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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변화와 순환을 담은 서정적 도큐멘터리 공간.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자신이 속한 환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과 그로부터 표출되는 태도는 그 진폭이 무한하다고 할 정도로 넓고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과 태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내면의 의식 등의 변수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그 환경 자체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키워드는 ‘변화’인 셈이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하며 따라서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물론 헤라클레이토스도 변화하는 삶에서도 불변의 그 무엇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아무튼 우리의 삶과 생각은 변화한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젊은 시절 자신의 주변과 사회가 투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황을 달관하는 듯하게 심미적인 태도를 키워가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예술지상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주변의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재현적 작품과 추상 작품 사이의 전환에 대해서도 설명 가능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모든 것은 작가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유전과 변화, 그리고 순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문주는 작가로서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비교적 일관되게 작품의 모티브를 발견하는 곳이 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작가가 주목하는 곳은 도시의 한 부분으로서 쇄락해가거나, 그리하여 주민들의 이주가 실시되고 재개발의 단계를 겪는 지역으로서 그러한 장소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이러한 지역의 모습이 마치 생성과 성장에 이어 소멸과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과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작가는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체류하는 기간에도 작가 주변에 있는 도시공간이 유기체처럼 생명의 순환을 겪는 모습을 관찰하여 이를 화면에 담아왔다.

그 결과로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주로 독일과 한국의 두 장소로서, 한국에서는 현재 은평뉴타운으로 새롭게 탄생한 은평구 진관동의 철거지역이고 독일에서는 동서독의 접경지대로서 쇄락한 공간이 급격하게 상업적 공간으로 변모하는 오스트반호프(Ostbahnhof) 부근지역이 화면에 담겨있다. 작가는 약 10년 전부터 이러한 지역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이를 화면에 기록해왔다. 특징적인 것은 이 공간의 표정을 있는 그대로 재현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이미지의 편집을 통해 주제를 보다 부각시키고 여기에 인물들을 첨가하여 공간을 보다 유기적이고 생명의 호흡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만들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문주의 초기작에서는 폐허의 모습을 강조하는 방법으로서 보다 재현적이며 시각적 설득 효과를 주는 실크스크린 기법과 사진 콜라쥬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번 작품에서도 주제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하여 보다 교묘한 이미지의 편집(콜라쥬)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화면에 도입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4대강 공사장과 독일의 유람선이 한 화면에 섞여 있는 장면 등을 들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걷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인물들은 자신의 공간과 교감하면서 관람자에게는 그 공간에 대한 잊혀진 추억을 불러일으키게 해주는 계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공간들이 재개발 된 곳에서 ‘걷는’ 사람들보다는 바쁘게 ‘달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문주의 초기작에서 기록성과 서정성을 동시에 발견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작가의 이러한 작품의 특징은 정도의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최근작에서도 여전히 화면 속에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문주 작품의 기록성은 형식상으로 화면의 크기에서 그 효과를 더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세심한 묘사력과 화면 구성 능력을 발휘하여 작가가 선택한 주제를 전개시킴으로써 서정적인 속성을 가미시켜서 결과적으로 기록적이고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일련의 작품 가운에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작가가 발견한 가족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건설근로자, 1975년>은 1970년대 중동지역의 건설현장에서 활동하던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을 당시의 상황을 보도한 신문 기사에 삽입되었던 장면과 결합시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시대상황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적 성격과 가족의 역사에 스며든 회고와 추억의 정서가 교묘하게 공존하는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와 함께 개인의 삶도 변화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공자의 논어 위정(爲政)편에는 15세에서 시작하여 30세부터 10살 단위로 형성되어가는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살던 철학자로서 정치적인 관점을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을 언급했지만, 우리 삶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공감하거나 자신의 나이에 비추어 스스로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지표로 삼으려하고 있다.

때마침 개발과 재개발의 시대로 접어든 국내외의 몇몇 공간을 경험하면서 이 시기에 조형수업을 마치고 나서 꾸준하게 일관된 주제를 화면에 담아오고 있는 이문주에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즈음의 창작 작업이 자신이 확고하게 세운 주제를 꾸준하게 전개해 나아가면서 동시에 사소한 주변의 요소들을 정리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일부에서는 보다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구도와 채색에서 작은 변화를 보이는 작품들도 감지할 수 있다. 이제 앞으로 이문주가 작품 주제의 흐름에서 굵직하게 흘러가는 본류를 분명하게 유지하면서 주변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에서도 더 많은 생명과 이야기를 발견할 것이고, 더 나아가 어느샌가 그 발견으로부터 우리 삶의 정수이자 진리(혹은 하늘의 뜻)를 파악하는 작가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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