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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묵화의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하계훈

한국 수묵화의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하계훈(미술평론가)

수묵화(水墨畵)는 주로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전통적인 회화를 대표하는 형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화나 수채화와 같이 회화의 재료를 명시함으로써 작품의 물리적인 성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명칭이다.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을 중심으로 수천년간 전개되어 온 수묵화는 동양미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 이후 세계의 역사가 서유럽과 북미대륙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이처럼 장구한 역사를 가진 회화형식이 미술사연구와 미술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왔지만, 수묵으로 창조되는 미술의 가치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향후 언제라도 그 가치가 다시 천착되고 재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수묵화가 서양의 일반적인 회화와 차이를 이루는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는 먹과 붓이라는 단일한 재료로 작품을 제작하며, 그 과정에서 붓의 흔적이 다양하게 드러남으로써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이 다른 형식의 작품들에 비하여 훨씬 깊고 중의적이며 상상력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유화나 아크릴에 사용하는 붓에 비하여 좀 더 부드럽고 다루기가 힘든 붓으로 먹을 찍어 화선지에 필획을 그어가는 수묵화의 화법은 작가의 입장에서 붓놀림을 더 민감하게 다루어야 하는 기술이 요구되며, 화면에 형성되는 붓의 흔적과 먹의 농담에서 오는 미세한 차이와 변화에서 불러일으켜지는 상징성이 사양화의 그것이 비하여 훨씬 더 깊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묵화의 특징은 다른 재료와 달리 수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번에 그어진 붓의 궤적과 그로부터 드러나는 먹의 흔적이 조형적인 절대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묵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료의 물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붓을 다루는 세밀한 손기술에 대한 오랜 훈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수묵화는 기법적으로 세련된 차원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서는 정신성과 상상력을 크게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묘사 위주의 회화가 극복하기 어려운 비가시적 가치를 다루는 작품이다. 따라서 꽃을 그리면서 자연학습도감처럼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을 넘어서 꽃의 향과 기품을 담아야하고, 인물을 그리더라도 골격과 근육의 닮음을 넘어서서 그 인물의 성격과 정신까지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묵의 정신은 사실상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묵화에서 이러한 불가능할 듯한 근본원리(cannon)를 오랜 시간 유지해오는 것은 (물론 일부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의 가치를 보존하고 그로 인해 인간 정신의 핵심적인 가치가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인해 희석되거나 허물어져 가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사물을 인지하고, 기억하여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작용을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은 상식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회화에 있어서 사실적인 묘사와 여기에 더해져서 일정한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다만 이 단계를 좀 더 넘어서면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생산해낼 수 있는 고차원의 사유와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이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형태의 하나가 수묵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회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화된 원근법의 적용과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입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회화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로 채택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 대상의 정확한 형태를 포착하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이 기법이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 템페라, 유화, 아크릴 등 재료의 발달에 따라 표현의 지향점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양미술에서 추구하는 바는 화면 속에서 대상을 포착함에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그럴듯함(verisimilitude)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세부(detail)에 대한 묘사가 필요해지고 이러한 표현을 위한 기법을 도와주는 과학의 성과가 이를 뒷받침해왔었다.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계는 지금까지도 현재와 일상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가 하루가 다르게 태어나고 변화하는 가운데, 소위 4차산업혁명 시대를 기대하면서도 서양(식) 미술에서 중요한 문제는 자신들의 현실과 닮은 가상성(vertuality)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관심의 맨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수묵화는 은둔과 절제, 관조와 초월을 담아내고자 하는 속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속성은 자연스럽게 변화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을 유발하게 되었을 것이다. 서양미술이 기법과 기계의 발명으로 변화와 전환의 순간을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묵화의 세계는 외부세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채 커다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무게는 수묵화로 내려앉는다.  

수묵화는 서양미술 방식으로 보면 사실주의라기보다는 추상에 가깝다. 그리고 설명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이다. 산문적(prosaic)이기보다는 시적(poetic)이다. 그리고 세속적(mundane)이기보다는 초월적이고 은둔적(reclusive)이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도식화하여 수묵화를 설명하는 방식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분석은 수묵화의 성격을 좀 더 분명히 드러내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묵화의 전통은 조선시대를 지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쳐오는 기간 동안 적지 않은 흔들림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1930년대 김용준이 ‘수묵남화론’을 펼치면서 일본 제국주의 통치 아래서 채색화 위주로 전개되던 우리 미술계에서 수묵이 ‘봉건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노력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20년 동아일보에 <동양화론>을 기고한 변영로와 같이 연구자에 따라서는 조선시대 정선과 김홍도, 장승업 등으로 이어 온 전통이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왜색이 입혀지게 되고 수묵보다는 채색 위주의 화풍이 우리 화단을 지배해 온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의 근대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 인해 정치, 경제, 외교 등의 분야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식민지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문화 분야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미술 분야에서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수묵 중심의 문인화가 강조된 것은 이러한 우리 역사의 흐름을 읽어보면 일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는 이러한 맥락에서 채색화의 왜색성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수묵화에 대한 상대적인 우호적 평가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송희경에 의하면 우리 현대미술에서 1960년대는 이러한 수묵화의 회복 경향을 따르면서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진경산수화나 풍속화와 같은 전통 장르가 재조명받게 되었으며 1960년대부터 소위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 가 확산되었다. 사경산수화는 우리 전통산수에 서양식 화법이 가미된 화풍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1950년 발생한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문화가 직, 간접적으로 수입되어 우리 전통문화와의 융합이 일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미술의 전통으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수묵화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타자와 서양 신문화라는 또 다른 타자와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요소들과의 융합이 이루어지면서 현대적인 수묵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묵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의 수묵화는 부분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외부로부터 주입되거나 스며드는 영향력을 극복하면서 우리 고유의 정신과 기법을 지켜오려고 노력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개되는 상황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수묵화의 전통은 그 깊이와 두께를 잃어버려왔다. 그 이유는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사회 성장 방향이 서구화 일변도로 치우치면서 전통과 과거는 계승하기보다는 극복하고 버려야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1970년대에 잠시 도자기와 함께 서화 작품들이 미술품 시장에서 골동품 거래에 대한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있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술적 관심보다는 압축 성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장식품같은 성격으로 미술시장을 스쳐갔을 뿐이었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근대를 보는 눈(한국근대미술: 수묵, 채색화)>전의 도록에서 큐레이터 김희대는 우리 수묵화와 채색화의 연구가 일천하고 전문 인력이 부족하며, 그렇기 때문에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기획자로서의 어려움을 밝힌 적이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이때쯤에는 이미 미술시장에서도 1970년대의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투기적인 관심이 사라지고 서구식 미학을 담아내는 작품에 관심이 옮겨가고 있었던 때라서 이러한 전시의 기획이 대중적인 관심을 반영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당시의 우리 수묵화에 대한 염려의 시각은 원로 작가 이종상이 2001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수묵의 향기, 수묵의 조형 – 한,중,일 현대수묵화전>의 도록에 기고한 글에서도 나타난다. 이종상은 그의 글에서 남북의 단절, 동서양 화단의 단절, 추상과 구상의 단절 등 한국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마당에서 중층적으로 일어난 단절의 현상을 겪어 오면서 수묵이 갖게 되는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우리 전통회화를 담당할 작가들은 주로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등의 미술대학을 통해서 배출된 작가들이었으며 그들에 의해 다시 후학들이 양성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들의 작품 경향과 그들이 활동하고 주장하였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당시 우리 수묵화의 상황이 간접적으로 가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미술대학 상황은 수묵화에 대해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소위 서양화와 동양화로 구분되는 미술대학 진학 현상에 있어서 학생의 숫자나 졸업 이후 활동하는 작가의 비중, 미술시장의 관심 등에 있어서 우리  화단은 서양화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88년 하계올림픽을 개최를 기점으로 정부에서 해외여행 자유화를 실시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을 완화하여, 미술 분야에 있어서 외국 유학 학생들의 지원 국가가 대부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도 미술 분야에 있어서 서양 중심화 현상이 점점 더 가중되어왔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무렵 정부는 ‘세계화’의 구호 아래 사실상 서양화(westernization)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1990년 무렵부터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미술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인 각종 국제 비엔날레 형식의 행사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수묵화가 지향하는 정신과 형식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을 다루어 왔음을 볼 때,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의 수묵화가 국내외에서 활성화되기에는 국제적인 미술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최되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수묵화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으며, 성공적으로 진행이 된다면 이 기회를 통해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수묵화라는 동양회화 분야를 비엔날레 주최측과 지역 예술가들이 앞장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전남지역은 진도에 있는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을 비롯하여 수많은 화가들이 배출된 우리나라 남종문인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수묵화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 돌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어쩌면 태생적으로 안고 가야하는 의무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서양화가로 알려진 오지호의 경우에도 1946년 <신문학>에 기고한 글에서 “동양화가 오랜 역사를 두고 조선 본래의 예술이었고 또 앞으로도 조선의 예술이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역사의 흐름에 등을 지는 것은 자멸을 결과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수묵화는 전통의 근간을 유지하되 시대의 흐름에 등을 돌리지 않아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조화롭게 잘 수행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명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쉽지 않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묵화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필자는 우선 단기적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긴 호흡의 실천을 권장하고 싶다. 현재의 수묵화를 동시대의 작가들과 관람자들에게 소개하고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어린 세대들에게 수묵화의 진정한 의미와 기치를 잘 전해주고, 그로부터 그들이 능동적으로 수묵화에 접근하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거부감 없이 즐기면서 은연중에 자신들의 문화로 체질화하고 점차 그 가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게 해주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계획이 예정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에서 수묵화를 아끼는 좋은 작가들과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기획자들을 풍부하게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묵화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려면 이러한 분위기를 공유할 수 있는 학계와 언론계의 확산활동, 정부의 정책과 기업 메세나의 우호적인 지원과 관심, 그리고 미술시장에서의 관심확대 등이 뒤따라 줄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의 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수묵화의 활성화와 국제적인 약진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수묵의 향기, 수묵의 조형 – 한,중,일 현대수묵화전>에 기고한 중국 중앙미술학원 짱리첸(張立辰) 교수의 주장처럼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민족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세계적 차원의 문화전략의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과 의식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수묵화를 비롯한 문화활동 내부에서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이와 동시에 수묵화와 같은 우리의 문화자산을 정당하게 가치평가 해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정치와 외교, 경제 등의 분야에서 스스로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국가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전략을 더한다면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수묵화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회화의 현황이 서로 비슷한 상황에 있음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으므로 이들 국가들 사이에서 국가를 초월하여 지역의 공통된 문화 자원으로서의 수묵화를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공동연대 노력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계기로 우리 화단에서 수묵화가 처해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현재보다 더 나은 수묵화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기회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수묵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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