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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홍_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전 [비극적인 작품이 상품과 포개질 때]에 대한 메타비평

하계훈

민성홍의 <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전은 회전목마(Carousel)라는 서양의 대중적인 놀이기구로부터 도출되는 감성의 중첩과 환경의 재인식 과정을 다루며 우리 삶의 불가역성과 숙명성을 사고하는 작가의 의식을 시각화한 조형적 표현이다. 민성홍의 작품에 담긴 주제가 불가역성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홍태림이 이 전시를 평하면서 회전목마의 운동을 (-)와 (+)로 구분하여 한 방향으로만 회전 진행하는 운동성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화전목마 운동은 그 위에 올라선 개체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하는 거스를 수 없는 숙명성을 느끼게 해준다고 볼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작가는 <Overlapped Sensibility> 시리즈를 통해 동일한 대상과 동일한 장소에서의 경험이 개인의 상황과 시간의 상위에 따라 달리 인식되는 현상을 중첩(overlap)과 재인식의 과정으로 해석해왔다. 작가는 이러한 주제를 시각화하기 위하여 일상적 생활환경에서 발견되는 오브제를 확대, 변형,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오브제를 찢거나 부순 뒤 다시 조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의 낯설음이나 모호함을 재인식하는 조형 연구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민성홍이 천착하고 있는 <Overlapped Sensibility>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감성적으로 파악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시각적으로 인식하고 시각 이외의 경험적 혹은 선험적 감각들이 결합하여 어떤 대상이나 공간에서 도출되는 감성의 중첩이나 재인식의 과정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관람자들과의 교감을 유도한다. 이 경우 대상의 좌표나 성상은 감각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만큼 동일하게 다른 한 축의 방법으로써 이성과 과학적 추리에 의해서도 파악이 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방법론을 선택하지 않고 경험과 직관, 그리고 순간의 분위기에 대해 작가적 감각을 발휘하여 그로부터 순간적 감정을 이끌어 내서 거기에다 창작의 영감을 의탁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일종의 긴장 관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자신이 전공한 회화 형식에만 작업을 국한시키지 않고 사진이나 드로잉, 그리고 작은 조형물 혹은 도자 조각 등 장르와 기법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조형요소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상징과 기호화 작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민성홍의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군집화 또는 다수화(mutiplication)에 의하여 이러한 효과는 크게 증폭된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동시에 전개함으로써 작가는 대상들이 지닌 공통성과 차이점, 익숙함과 낯섦 등 대조되는 의미와 존재가 표출되는 요소들을 작품으로 귀결시키며 예술적 인식의 재구조화를 시도한다. 



민성홍의 시각적 결과물들은 1차적으로 감각적 즉흥성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순간적 감정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작용들은 통합적 인식의 차원으로까지 연결된다. 작가는 우선 우리의 감각의 능동성을 포용하는 태도를 취하여 감각과 인식의 통합을 이루며 존재와 본질의 문제까지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대상을 단절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감각과 인식이 연계된 총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서 민성홍이 형성해내는 작품의 이미지들은 방법론적으로 그것들을 찢거나 부수어서 재조립하는 등의 신체적 작업 과정에 중점을 둠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현실 이전의 존재로부터 현실의 존재로까지 이어지는 자기 정체성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재인식의 기회를 갖게 만들고 스스로의 내면에 숨겨진 모종의 감성을 자극하여 그것이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하게 만든다. 


<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전의 회전목마는 구조물 내부 회전판에 독수리, 부엉이, 닭, 펭귄 등 다양한 새들의 머리 형상을 한 조형물들이 군집 상태로 모여 있는 형태의 작품이다. 비록 실재하는 구조물의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하였으며 목마 대신 조류의 조형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브제에 불과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체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성홍은 도자기로 성형한 오브제를 일부러 깨트린 다음 다시 그것을 접착시켜 원래의 형상으로 복원하거나 프린트된 사진을 찢고 이것을 다시 투명 테이프로 붙여나가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홍태림이 분석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외부 조건들로부터 우리의 삶이 수시로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미적인 방식을 통해서 강도 높게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삶을 예술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지를 말하기도 했는데, 사진작업에 대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좀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주변의 사물이나 공간의 구조를 인식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집중했으며 눈을 뜬 뒤에 차츰 사물이나 공간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순간적으로 조우하게 되는 장소와 그곳의 문화에서의 고립과 통합을 읽어내도록 유도하며, 이러한 분위기 속의 생명체로서의 새들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조형적 설득력과 함께 은유적 상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유도한다. 이제까지 민성홍이 만들어낸 다양한 이미지들은 다차원적인 공간 환경에 제시되어왔는데 일부 작품은 평면적으로 재현되고 그것이 다시 3차원적 형상과 구조물로 구현됨으로써 형태들의 존재론적 의미와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며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사유하게 해준다. 


다시 회전목마로 돌아가 보자. 원래 중세에 중동지방의 기사들이 승마 전투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게임형식으로 말을 탄 상태에서 돌아가며 공을 주고받는 형식에서 출발한 회전목마는 십자군 원정대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렇게 전파된 구조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투훈련용 장치에서 그 용도가 변형되어 19세기 중반 무렵부터는 서양의 박람회 공간을 구성하는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가운데 아동들을 중심으로 하는 저난이도 놀이기구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과 장소를 옮겨오면서 우리 삶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회전목마에서 민성홍은 감성과 인식 그리고 더 나아가 존재론적 사유에 이르는 서술을 담은 작품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투영시키기 시작한 것은 그 작가가 속한 사회의 시민사회화 혹은 탈권위주의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장인(artisan)에서 예술가(artist)로의 신분변화는 점차 작가들이 자주적인 사고와 논리전개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대가는 후원자(patronage)의 상실이라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그림자처럼 달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창작환경의 양면성으로 귀결되었다.


민성홍이 이번에 선보이는 <Overlapped Sensibility: Carousel>전을 통해 제시하는 작품은 우리들의 의식 안에서 예술적, 혹은 더 나아가 존재론적 사유의 단초로서 기능할 수 있지만 예술작품이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한 형태인 시장적 교환기능에 의해 “비극적인 작품이 상업적으로 회자되는” 상황은 뜻밖이며 충격적일 수 있는 것이다. 홍태림은 이러한 뜻밖의 상황을 ‘농담’으로 치부한다. 우리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정보나 상황을 접했을 때 당황스럽고, 순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 이를 심리적으로 거부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거나 “농담이겠지”라는 대응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예술 창작 환경에서 불확정성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불안의 표현인 것이다.


민성홍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는 결국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의지와 그 창작의 물적 토대를 갖춰줄 수 있는 후원자의 부재라는 상황이 초래하는 이격(離隔)으로부터 올라오는 불안적 심리, 그리고 이로부터 발동되는 상황회피 방어기재의 작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달리 표현하면 작가의 현실인식이 시장으로 옮겨지는 ‘농담’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성홍은 이러한 상황을 의미 있는 모티브로 선정하고 그 상황 안에서 삶과 예술의 공통점을 예술적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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