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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간의 교류와 이해를 모색하는 시금석

하계훈

세대간의 교류와 이해를 모색하는 시금석

하계훈(미술평론가)

우리 인간에게 100세라는 나이는 비현실적인 숫자로서 누군가가 아주 드물게 오래 사는(혹은 살기를 기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개념이다. 한 사람의 인생 경로는 대부분의 경우 건강한 탄생과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는 유아시절, 소년과 청년 시절의 교육 기간, 그리고 이 이후에 각자의 관심분야에서 활동하는 사회생활의 기간이 보통 20-30년간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60세쯤을 전후하여 일선의 활동에서 물러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의 생활을 보내게 된다.
화가들의 경우도 미술대학의 수련 기간을 지나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작업의 길로 들어서면, 앞에서 언급한 정도의 기간을 창작에 몰두하면서 인생의 한 사이클을 채워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일부 작가들에게 이 사이클이 좀 더 연장되어 때로는 7-80, 혹은 90대까지 창작 활동의 전면에 머무르기도 하는데, 그렇더라도 100세를 넘기는 작가는 아주 드물게 목격된다. 이번 자하미술관에서 기획한 <백세시대_마르지 않는 붓>전은 이렇게 100세를 넘겨 살면서 창작 작업을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출품된 6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활동 기간 전반의 작품들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이들 작가들의 기나긴 창작 여정의 에너지가 강렬함을 발산하는 시기의 작품들이 다수 소개되었다. 특히 현재 생존하고 있는 작가들 가운데 전시를 앞두고 얼마 전에 새로이 제작한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도 있어서 필자를 놀라게 만들기도 하였다. 
시간을 거슬러 이들 작가들의 초기 활동기를 살펴보면 1920-30년대로서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이며 1922년부터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가 열리고, 일부 작가들이 일본과 유럽으로 미술 유학을 떠나는 시기였다. 이번 출품작가들 역시 대부분 일본과 프랑스, 미국 등으로 건너가 그곳의 미술 현장을 경험하였으며 그 중 일부 작가는 현지에 오랫동안 머물러 창작활동을 해오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에서는 그 당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미술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제작되었으며 이들의 선구적인 모색은 국내의 후진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계승되기도 하였다. 
출품작가 가운데 가장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장발의 경우 1901년 생으로서 20세에 일본 유학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국내의 미술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환갑을 넘긴 나이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100세를 맞는 2001년까지 착장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긴 인생 여정에는 국내에서 식민통치와 해방, 6.25 전쟁과 5.16 쿠테타 등이 이어지는 시기였으며, 이러한 시기는 작가의 창작 환경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리 좋은 시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미국행을 택하여 원숙한 말년의 창작 작업을 그곳에서 수행하였는데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1975년 무렵의 작품들은 칠순을 넘긴 작가의 왕성한 착장열기를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수묵채색과 잉크, 수채물감 등을 사용하여 동양적인 서예의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아마도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1910-62)이나 샘 프란시스(Sam Francis 1923-1994)와 같은 동시대의 작가들과의 접점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2016년에 103살의 나이에 작고한 한묵의 경우는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거쳐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국내의 후학들과 파리 유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해외 체류기간이 길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말년까지 기하학적인 추상의 화면을 통해 조형의 원리를 탐색하던 작가의 집념이 이번 출품작을 통해 부분적으로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중섭과 함께 어울렸던 김병기는 평양 출신으로서 20대에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창작활동을 하다가 6.25 전쟁을 계기로 월남한 작가다. 국내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거쳐 1965년 뉴욕에 정착한 작가는 1990년대 국내 화랑의 도움으로 뉴욕과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현재는 국내에서 노장의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의 개인사정으로 많은 작품을 출품하지 못했지만 2016년작 누드 습작에서는 작가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빠른 선의 운동감이 화면의 활기를 불러일으켜준다.
김병기와 동갑으로서 같은 평양 출신인 장리석은 6.25전쟁을 계기로 월남하여 제주에 정착하였다가 서울로 이주하면서 주로 국내에서 활동해 온 원로 작가다. 장리석이 월남하여 제주에서 재혼하여 가정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제작한 연고로 몇 해 전 그의 이름을 딴 공간이 제주도립미술관에 마련되었으며 2008년에는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번 출품작에서 보는 것처럼 장리석은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제주에서 바다와 해녀. 조랑말과 같은 제주의 특색있는 모습을 과장 없는 소박한 화필로 기록하여, 원로 평론가 이구열로부터 타히티에서 작업했던 화가 고갱에 견주어 평가되기도 하였다.
2012년 100세의 나이에 작고한 윤중식은 일본 유학 후 돌아와 국내에서 주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주로 풍경화를 그려왔던 작가는 이번에 출품한 1950년대 작품과 1970년대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창작 활동에서 비교적 커다란 양식적 변화 없이 석양의 풍경과 고향의 모습을 수평적인 화면 구성에 담아 일명 ‘계단식 구도’를 구사하여왔다. 이번 출품작에서 보는 것처럼 윤중식은 수평선을 강조함으로써 화면 안에서 동일 계열의 색채가 변주되거나 보색 계열의 색채들이 병치되어 리듬과 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본적으로 안정된 전체 구도 속에서 그러한 상황이 전개되도록 하는 틀을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준의 경우 올해로 100세를 맞는 작가로서 이번 전시에 신작을 출품함으로써 관람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데 1970-80년대의 기하학적 색채 추상 작품을 제작해왔던 작가가 최근들어 구상적인 인물로 전환하여 마치 20세기 초 파리의 피카소와 그 친구들이 즐겨 묘사하던 서커스의 피에로를, 시공을 초월하여 다시 불러냄으로써 젊은 시절의 자아와 화면 속에서 조우하는 작가의 정신을 읽는 것같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작가는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피에로처럼 사람들을 웃김으로써 즐겁게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예술의 목적에 대한 작가의 초월적인 견해가 평범함과 상식에 접점을 만들어내는 의미있는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자하미술관 측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백세를 넘어 창작을 지속하여왔던 작가들이 젊은 후학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예술가의 표상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가볍게 받아드릴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2000년 전의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낙서에서도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말하는 글귀가 있었다는데 과연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요즘 젊은 작가들과 백세를 넘긴 작가들 사이에 선후배 간의 이해와 존경이 이루어지고 이들 사이의 예술적 사고와 의식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좁혀질 수 있다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는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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