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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간, 낯선 풍경

하계훈

낯선 공간, 낯선 풍경


63 스카이아트미술관에서는 2010년부터 매년 한국 현대 미술을 이끌어갈 젊고 역량 있는 작가 2명을 선정하여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2년에 한 번씩 이렇게 선정된 작가 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2년 <공간 그리고 풍경>이라는 주제로 4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도시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풀어놓은 첫 번째 전시가 개최되었고, 이번에 열리는 <낯선 공간, 낯선 풍경전>은 2012년의 첫 번째 전시에 이은 후속 전시이면서 제 2회 63 SKY ART NEW ARTIST PROJECT의 3차와 4차년도의 지원시업의 결과를 소개하는 전시가 되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 공간과 그 안에 활동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개성있는 표현으로 작품화해낸 작가 4명의 회화 50점을 선보이게 된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작가들이 제시하는 풍경들은 첫 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그 주변에서 발견되는 공간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모습들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작가가 그러한 풍경과 장면들에 좀 더 다가서면서 그 안에 발견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행위와 흔적이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40세 근처에 이른 동시대의 감성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들이며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자의 작품에서 특징적인 표현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 무언가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조형적 혹은 정신적 태도가 읽힐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네 작가 모두 자신의 활동 반경 안에서 조우하는 일상의 장면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서부터 도출되는 개인적 사유와 사회적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삶이라는 거대 명제와 맞서서 작품과 씨름하는 몸짓이 읽혀진다.


출품작가 가운데 이경하의 경우에는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설정한다. 작가는 여기에 초현실주의적 전치(轉置 dpaysement)의 요소를 가미하여 우리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형태와 그 행위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의 시각적 대조를 표현한다. 이경하의 작품에서 배경은 흑백 목탄으로 그려지고 인물들은 사실주의적인 원색으로 표현됨으로써 자연과 인간, 또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양립하는 대비를 이룬다. 


이경하, A ladder work


이러한 표현기법의 대비뿐 아니라 양자간의 공간을 차지하는 물리적 크기나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시각적 효과에 있어서 작품 속에 무채색의 자연이 인간의 행동을 묘사하는 원색적인 색채와의 대비를 이룸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연 앞에서의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작품 속 인물들은 거대한 배경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로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여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거대한 들판과 숲, 언덕을 지워나가고 있다. 결국 이러한 비논리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충격과 색조나 재료의 차이에서 기인한 이질감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긴장감이 이경하의 작품의 특징이면서 은근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문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도시의 개발에 함축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해석해오고 있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위적으로 형성된 도시는 그 스스로의 역사를 축적해 나아가지만 어느 시점에서 그 역사는 모조리 지워지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기 위한 재개발이라는 과정을 맞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의 공간에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체류를 기록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을 때 이문주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도심의 재개발 현장에 주목하였고, 미국에서 유학할 때에는 그곳의 도시 재생 작업 현장에 주목하였다. 몇 해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독일의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국제스튜디오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정되어 작가가 독일에 체류하였을 때에는 그녀의 작품에서 독일의 도시 생태에 관한 이야기가 작품화되기도 하였다.


이문주, 채석장 아래


이문주의 화면은 재개발의 과정에서 버려진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있는 전경과 그 너머로 철거되어 가는 건축물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큐멘터리 회화로 볼 수도 있는 이문주의 작품에는 목격자로서의 시각과 함께 멜랑콜리한 서정성을 느끼게 해주는, 다소 우수에 찬 관찰자의 시각도 동시에 존재한다. 작가는 특정 장소가 재개발되는 과정을 수개월간 관찰하고 이러한 개발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연구하면서 작품을 준비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문주의 작품에서는 그 공간의 주인이었거나 틈입자로서의 이방인으로서의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시각적으로 전개된다.


이효연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혹은 독일과 같은 유학의 장소가 아닌 북유럽의 스웨덴에서 미술 공부를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력이 작가의 작품에 필연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연의 작품에서는 북유럽 특유의 사색적인 작업이 읽히는 것같다. 실제로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작업의 모티브가 상당부분 작가 자신의 생각과 추억 등이 숙성됨으로써 그곳으로부터 떠오르는 발상에서 유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효연, Study 8


원래 자신의 개인적인 여행의 궤적 속에서 포착되는 풍경에 기억을 불러내고 심상을 덧입혀 표현한 작품을 주로 제작해 온 이효연이 이번 전시에는 인물의 모습, 그 가운데에도 주로 뒷모습에 관심을 둔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뒷모습은 누구도 스스로 꾸미거나 허풍을 떨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대체로 담담하다고 한다. 또한 이제까지 보아온 장면들이 눈을 통해 받아들인 외부의 모습이었다면 이번에 작가가 보고싶은 것은 눈을 감음으로써 비로소 볼 수 있는 내 안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풍경이다. 따라서 이번에 김효연이 제시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이제까지 제작해 온 풍경의 내면화(internalization)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경은 작가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공간과 장면을 관조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좀 더 무심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하이경이 창조해내는 공간의 표정은 관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그들이 무심함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축적해 온 도시의 공간에서 우리는 인간의 수많은 감정과 사건, 그로부터 창출되는 페이소스와 그것의 신화화 과정을 목격하거나 상상하고 때로는 그 장면에 자신을 감정이입시키기도 한다. 


하이경, 매개(Medium)


하이경은 이러한 도시의 공간을 화면에 재현하는 과정에서 마치 구도자의 수행과 같은 그리기를 행함으로써 관람객들과의 감정적 공유(interface)를 시도한다. 텅빈 거리와 어두운 밤길, 보도블럭 위에 떨어진 나뭇잎의 그림자와 비오는 놀이터의 풍경 등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본 공간들이다. 이러한 공간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대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낯익으나 새로운 전경들, 그 속에서 느끼는 심정을 담담하게 이미지화해나갈 수 있게 되며 이렇게 제시된 공간의 해석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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