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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와 바느질을 통한 의식과 기억의 이미지화 작업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김선은 도자예술과 바느질 기법을 결합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형식의 작품을 제작해오고 있다. 김선이 이처럼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도자와 바느질은 하나의 작품 안에서 이 두 가지 작업을 자연스럽게 결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는 예술 형식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흙을 빚어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문양을 새기고 유약을 발라 굽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도자 작품에 색실을 엮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하면서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게 전달되는 바느질의 형식을 결합하는 것은 작가들이 자신의 예술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쉽게 선택하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물성에 있어서도 도자기가 단단하다면 바느질의 결과물은 이와 정 반대로 부드럽다. 서양 속담에 ‘극과 극은 통한다(Extremes Meet)’는 말이 있고 동양의 표현에는 '어떤 것이 끝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가 된다'는 뜻의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도 있다. 김선의 작품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현을 빌려 와야 할 것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이러한 논리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 스스로도 이러한 결합에 대한 고민을 언급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김선의 작품을 마주하면서 별로 거부감을 느낀다거나 부조화를 경험하지 않는 것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뛰어넘는 작품의 제작 논리와 작가의 실험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담론을 앞서는 구체적 작품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미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김선은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되는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매우 소박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말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작품의 제작 배경에는 어린 시절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할머니의 바느질 하는 모습과 오버랩되는 바닷물의 파도치는 소리, 그리고 도자 예술. 이러한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 김선은 자신이 대학에서 전공한 도자에 바느질과 파도(바다)가 주는 소소한 이야기와 감성을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선은 자신의 도자기 작품에 결합된 바느질 작업을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의 공유의 장으로 확대시킨다. 도자 작업과 함께 이루어지는 실을 짓고 그것을 꿰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바느질을 역사상 인류의 보편적인 삶 속에 자리잡은 사회현상의 대표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그 가운데에도 바느질은 동서고금의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업으로 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작품 속에 소박한 개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주입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작품을 관람객 친화적인 오브제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이러한 입체 작품에 평면적 회화성의 요소도 도입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할머니의 바느질 하는 모습이 바늘이라는 붓과 실이라는 물감으로 천에 그림을 그리는 듯 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선의 작품에 담긴 행위의 성격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반복이다. 작품의 제작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흙을 빚어 물레에 올려놓고 반복되는 회전을 통해 그릇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성형된 그릇에는 다시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 뚫기가 반복되고 그 구멍에는 또 다시 바느질 기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실뜨기가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작가에게 창작행위는 수고스런 수작업으로서의 노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작업의 과정에서 촉발되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의식이 수면 아래 잠재해온 기억을 지금의 순간으로 불러올려 재구성하는 기억의 현재화 작업이며 일종의 의식과 기억의 이미지화 작업인 것이다. 도자기를 빚는 작업도 인류의 생활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바느질 역시 동서양을 아울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행위다. 서양의 신화에서는 아라크네(Arachne)가 여신 아테네와 바느질 기술을 겨루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라크네의 자부심이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유발하여 거미로 변해버리긴 하였지만 이처럼 여인의 재능이 신과 겨룰 정도로까지 세련되고 예술성마저 띨 수 있게 되는 분야가 바느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박경리 시인의 시 <바느질>에서는 한 땀 한 땀 기워나간 바느질 흔적을 ‘시간 따라 쌓인 글줄’로 비유하기도 했다. 비유적 표현이고 장르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박경리 시인에 따르면 공예적인 바느질과 문학적 자기 서사가 그 순간에 서로 교차되고 하나가 되는 접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김선이 자신의 도자 작품에 도입한 바느질 작업은 그 자체로서도 장르 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김선의 작품은 도자기라는 입체 공예의 미술 영역을 회화적 조형성으로까지 확장시킨 복합적인 시도이며, 최근 작가가 다시 여기서 개별적 오브제로서의 도자를 공간에 설치하는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설치미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는 것은 작품을 통한 관람객들과의 소통의 채널을 단선적인 것에서 복합적인 것으로 확장시키는 노력이며 작가의 끈임 없는 창작의 분출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능 있는 작가가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긍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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