업의 여정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준은 인간의 삶이란 곧 자신의 몸을 관리하며 유지해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그 몸을 대상으로 사유해 온 작가다.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인체를 그려내고 그 표면인 피부에 다양한 문신을 표현하는 방식의 작업을 해왔다. 작가가 문신을 도입하는 이유는 본래의 인체에서 읽혀지는 차가움을 보완하는 방식으로서 채택된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래 인체에 가해지는 문신은 상대방에게 우월감과 공포감을 주기 위한 전투의 수단이기도 하였고, 원시부족간의 전투에서 우군에 대한 신분표식이나 인간의 목을 베는 전투 관행 속에서 시신 수습을 위한 식별지표 역할로 문신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김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몸에 수많은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개인을 넘어서는 시대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정윤은 건축가와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 출품하고 있다. 작가는 성인 키 정도의 터널 형식으로 패브릭 튜브를 설치하고 그 내부에 공기를 주입할 수 있게 하였다. 그기고 그  공기조형물 내부에 군중, 도시 등의 세트를 구성해 관람객이 외부에서 그림자를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직접 내부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어 외부에서 관람하는 이들에게 이미지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공간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늘날 기계와 사회 규범에 의해서 유도 기계화 되어가는 삶이 지배하는 우리의 환경에서 공간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대응이 전적으로 기계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본격적인 영상 작업을 선보인 김과현은 2008년부터 협업해오고 있는 김원화와 현창민으로 구성된 팀이다. 김과현은 이번 전시에 ‘견지망월’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우주비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한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를 공상과학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3개의 대형 화면에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오늘날 우리들이 과학적 지식과 정보가 풍부해지는 만큼 과학적 사유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종교적 생활태도에 입각하여 과학현상을 바라보거나 상상하는 현실, 그리고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쳐다보는 우리의 과학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가한 14명의 작가들은 나이와 경험, 그리고 매체를 초월하여 자신들의 창작 환경을 둘러싼 과학과 기술의 개입과 제휴를 각자의 작업에서 대응해나가고 있다. 포스트 휴먼, 즉 자연 환경 속의 인간을 넘어서 과학과 정보가 인간의 생활과 의식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지배할 수도 있는 시대에 과학기술이 인간과의 대립과 종속을 지향하기보다는 공생의 토대가 되고 예술가들의 창조적 진화와 확장의 영감으로 작용하는 세상을 꿈꿔보는 이번 <포스트 휴먼: 인간 이후의 인간>전은 다시 한 번 예술과 과학의 관계와 작가와 관람객들 사이의 소통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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