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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롭게 더욱 성장하는 공모전이 되기를 기원하며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화성시문화재단이 2016년 신진작가 공모전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3명의 당선 작가들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작가들은 한국화 작가 박현지와 전유진, 그리고 아크릴이나 혼합매체를 사용하는 서양화가 강지혜 작가다. 선정 결과를 보면 회화 분야에서 동, 서양화 작가들이 혼합되어 있지만, 장르의 구분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화성시문화재단이 이번 공모전을 통해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될 젊은 작가들의 예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선정된 작가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걸치는 젊은 작가들로서 이번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실시한 공모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창작의 출발선에 진입하거나 겨우 한 두 발을 내딛은 정도의 단계에 있는 작가들로 볼 수 있는데, 세 작가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이들이 동시대의 미술 교육과 미학, 그리고 사회 문화를 공유하고 체험하며 활동하여 온 만큼 작품의 경향에 있어서 어느 정도 시대적 공통점을 공유하는 미감과 철학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좀 넒은 의미에서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세 작가 모두 작품의 주제를 인간의 삶과 정신, 즉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내면의 문제에 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예술은 종교에 봉사하기도 하고 절대 권력의 지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해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미술이 예술성보다 상업성에 예속되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술가는 장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천재로 추앙받기도 하더니 언제가부터는 과학의 세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 시대의 낙오자로 취급당하기도 해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욕망과 잔인성이 전쟁이나 국가적 탐욕, 그리고 집단과 개인의 지나친 이기주의 등으로 드러나자 예술은 다시 우리 사회의 치유자로 나서게 된다. 이러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 전개에 있어서 언제부터인가 작가들은 자신의 외부 환경과 사회의 문제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부의 문제와 현상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흔히 일어나는 작품의 주제였으며 그 이후 지속적으로 미술 뿐 아니라 문학과 음악 등등의 장르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왔다. 박현지의 경우에는 산수화와 동물의 형상이 중첩되면서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이중적으로 표현된다. 즉 언뜻 보기에 수려한 산맥의 경관을 부감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화면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냥을 나선 동물의 신중한 걸음걸이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 이중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표현은 사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며, 그 정신적 배경의 일부에는 시대의 불안과 인간 정신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박현지의 경우에는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현대사회는 오히려 달리의 초현실주의 시대보다 더 복잡다난해지고 사회 전체 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사회 구성원들을 불안하고 힘들게 만든다. 개인간의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와 같은 진정성과 연대감을 쉽게 형성하기 어려우며 물리적인 삶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에 적응하기에 급급하고, 그나마 일부는 어렵게 사회의 변화와 진화를 따라잡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고 결국에는 자포자기해버리는 낙오자로 전락하기도 한다.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작가로서 출발하는 박현지는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된 산을 자신이 처한 현대사회의 외적 환경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산을 정복하는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외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내면을 ‘정복’하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하며 그 과정에서의 노력과 순간순간이 성취감을 소중히 여기기를 다짐한다. 산과 자신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외면과 내면을 바라봄에 있어서 작가는 내면의 자아에 보다 포커스를 둔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매순간 목표를 향한 노력에 게을리하지 않고 예술적 수련에 매진하여야 한다는 자기 목표를 설정한 젊은 작가의 패기가 선언적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점이 박현지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게 만든다. 장지에 채색된 작품에서 박현지는 화면의 완성도를 높이는 섬세한 표현에 집중하면서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형태와 색채를 구사한다. 작가는 “우리가 정복해야 할 곳은 산 정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정상이라는 꿈을 향해 많은 사람들은 달리고 달리지만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놓치고  정상만보고 달리고 있진 않은가?”라고 자문하면서 “붙잡을 수 없는 게 흘러간 시간이란 말이 있듯이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신의 환상 세계에 멋있게 도달하자 라는 의미를 전하는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전유진은 장지 위에 채색을 한 이미지를 표현한 다음에 다시 그 위에 실크를 덧붙여 또 다른 이미지를 올리는 방법을 이용하여 입체적 화면을 구성하는 채색화를 제작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별도의 화면에 그려져 있지만 그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되면서 도상적으로 뿐 아니라 의미상으로도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자아와 타자,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를 상징한다. <煙月 (연월)>이라는 제목을 붙인 일련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 자신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림 속 나는 이 작업을 보는 모두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통해 한번쯤은 각자가 가진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품은 <너는 파도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제목의 작품들에서 발전하는데 <너는 파도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들에서는 단일 화면이지만 <煙月 (연월)>에서의 중첩된 이미지와 유사한 화면의 구도를 읽을 수 있다. 



장지와 실크의 화면이 중첩되는 것은 작가의 감정에 대한 이중노출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같은 새소리를 듣고도 어떤 이는 슬피 운다 하고 또 다른 이는 즐겁게 노래 부른다 하듯이 사람들은 현재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느낌을 달리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작업은 “'나'의 모습을 사람들이 가장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는 자연물에 이중노출 시키므로(써) '나'와 자연이 동화됨을 표현한다”고 말하였다.전유진의 작품에는 인물과 자연이 중첩되어 표현되고 물감이 서로 번지고 겹쳐지는데 이러한 표현 기법은 “‘나'의 모습이 자연에 이중노출 되면서 동화된 모습이며 감정이입이 잘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려 그림 안에서 색감의 강약을 주어 자연의 생동감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융합과 ’나‘라는 자아의 내면과 와연을 한 화면 안에 표현하고자 하였다.전유진의 작품 가운데 <내면을 마주하다>라는 제목의 작품들은 유리병 속에 잘 알려진 만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화면은 또 다른 이중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앞면의 캐릭터만 보이거나 그 뒤에 추상적인 형상이 함께 보여 진다. 이것은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향에 따른 내면의 드러남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앞에 보이는 캐릭터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동심을 표현하고 유리병은 동심이 갇혀있음을 표현하고자 하였고 뒷면의 마블링은 내면의 복잡 미묘함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끝으로 강지혜의 경우에는 화가들에 의해서 생성되는 이미지를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여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가는 작업을 시각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작가가 분류하는 두 가지의 이미지는, “첫째로는 자본주의에 입각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화려하게 또는 또렷하게 기억되어지도록 만들어진 이미지, 즉 상업적인 이미지와 두 번째로 순수하게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고찰과 소리의 울림으로 이미지 그 자체로서 존중 받기를 원하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분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민하는 창작의 방향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 속에서도 언급된 ’순수‘라는 표현처럼 상업주의와의 타협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순수의 문제로 보는 작가의 관점에는 동의하는 진영과 부동의하는 진영이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제 3의 절충적인 입장도 있을 수 있다.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이 두 가지 해석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강지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옳고 그른 것조차 그 개념이 뒤바뀌고 새로운 시각들로 인해 우리의 관념이라고 하는 것이 점점 부정적 의미로 해석되어 사라져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시대에 과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무엇을 설득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며 작업에 임하게 된다”고 말한다.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 주요 개념을 기독교적 주제에서 발견한 듯하다. 그런데 예술이나 정치 등의 활동에 있어서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은 득과 실의 양면성이 함께 존재한다. 강지혜의 경우 기독교적 주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타종교에 관심을 사진 진영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듯이 “종교화에 대해 편견과 불편함을 가진 이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가고자 그림을 그릴 때 구도나 색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종교적 상징성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심볼 그 자체를 사용하기보다 그것들을 패턴화시키고 부드럽고 화사한 파스텔톤의 색감을 사용함으로써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서도록 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타종교의 배경을 가진 진영으로부터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리고 좀 더 부드럽게 작품의 미감에 접근하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강지혜의 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파스텔 톤의 색감을 유지하거나 팝아트적인 이미지와 분위기를 도입하여 작품의 주제보다는 형식적인 접근을 우선적으로 시도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 본 것처럼 이번에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시작하는 2016년 신진작가 공모전을 통해 3명의 유망 신진 작가들이 선정되어 대중적인 발표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미술계의 일원으로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직 20-30 대의 젊은 작가들이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논하기는 한계가 있지만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해간다면 장차 우리 미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맡을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며, 화성시문화재단이 이러한 희망적인 시나라오의 첫 장을 마련한 것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매년 이어지는 신진작가 공모전이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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