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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하계훈

파스텔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하계훈(미술평론가)

최연은 주로 파스텔을 사용하여 작업하는 화가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파스텔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사용되던 재료로서, 17세기 프랑스 왕립미술학교가 개교할 무렵 파스텔이라는 용어가 학교 교육용어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니 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이 재료를 다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보다 앞서 1500년경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당시 밀라노를 방문한 프랑스 화가를 통해 파스텔을 접하였다고 한다. 대상의 윤곽선을 흐리게 표현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구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파스텔은 적절한 재료로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파스텔은 재료의 특성상 사물의 윤곽을 뚜렷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대상의 특징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재료다. 그래서 파스텔은 주로 인물의 표정을 부드럽게 표현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이보다 더 폭넓고 과감하게 파스텔을 사용한 작가로는 정물화를 주로 그렸던 샤르댕이나 환상적인 장면을 그린 르동, 그리고 발레리나들의 복장과 순간적인 몸동작을 빠르게 포착한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스텔과 유사한 질감을 주는 목탄으로 친구 에드몽을 그린 쇠라의 작품은 1883년 살롱전에 채택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사용되던 파스텔은 한 때 프랑스 혁명기에는 작가들에 의해 배척되기도 하였는데 그 주된 원인은 혁명 정부의 타도 대상이었던 왕과 귀족들이 자신들의 초상화 등에 파스텔을 자주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파스텔은 회화 표현의 재료 가운데 인물 표현에 주로 사용되어 왔으며 부드러운 표현과 다채로운 색상,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업이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미술사에 등장하는 유명 작가들이 말년에 유화물감 대신 파스텔을 사용하여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연 역시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 모티브는 인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실상 무제한인 셈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사건, 환경 등을 예민한 촉수로 포착하여 대상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을 과장됨 없이 기록해오고 있다. 따라서 최연의 작품을 하나로 모아서 훑어보면 작가의 생활과 가족관계, 활동 반경과 관심의 방향 등이 상당 부분 드러나게 된다.
최근에 와서 목탄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는 주로 파스텔을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으며 투명한 색채와 무리 없는 구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작품을 통해 성공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최연의 작품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사람들의 모습이나 골목과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이 든 어른들의 한가롭고 자연스러운 표정 등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의 감상을 넘어서서 잠시나마 아련한 추억과 향수에 빠져들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다녀온 산의 오솔길이나 집근터 텃밭의 채소와 골목길 담장 틈에서 솟아나온 잡초의 생명력이 햇빛 속에서 푸르게 드러나는 작품 등에서는 작가 최연의 예민한 시선이 잘 드러나며 그것을 시각화하는 감각과 테크닉이 돋보인다. 최연의 작품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감각이며, 특히 색채의 대비와 빛에 의해 드러나는 사물과 대상의 표정이나 명암의 표현에 있어서 지나친 과장 없이 무난한 처리를 하는 데에 있다. 최연 작품의 잔잔한 울림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대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솔직성과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에 더해서 그림과 함께 시를 공부해 온 작가의 다중적 감수성과 파스텔이라는 매체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합을 이루어내는 듯하다. 
작가들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과 성향이 있다. 다만 시대와 상황이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화폭을 마주하는 작가는 망설임과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의 심사에서 요구하는 표현의 기준과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려운 시간을 겪은 일이 아마도 작가와 사회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연의 작품 역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를 파스텔이라는 재료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신화적 거대 담론이나 형이상학적 사유를 매개하는 추상의 시대를 우선으로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서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술시장에서도 작품의 내용에 앞서서 재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파스텔이라는 재료가 조금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어떠한 이유로든지 자신이 가진 감성과 재능을 억제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하거나 미래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최연 역시 자신의 시각적 예민함과 타고난 색채 감각, 그리고 솔직하게 마음으로 나누며 대상과 교감하는 능력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이제까지 작품 창작에 몰입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의 주도적인 선택에 따라 작품 세계를 펼쳐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최연 작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엘 버틀러는 작품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가 아니라 작가가 무슨 생각과 감성으로 그것을 그렸는가를 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 진정한 작품 감상의 방법이며, 결국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창작의 최종 목표일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최연이 작가로서의 감각과 공감 능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계속한다면 이러한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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