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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회귀를 위한 반성적 출발점으로서의 수직 정원

하계훈

자연회귀를 위한 반성적 출발점으로서의 수직 정원

하계훈(미술평론가)

2017년에 건축이 완성된 부산 현대미술관 건물의 전면에 수직 정원(Vertical Garden)이라는 대형 설치 작업이 시행된다고 한다. 수직 정원은 문자 그대로 ‘정원’을 의미하되 보통의 정원처럼 지면에 식물들을 배치하여 가꾸는 방식이 아니라 지표면으로부터 수직을 이루는 면에 기구를 설치하고 그 위에 식물들을 배치하여 인위적으로 식물들의 군집을 이루도록 하여 우리들이 그것을 새로운 형식의 자연 혹은 예술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공간 구성 형식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1980년대 이후 전세계의 주요 건축물과 도시 구조물에 이와 같은 수직 정원을 설치해 온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에 의해 시행되는 이번 작업은 무엇보다도 국내에서는 패트릭 블랑에 의해 처음 시도되는 새로운 기회라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공립 기관들은 1980년대를 전후하여 업무 공간을 건축하면서 거의 하나같이 화강암이나 철강과 유리, 그리고 그와 유사한 재료들로 건물 표면을 마감해왔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 가운데 몇 가지를 들어보면 1982년 경기도 과천에 세워진 제2정부종합청사, 1986년 아세안 올림픽 게임 개최를 계기로 경기도 과천에 개막한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해에 서울 서초동에 지어진 법원과 검찰청 청사, 그리고 1988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세워진 예술의 전당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부산현대미술관도 이러한 공공기관 건축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건물의 기능적 완성을 마지막으로 사용단계에 바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이번 수직정원과 같은 프로젝트로 건물의 기능성을 넘어서는 미학적 가치 추구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192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국제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은 기본적으로 기능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규격화된 강철빔과 유리, 시멘트를 주재료로 하여 수직적 공간을 구성하면서 건물의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지역과 문화의 차이를 크게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도시화와 현대화의 기치 아래 폭넓게 공간의 획일화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능에 앞서 장소적 맥락을 되살리고 디자인과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도가 이어지는 흐름이 곧 포스트모던 건축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산현대미술관의 수직정원 설치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러한 포스트모던 건축의 탈기능주의 운동의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패트릭 블랑은 식물학자이자 건축가이면서(그는 영국 왕립 건축학회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설치미술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환경과 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작가가 늘 그래왔듯이 자신이 설치하는 수직 정원이 위치한 지역의 식물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다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으며 지역의 생태학적 의미를 살리려는 노력이 두드러지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상당 기간 부산 지역을 답사하였고 준비 단계에서 지역의 전문가들과 폭넓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위치한 을숙도는 천연기념물 제 179호로 지정된 지역으로서 자연 환경이 우수하고 다양한 식생이 보존되어 오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시가 이곳에 현대미술관을 세울 계획을 한 것으로부터 논의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현재 건물이 들어선 시점에서 거기까지 논의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현재 상태에서 향후의 미술관 공간 특성화와 활성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미술관의 외벽을 이러한 수직 정원이라는 식물의 군집 지역으로 꾸미는 작업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술사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미술에 있어서 작가의 작업 공간에서 전통적인 미술 표현 재료들을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해오던 방식이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그 외연이 확대되어 개념미술, 대지예술, 환경미술 등의 이름으로 새롭게 제시되었었다. 이러한 작업에 동원되는 재료와 모티브들은 패트릭 블랑의 작업처럼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의 배경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하게 팽창하는 뉴욕의 미술시장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여기는 시각과, 새로운 소통과 재현을 추구하는 미학적 요구, 그리고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확대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사회운동과 맥락을 함께 한 미술의 흐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패트릭 블랑이 시도하는 수직정원은 대지예술(Land Art)이나 환경 예술(Environmental Art) 등의 태도와 접점을 이루면서 일정 부분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직 정원은 동시에 이러한 선행적인 예술 태도와 다른 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대지예술과의 차별점은 도시화된 공간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혹은 그 공간 중심부에서 수직 정원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여 대지 예술은 주로 도시 밖의 사막이나 먼 오지 등에서, 물리적으로 도시와 인구 밀집 지역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재료와 표현 형식에 의존하여 반시장적인 저항의 태도를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환경예술과 비교해보아도 수직 정원이 기본적으로 회화의 타블로(tableaux) 형식을 유지하면서 조형성을 추구하는 데 비하여 환경예술은 ‘환경’과 ‘생태’를 앞세우고 회화적 조형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수직 정원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예술적 태도들은 모두 전통적인 미학에서 정확하게 그 위치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지점에서 기존의 미학 원리로서 통제할 수 없는 예술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선구자적인 의미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수직 정원처럼 지구의 중력 원리를 거슬려서 생명현상과 조형 감성을 조성하는 작업은 우리들의 감각경험을 확장시키고 그로부터 더욱 새로운 사고와 경험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수직 정원과 같은 작업은 창조적, 혹은 창조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이 땅속 바닥에서 싹을 틔우고 줄기가 성장하여 태양을 향해 올라가며 성장하는 일반적인 운동성은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지만 이러한 중력과 운동의 원리를 거스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생소하거나 불편한 단계를 넘어 감각과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로부터 다시 또 하나의 새로운 확장으로까지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순리를 확장적으로 경험하는 단계를 통해서 우리의 감각과 경험, 그리고 더 나아가 미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사실 우리들은 이미 벽을 타고 오르는 담장이 덩굴이나 땅 위로 넓게 퍼져가는 뿌리를 통해 수직 정원을 경험하기 전단계를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수직 정원의 경우에는 담장이 덩굴이나 식물 뿌리의 수평적 확장에 비하여 보다 과감하게 자연의 원리를 극복하려 한다는 점과 자연의 힘보다는 인공적인 개입이 보다 많이 일어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점일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패트릭 블랑의 수직 정원은 도시의 거대한 벽화나 빌보드와 같이 관람자들에게 일종의 회화적 이미지를 제공해준다. 다만 일반적인 대형 벽화와 달리 수직 정원의 이미지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조형을 이루는 재료의 유기체적 성격 때문에 기간이 지남에 따라 화면 자체가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겪고 다시 이러한 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과 재료의 성격상 화면을 주도하는 색채가 녹색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색채의 다양성에 대한 한계점을 갖는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따라서 관람자들은 수직 정원을 회화성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체험하는 태도를 요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직 정원의 회화적 한계성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수직 정원을 회화의 범주에서 고찰할 때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가 주로 사용했던 전치(depaysement) 개념으로 해석해본다면, 수직 정원의 식물들은 본래의 환경에서 서식하던 생명체들이 그곳에 들어선 인공 구조물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다시 소환 되어 이전의 자연 환경과는 사뭇 다른 수직의 벽면에 배치되어 다시 생명활동을 펼쳐 나아가는 일종의 회귀적 전치 작업에 동원되는 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전치 기법을 적용한 까닭은 현실의 비판과 부정, 사용된 모티브의 본래의 성격을 지우고 관련성이 적은 오브제들 사이의 기이한 만남 등을 연출하여 강한 충격 효과를 줌으로써 의식과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파멸적 이성의 세계에 대한 공격을 가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패트릭 블랑은 이 정도까지 자신의 작품 개념을 확대시킨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오히려 작가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사라져가는 자연을 일부나마 우리들에게 돌려주려는 시도로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인위적으로나마 자연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식물학자로서의 상호 자생 가능한 식물들을 정해진 공간에 연결 배치함으로써 환경의 중요성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수직 정원 작품의 제작 의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초현실주의 작가들처럼 공격적인 메시지를 표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트릭 블랑의 수직 정원 작업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까닭은 패트릭 블랑 역시 상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추방되었던 자연을 다시 도시화된 공간에 불러들이는 일종의 회귀적 전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패트릭 블랑의 수직 정원 작업은 근대 산업사회가 생산과 효율을 위해 나머지 대부분의 것들을 희생시켜 온 인간의 성과 지향적인 욕망과 탐욕에 대한 자기반성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 제한적인 시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현명하게만 진행한다면 수직 정원 프로젝트는 우리들에게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소중한 자연 자원을 과학적으로 다룸으로써 생물 다양성을 지켜낼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중앙 정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거쳐 온 공공건물 설립과 운영의 삭막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번 부산현대미술관의 수직 정원 프로젝트는 작지만 커다랗고, 의식의 전향적인 전환을 목격할 수 있는, 미래의 우리 사회와 예술계의 앞길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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