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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미술품 감정

하계훈

미술사와 미술품 감정


하계훈(미술평론가)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지만 유럽과 미국의 경우에는 지하경제 규모에 있어서 단일 품목으로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이 마약 거래이고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미술품 유통이라고 한다. 이러한 미술품에 관한 유통규모에는 위작문제와 도난품 문제가 함께 포함되는데 이 부분에서의 거래 규모가 점점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또한 지하경제 거래에 있어서 이미 합법적 혹은 불법적으로 취득된 고가 미술품이 자금세탁과 대규모 불법거래의 결재수단으로 동원되어오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활동에 있어서 상품 가치가 높아지고 거래가 활성화되는 부분에는 정상상품을 모방하는 위조품 문제가 뒤따르는 현상을 보여 왔다. 특히 진품과 위조품의 가치 차이가 클수록 위조품 제조에 대한 유혹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에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고가 소비상품에 대한 위조품의 제조와 유통 문제가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미술품 위조가 증가함으로써 이 분야에 진입하여 상당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면 음성적인 자본과 재능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술 분야에 있어서 정상 시장에서의 재능 있는 작가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작업 활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작가 가운데 일부가 이러한 지하시장으로 활동의 무대를 변경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창작활동을 하던 작가가 미술품 위작 행위에 참여하여 미술시장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작가는 공공미술관의 컬렉션 매입에도 자신의 위작을 성공적(?)으로 진입시켜 나중에 위작으로 밝혀짐으로써 미술관 큐레이터와 일부 감정 전문가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술품 위작 시장은 점점 전문화되어 이제는 정상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특정 작가에 대한 전문 위조 담당자가 있을 정도로 진화되어 나아가고 있다. 


중국에서도 지난 몇 년간 미술품 경매시장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들에 대한 진위문제가 빈번히 제기되고 있으며 위작이 의심되거나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의 제작과 관련하여 낙찰 이후에 대금결재가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중국 미술시장을 교란하는 전문적인 위작 제작 조직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 남부 도시인 심천 근처의 유화 미술품 마을인 다펀(大芬)에서 활동하던 작가들 가운데 손재주가 있는 작가들이 상당수 이 지역을 이탈하여 다펀 지역의 복제 미술품의 질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이 지역을 이탈한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2000년대 중반 중국 미술품 경매시장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경매와 관련하여 좀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미술품 복제와 위조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설이 나돌고 있다.


미술품의 위작 여부를 가려내거나 이러한 위작을 제작한 범인을 색출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늘어나면 이를 막기 위한 조치가 따를 것이며 이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여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위작의 제작을 미리 차단하고 이미 제작된 위작들에 대해서는 그 진위를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진위를 판단하여 위작의 불법적인 유통을 차단하도록 하는 조치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품의 진위를 가리는 감정 작업에는 미술사가, 감정 전문가, 과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능한 한 모두 참여하여 공동 협업을 이루어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학자가 미술품 시장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사례로서 미국을 무대로 국제적인 미술품 거래활동을 했던 미술상인 조셉 듀빈(Joseph Duveen)과 미술사가 버나드 베렌슨(Bernard Berenson)이 1920-30년대에 미국의 부호들을 상대로 르네상스 미술품을 가지고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고 시장을 뒤흔든 경우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유태인 가계의 인물들로서 듀빈은 선대부터 골동품 거래활동에 종사해왔던 사람이고 베렌슨은 보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인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자였다. 당시 세계 경제의 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유럽의 미술품 소장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미술품들을 팔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미국의 신흥 부호들 가운데에는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 사이를 성공적으로 중계해줄 사람만 있다면 이 시업은 성공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조셉 듀빈과 버나드 베렌슨의 협업은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고 할 수 있다. 듀빈은 J.P. 모건, 록펠러, 헨리 프릭, 엔드류 멜런 등의 사업가들을 상대로 작품 판매활동을 하였으며 그들의 구입 결정을 유도하는 방법으로서 베렌슨이 진품을 인정하는 판단을 동원하였다. 당시 미국 미술시장에서 베렌슨의 의견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어서 그의 말 한마디에 작품의 가치가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듀빈과 베렌슨의 협업 이면에는 판매가의 25%를 베렌슨의 몫으로 하는 밀약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러한 사례는 미술사학자와 화상의 결탁이 초래하는 해악의 극단적인 사례로서 우리 미술계와 미술시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미술품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진품 판정을 받은 작품들이 나중에 위작으로 재판정받기도 하고 이와 반대로 위작으로 판정된 작품이 다시 진품으로 명예회복을 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고흐의 작품에 관한 두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2007년 호주 국립빅토리아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은 소장품 가운데 60년 넘게 진품으로 간주되어오던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최종적으로 위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결정에 의해 국립빅토리아미술관이 입게 되는 금전적인 손실은 약 500만불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립 반고흐미술관에서는 예전에 두 차례나 위작 판정을 받았던, 개인소장의 반 고흐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최종적으로 진품 판정 받는 행사가 있었다. 호주 국립빅토리아미술관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의 판정에는 런던과 암스테르담의 과학자와 미술전문가들이 동원되었는데 진위 판단의 근거는 과학적인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가운데 최종적으로 전문 미술사학자들과 반 고흐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의 양식적 유사성 비교에 대한 견해였다. 


진작이 위작으로 판명되었을 경우 소장자와 작품의 진위 문제에 관련된 당사자들의 당혹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호주 국립빅토리아미술관의 관장 보건 박사(Dr Gerard Vaughan)는 위작 판정 이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비록 이 작품이 위작으로 판정되었지만 나름대로의 조형적 가치가 있으므로 소장품 가격을 조정하고 계속해서 전시장에 소개할 예정임을 밝혔다. 


미국의 유명 화가 앤디 워홀의 전기를 저술하고 있는 평론가 블레이크 고프닉(Blake Gopnick)은 위작으로 판명되는 작품에 대해서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하였다. 고프닉에 의하면 진작인지 위작인지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작품이라면 그 나름대로의 조형적 가치나 완성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위작문제를 통해 과열되어가는 미술시장에 경각심을 일으켜 가격을 조정하는 효과도 있으며 미술품의 지나친 사유화를 저지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설득력 있는 위작 옹호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미술품의 진위와 가치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과학적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유명 미술품을 둘러싼 천문학적 숫자의 머니게임에 참여하는 일부 수퍼리치들의 작품에 대한 진위 문제는 별도로 두더라도, 학문적인 관점에서 작품에 접근하는 미술사학자들이나 일반 미술품 애호가로서 공공미술관을 통해 미술품을 감상하는 대중들에게 미술품의 진위문제는 금전적인 가치와는 별도로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미술품의 가치를 찾아보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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