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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성

하계훈

강호성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시각적으로 명료하다. 그 까닭은 날카로운 선묘와 과감한 채색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조형적 자신감과 대담함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구도나 표현 뿐 아니라 작품 속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자기 결정에 대한 확신과 그로부터 더욱 명확하게 포착하는 주제의 선명성에 의해 작품이 갖는 특징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강호성은 조형감각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주변을 감지하는 작가로서의 감수성 역시 활짝 열려있다. 예를 들어 몇 해 전에 제작했던 <음유동자> 연작에서처럼 작가는 주변의 환경을 화면에 끌어들여 이야기 및 소리와 감각을 재현해내고 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강호성은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면서 숲의 정령과 같은 존재를 감지하였으며 그와 함께 자연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함께 공간과 시간을 나누는 각종 동물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강호성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이자 이들이 형성해내는 내러티브가 곧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서 정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생활방식과 모티브 채집방식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한국화와 서양화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고 그 특징을 대비시키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 때 흔히 등장하는 화두가 전통과 현대라는 두 키워드의 조화나 융합의 문제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뜻대로 성공하는 작가들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강호성 역시 이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련하는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직,간접적인 자극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러한 정황에서 작가 나름대로의 해법으로 채택한 방식이 지금의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호성은 주로 비단에 채색을 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종이보다 더 정교한 작업을 요구하는 비단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기본적으로 전통적 기법을 따르는 것이 강호성 작품의 한국화적 뿌리를 말해준다면 소재나 화면의 구성 면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뒤집는 발상이 읽히기도 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물이 중심이 되고 그 주변의 환경이 때로는 사실적으로, 그리고 또 때로는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한국화적 설화의 삽화 혹은 깔끔하게 표현된 광고 미디어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하게 해주기도 하고 일본 현대미술에서 유사한 작품들을 떠올리게 해주기도 한다. 


단독 인물이 악가와 함께 나무나 꽃을 배경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배경은 텅 빈 상태로 놓여있어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서술성을 생략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인물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은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난 무중력 상태의 어떤 곳일 수도 있고 관람자가 그 여백에 공간에 상상하는 어떤 곳을 임으로 설정하여 작가의 감성과 교류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공간의 여백은 한국화적 전통에서 흔하게 도입하는 여백의 공간과도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도상학적 근거를 갖거나 작가로부터 직접적인 언술이 나왔던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의 형식적인 면을 볼 때 강호성의 작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작품들을 연상할 수도 있다. 강호성의 작품에서 선의 역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서양의 아르누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들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것도 설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양화와 한국화(동양화)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인물이 중심이 되는 그림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서양미술에서는 인물을 통해 역사와 신화를 이야기해온 오랜 전통이 있다. 따라서 서양미술에서 작가의 조형 훈련 과정도 상당부분 인물을 대상으로 한 수련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회화에서는 다분히 산수화 중심의 작품들이 전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인물이 포함되는 산수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산수 그 자체로서 화면의 구성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인물이 포함되는 회화에서도 도석인물이나 유교적 에피소드와 같은 교훈적인 주제가 역사나 신화의 인물보다 회화 속의 표현의 주류를 이룬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강호석의 인물화는 동양적 재료와 기법을 적용하면서도 다분히 서양적 주제와 내러티브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도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강호석의 작품은 동서양의 회화적 융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련의 가면 연작에서 작가는 동양적 설화나 모티브를 다루는 것과 함께 서양 동화나 문학의 주인공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이제까지 작업해왔던 재료와 색채 등이 연속성을 보이지만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전통과 현대로 이야기되는 양자간의 접점을 찾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의 거침없는 과감성이 주춤하며 부분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경찰관 모자를 쓴 가면 속의 인물과 함께 등장하는 소총이나 종교 지도자의 모습을 한 가면의 인물이 들고 있는 목장(牧杖)은 우리 사회의 정치나 종교문제를 작품 속의 이야기로 도입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요소의 융합에 있어서, 특히 동양적 오방색이라든지 서양의 인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배경의 일부 소품 - 예를 들면 실크 햇을 쓰고 곰방대를 물과 있는 허수아비 - 에서 시도한 양자간의 접합은 자연스러움이 이전의 작품에서보다 다소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여전히 장지보다 비단을 재료로 채택해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작가는 비단이 종이보다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으며 빈 화면을 대하는 작가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호성은 일관되게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발견하는 인물과 사물을 모티브로 채택하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무리없이 친숙하면서도 시대적 감각을 거스르지 않는 작품들로 귀결되고 있다.


올해 강호성이 비단 대신 장지를 선택하여 그린 <우리시대의 동화-화양연화>는 이제까지의 작가의 작품들에서 읽히는 내러티브와 작품의 모티브, 채식 기법 등이 하나로 종합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화면의 하반부를 넓게 차지하는 연꽃잎들의 짙은 녹색이 한국적 채색화의 면모를 담고 있다면, 화면 상단부의 인물들의 묘사와 상황 설정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이제까지 작가가 천착해 온 목가적인 평화와 동화 속의 환상적인 아름다움 등이 작가 주변의 인물들과 함께 화면을 공유하는 흥미로운 혼성을 형성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 강호성의 작품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도 하는 이 작품 이후에 어떤 작품들이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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