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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본격적인 교류와 소통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략 198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이전에도 몇몇 작가들이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진출하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국미술의 일면을 현지의 미술계에 소개하였고 때로는 현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등의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구한말이나 해방 전후, 그리고 무엇보다도 6.25 전쟁을 계기로 외국의 작가나 미술 작품들이 우리 미술계에 소개되면서 국제적인 접촉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였지만 접촉의 빈도나 내용의 체계성 등을 고려할 때 그러한 현상들을 본격적인 교류의 차원에서 고찰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미술은 국제적인 미술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지향하는 목표도 국내에서의 성공을 우선으로 하였고,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공모전에서의 입상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1986년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전 개관하고, 1988년 올림픽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복합예술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이 (부분)개관하거나 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미술계는 국제미술계의 흐름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 흐름을 따르려는 방향설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를 우리 미술계의 국제적인 맥락으로의 편입을 시작하는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이전까지 국가에서 관리하던 외국 유학이 일반적으로 허용됨으로써 미술 분야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작가들이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배움의 길을 떠났다. 몇 해 동안의 학습과 현지 경험을 마친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1990년대 초에 귀국하기 시작함으로써 한국미술계의 지형은 이전에 비하여 양적, 질적 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와 확장이 일어나게 된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소위 대안공간(Altenative Space)이라는 전시 공간의 등장이다. 1949년부터 1981년까지 개최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민간에 이양되면서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1986년까지 이어오다가 마침내 그 주도권이 정부로부터 한국미술협회라는 민간단체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로써 국전 혹은 미술대전의 문제점과 시대적 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밝히는 셈이 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부터 인사동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술시장도 1980년대로 넘어가면서 청담동 지역 등으로 확장되면서 미술시장의 규모도 점차 성장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대안공간들은 대안공간 풀(1999), 사루비아 다방(1999), 대안공간 루프(1999)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현대미술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비영리적 운영과 현안 이슈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작품 활동의 장을 열어주었다. 물론 이러한 대안공안의 운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대안성의 대상에 대한 확고함이 부족하고 외국의 대안공간과는 달리 국제적인 경험을 국내에 이식하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무대를 연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다.
이 시기까지 미술계의 심각한 문제점은가운데 하나는 학맥과 사제간의 인연이 미술작품의 내용이나 성격보다 우선하여 우리 미술계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는 비판이 많았으며, 미술활동에 있어서 분단국가라는 특성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상존해 온 측면을 미술에서도 일부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도권에 편승한 일부 작가들은 이러한 미술계의 흐름을 받아들였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해왔고 그러한 현상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것이 1980년대의 소위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과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간의 대립구도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정치적으로 민주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미술계에서도 구습의 불합리성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일어났으며 때마침 아시안 게임이나 하계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계기로 예술계에서도 국제적인 시각을 갖출 필요성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때마침 열린 통로인 외국으로의 유학과 그를 통해 새롭게 배워 온 미술계의 담론 형성과 공간 운영방식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관심의 집중을 받았으며, 이러한 상황은 새롭고 참신한 창작 발표의 기회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국의 현대미술의 장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의 시간을 지나면서 국제적인 미술계의 흐름과 나란히 전개되었고, 때마침 1990년에 문화부의 독립적인 설립과 문화예술진흥을 국가정책의 주요 기조로 삼는 정부의 관심 안에서 1995년 광주비엔날레 출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립, 광주시립미술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8) 개관, 2000년대 초반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개최 등을 통해서 외형적인 모습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1990년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군사, 정치적인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상승 기류가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의 비중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양축(bipolar) 체제가 무너지자 이 무렵 국제적으로는 각종 비엔날레가 소위 제3세계 지역이라는 곳에서 우후죽순이라는 표현으로 수식될 정도로 곳곳에서 출범하였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에 광주비엔날레가 출범한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렵을 전후하여 미술시장에서도 중국의 political pop,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 등의 부상이 문화예술계와 미술시장 뉴스의 전면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의 현대미술은 그때까지 전개되어왔던 미술대전을 비롯한 공모전 중심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국내에서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미술시장과 국제미술계의 트렌드라는 변수가 가미되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들을 보여준다. 소위 미술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출신이 아닌 작가들이 미술시장의 히어로로 등장하면서 작가로서의 성공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게 되었고 국내에서의 평가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평가를 지향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점점 더 시장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2008년 홍콩의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의해 경제적 충격을 받기 전까지 10여년 간의 한국의 미술계에서 주목받으며 성공한 작가의 상당수가 미술시장에서의 성과와 국제적인 활동의 결과로 자신을 알리는데 주목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제까지의 국내에서의 공모전들이 미치던 영향력이 급격하게 위축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평행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작가들에게 명성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통로는 비엔날레나 이와 비슷한 도큐멘타, 무슨무슨 프로젝트 등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국제적인 규모의 기획 행사였다. 이 과정에서 미술 저널리즘과 비평의 역할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미술계가 이전에 비하여 활력과 의욕을 더욱 충전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활동의 결과가 조금씩 가시화되기도 하였다. 

이번에 고양문화재단 아람누리에서 개최되는 전시에는 영국과 한국의 작가들이 이러한 시기의 미술계의 전개과정을 지나온 발자취를 어떻게 담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에 답하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작가들의 경우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진 작가들이 참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4-50대 작가들로서 1984년에 제정된 터너상을 경험한 세대의 작가들이며, 1994년에 집권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의 젊은 영국 이미지 창출정책(Cool Britania)에 부응했던 yBA들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동시대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작품들이 회화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1997년 로얄아카데미에서 열렸던 소위 yBA 작가들의 작품들에 비해서 자극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주며, 이런 의미에서 yBA 이후의 영국미술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품된 작품들 역시 지난 몇 년간에 제작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작가들의 경우에는 미국, 독일, 영국에서 유학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한국미술계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학습하거나 몸소 겪으면서 작업해 온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 역시 평면회화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양국의 미술이 어느 정도 균형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출품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작가들 역시 출품작품들을 최근작들로 구성하고 있으며 유근택의 작품을 제외하면 모두가 유화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한국 작가들의 출품작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하나로 묶어지지 않는 다양함을 증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현대미술에서 1980년대까지의 비교적 단순한 국내미술계의 역동이 1990년대부터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확대되면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문제에서 주변환경과 관련된 문제, 국제적 맥락에서의 의미 있는 이슈를 다룬다거나 국가간, 지역간의 비교문화 차원에서의 작업 등을 각자의 위치에서 수행해왔다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출품작가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김을은 평면 작품뿐 아니라 조각, 설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해온 작가로서 2016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공성훈과 유근택은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국내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로서 두 작가 모두 현재 창작활동과 함께 미술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두 작가는 각각 유화와 수묵화의 분야에서 우리 미술계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전에 공성훈의 작품에 대하여 “우리시대의 의식과 태도를 반영하는 공간에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탐색하고 표현해내는 작가”라는 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며 유근택에게도 비슷한 평을 내릴 수 있을 것같다.

정수진과 민성식, 정직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술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이전보다 개방적인 교육과 창작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세대의 작가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미술시장의 활황, 국제미술 교류의 확산 등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짧게나마 한국현대미술의 호시절(belle epoch)을 경험한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작가들은 이전의 우리 미술계에서 작가에게 요구하던 창작 활동 이외의 사소한 압박감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는 세대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제나 표현 기법에 있어서도 개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며 작가로서의 존재감이나 성취에 대한 평가가 이전보다 확산된 시대에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지산과 김하영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 가운데 막내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각각 독일과 영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구체적으로 작품 안에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요구되겠지만, 이번 출품작들을 통해서 발견되는 특징은 안지산의 재현적 묘사를 바탕으로 회화성을 드러내는 화면이 1980년대 독일 신표현주의 이후의 독일 작가들의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아보고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지산이 확고하게 우리 현대미술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작가의 성숙한 필력과 자신의 주변에서 의미있는 모티브를 찾아내는 능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하여 김하영은 젊은 세대의 경쾌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미지들을 캔버스가 아닌 폴리에스터 필름 위에 대형으로 제작하는 작업에서 출발하여 점차 작품의 형식보다 주제에 대한 천착으로 이동해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작가다. 작가 자신은 yBA 이후의 영국미술을 몸소 경험하는 기회를 갖은 작가로서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 직접적으로 양국간의 접점을 형성해주는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출품하는 7명의 한국 작가들이 우리 현대미술을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1990년대 이후 한 세대를 거쳐오면서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 가운데 일부로서 포함될 수 있는 작가들이며, 공공미술공간이나 미술시장 등에서 주목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국내외의 미술 저널의 관심을 받는 작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한국과 영국 양국 간의 현대미술의 현황을 파악하고 그 현장에서 활발하게 미술 현장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작가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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