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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통한 자기사유와 타자와의 소통

하계훈

흙을 통한 자기사유와 타자와의 소통

하계훈(미술평론가)

정나영은 흙을 재료로 삼아 시각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흙이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행위 예술로 자신의 작업을 확대시키는 작가다. 흙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생태적으로도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어떤 음료나 식품이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품질을 갖게 될 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 흙(토양) 등의 요소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의 만물이 공기, 물, 불, 그리고 흙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요소들의 결합과 분리가 곧 생성과 소멸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원시적인 상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학을 넘어서는 사유의 차원에서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 세상의 기본적인 구성이 무엇인가를 한 번 쯤 생각해보게 해주며, 그 가운데 흙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정나영은 10대 시절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보통의 한국 작가들이 거쳐가는 예술가로서의 수련과정과 다른 길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가족과 친지 및 친구들과의 분리 및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그를 극복하고 점차 자기 정체성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정나영이 이러한 자신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본적인 재료는 흙이었다. 
흙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 가운데 하나다. 도시화와 함께 그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흙은 작은 흙의 입자들이 뭉쳐져 있는 상태이며 그 사이에 각종 유기물과 무기물, 수분 등에 섞여 있기 때문에 거기에 접촉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적당한 수분이 함유된 토양에 식물의 뿌리가 흙의 입자들을 감싸고 붙들어주는 형태가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산과 들의 자연의 모습이다. 여기서 수분이 제거된 극단적인 경우가 사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막은 곧 생명체의 부재, 죽음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도 사실 ‘사하라’라는 명칭 자체가 아랍어 '사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식생이 없는 적색의 평원을 뜻한다고 한다. 이처럼 흙이라는 물질에는 생명과 죽음의 상징이 포함되어 있어서 예술가들의 작품에 좋은 영감과 모티브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나영은 도자를 전공하면서 점토를 접하게 되고 도자기 재료인 점토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발견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따라서 작가가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작품들은 작가뿐 아니라 관람자들에게도 자아의 발견을 유도하는 창구인 셈인 것이다. 초기에 작가는 점토를 성형하여 오브제를 제작하고 그 안에 작가 혹은 관람자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자기보호와 자기 방어의 기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2011년 작품 '전용 다이어리'나 2012년의 '코쿤'과 같은 작품들은 작가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동시에 외부 환경에 대한 방어기재로서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반응일 수도 있으며 향후 전개되게 되는 낯선 환경에 대한 극복과 그로부터 확대되는 외부외의 소통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식은 작품의 완성도와 보편적 미학에 입각한 설득력에 의해 관람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소통의 배경에는 작품이 갖는 미학적 가치 이외에도 단순 명료한 형식과 과장 없는 메시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조형 작업에서 작가는 점차 재료와 소재에 중점을 두는 태도로부터 이탈하여 주제를 중심으로 심리적이며 상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작가로서의 작업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게 되고, 그러한 확장의 연장선에서 정나영이 선택한 것이 자신의 작품과 흙을 이용한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2013년작 '기둥'과 2014년의 '개인적 커튼' 등의 작품들은 작가가 코쿤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의 심리를 담은 작품이락 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은 정나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낯선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자기 정체성을 떠올리게 해주고 지역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질이며,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생명과 관련된 의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도시화된 공간에서는 흙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흙묻은 손이나 흙수저 등은 사회의 저층에 속하는 사람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유명한 소설가 펄 S 벅의 소설 <대지>에서 주인공 왕룽이 가난을 벗어나서 유흥업소에 드나들 때 업소의 사람들은 그를 흙냄새와 마늘냄새가 나는 사람이라며 무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나영은 이러한 흙을 또 다른 상징적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도입시킨다. 작가에게 흙은 자기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더 나아가 외부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물질, 즉 생명과도 같은 소중환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작가의 퍼포먼스 '잡거나 던지거나'는 흙으로 상징되는 낯선 곳의 타자와 작가 자신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조우하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제 초기의 코쿤에서 밖으로 나와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타자의 흙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해의 또 다른 퍼포먼스 '벽: 자기 방어'에서 작가가 외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벽을 구성하던 벽돌을 관람객들에게 증정하는 행위는 보다 적극적으로 작가가 외부와의 소통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정나영은 초기 도자 작업에서부터 현재까지 흙을 매개로 하는 자기 정체성의 탐구와 타자와의 소통을 모색하는 적극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개인적인 서사시를 써오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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