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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원

하계훈

최혜원의 작업은 청년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몇 해 전 석사학위 논문 취득을 위한 학위 청구 전시에서 ‘집’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유럽의 실존주의 철학을 탐구했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좀 더 마이크로(micro)한 시각으로 ‘물’이라는 모티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술창작에 관한 사유를 확장해가고 있다. 작가는 시적 감수성과 이미지가 접점을 이루는 공감각적 순간에 대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미지화하는데, 주로 목탄을 사용하여 대형 화면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최혜원은 물이 포함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개념과 심상의 발원을 상징하는 ‘우물’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우물은 생물학적 필요성과 생활 속의 기능적인 일들이 처리되는 일상의 물리적 공간이면서도 상징적 의미에서 개인의 사적인 공간으로서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많은 사유와 상상을 펼치는 정신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속의 방’과 같은 공간으로 상정된다. 우물이라는 고정된 장소성에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해방시키는 사유로의 확장을 이끌어낸 작가가 제기하는 의문은 “Where am I?'라는 오래 숙성되어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여태까지도 그 뚜렷한 답을 구하지 못한, 그래서 아직도 자아성찰의 도구로서 유효하게 유통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작가들에게 여전히 작업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화두이기도 하다.

사물이나 상황에 자신을 투사하는 인간의 정신작용은 자아를 내부로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억압된 충동을 탈출시키는 수단이며 허구적 현실로 전이(transference)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주제면에서 최혜원이 추구하는 바가 이러하다면 작품 속에서 주제를 풀어놓는 표현 방법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정리된다.


작가는 주로 대형 화면을 구사하는데 장지에 목탄을 사용하여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mis en scene)을 흑백의 톤으로 제시한다. 색채가 절제되거나 배제된 화면은 수다스럽지 않고 다양성이 억제되는 듯하지만 우리들은 역설적이게도 최혜원의 작품에서는 흑백의 대형 화면을 통해 다양한 시청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작가가 구사하는 다채로운 선과 목탄으로 표현한 흑백의 농도, 그리고 때로는 지우고 문지르며 다양하게 구사되는 화면 속의 조형 요소들이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우리의 감성을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표현된 물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작가는 스스로 은둔과 출현의 삶을 상상하면서 결국 한적한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잔잔한 파도에 동참하는 자아를 스스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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