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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 추억에서 자라온 행복의 이미지

하계훈

추억에서 자라온 행복의 이미지


하계훈(미술평론가)


홍지민의 작품을 대하는 첫 인상은 동화책의 삽화와 같은 밝고 명랑한 느낌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주말 여가시간을 지내던 곳에서 경험한 풍경과 그 공간에서 만나던 동식물들이 각인시켜준 기억을 기반으로 작업해오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작가는 단순한 기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개인적인 감정과 주관적인 정서를 덧입혀서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주는 직품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우연하게 떠올리거나 꿈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개되는 듯한 상황은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들의 의식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나 심각한 트라우마 등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거부하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가 적극적으로 소환해내는 과거의 기억은 그 과정과 결과가 작가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거나 자신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지민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작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마음속에서 기쁨과 행복으로 남아있었고 긍정적인 창작의 에너지와 영감을 가져다주는 모티브들을 자신의 화면 속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생각과 공상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생활의 활력이 풍부해질 수 있다고 한다. 홍지민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즐거운 추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감상자들이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상상으로 작가의 추억에 접선할 수 있을 때 작가의 창작 행위는 개인의 작업에서 주변의 관심을 넘어서 사회적 감수성의 향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과거의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현재의 홍지민의 작품에 파스텔 톤의 동화같은 이미지들로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한 꿈을 꾸고 꿈속에 펼쳐 놓은 판타지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결국 홍지민의 작품은 이러한 작가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가시화하는 작품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홍지민의 작품의 내용적 배경이 이러하다면 이미지 생산을 통해 주제에 담긴 내용을 가시화시켜주는 형식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화면 안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마주쳤던 이미지들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그 이미지들은 사실적으로 재현되기 보다는 작가의 감성무드와 환상적 상상력이 결합하여 현실을 넘어 마치 애니메이션 필름의 주인공들이나 이러저러한 캠페인의 마스코트처럼 표현된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 의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녀의 의도는 그러한 이미지들이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즐거움을 주고 행복이 묻어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홍지민의 작품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구성에 있어서 민화나 십장생도와 같은 우리 전통회화의 형식을 일정부분 도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출품작 가운데 사계절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화면의 규격이나 채색에 있어서 서양화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화면 안에 모티브를 배치하는 방법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전통회화의 3원근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봄과 여름을 표현한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다른 작품에서는 폭포의 이미지나 동식물들의 배치에서 십장생도의 특성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구성을 의식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작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전통회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 속에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이러한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홍지민 작품에 적용되는 색채 역시 주제와 호응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파스텔 톤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들은 관람자들의 시각에 매우 친숙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이러한 색채들은 우리 생활공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주로 시각적 자극을 넘어 촉각적으로까지 안정감을 주는 제품들에 많이 적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홍지민의 작품에서 시각적 안정감과 편안함, 즐거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촉각적으로도 이러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과 같은 다중 감각적 경험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지민의 작품 모티브들은 향후 입체 작품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화면 속의 모티브가 입체화된 작품이 일부 소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작가가 창조해내는 시각적 이미지는 그것이 평면이건 입체이건 가릴 것 없이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준다. 홍지민의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인데,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20세기 초 서양미술사를 주도했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앙리 마티스가 ‘안락의자’와 같은 작품을 추구했다는 사실과 유사한 점이 있어서 흥미롭다. 두 작가를 수평적으로 직접 비교하는 것은 설득력이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러한 작가들의 의도가 오늘날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정당화시켜주는 한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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