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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특성을 잘 살린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하계훈

도시의 특성을 잘 살린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하계훈(미술평론가)



역사적으로 도시는 그 거주민들의 삶의 양식과 생활환경, 그리고 그들의 경험과 사고의 축적에 의해 형성되는 고유의 특징을 바탕으로 도시의 성격을 발전시켜왔다. 농경사회에서는 주민들이 종사하는 산업의 수확물들이 그 도시의 명성을 높여주기도 하고 산업사회가 도래한 뒤에는 그 도시에서 생산해내는 공업 생산물이 도시의 특징과 명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노동요나 연희, 축제 등의 무형의 유산들도 때로는 그 도시의 특징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이제 후기산업사회에서 각각의 도시들은 이러한 산업생산물이 아닌 그 무엇을 가지고 스스로의 성격과 특징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포항은 몇 가지 산물에 의해 널리 알려진 도시다. 포항은 우리나라의 남동부 바다에 접한 도시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맞는 호미곶과 바다 해산물을 가공한 먹거리인 과메기의 도시며 이러한 특징들을 넘어서서 무엇보다도 1960년대 국가 성장의 동력을 창출해낸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포스코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산업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철강의 도시로서 그 특징을 공고히 해왔다. 


이번에 두 번째로 개최된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이러한 배경에서 살펴볼 때 그 개최의 적절성과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으며 후기산업사회의 포항의 도시성격을 재규정하는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주최측의 주장대로, 철이라는 지역의 역사적․문화자산을 예술활동으로 융합한 세계에서 유일한 스틸조각 전시 축제인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영일대 해수욕장 일원에 스틸조각 작품 30여점을 설치하는 행사로서 철이라는 재료가 갖는 차갑고 녹스는 물성을 즐거움을 주고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품의 일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산업생산물로서의 철이 또 다른 차원에서 예술적 표현의 재료로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실험하는 기회인 셈인 것이다. 


원래 철이라는 재료는 산업사회 이전에도 한 지역과 국가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어왔다. 고대사회에서 전쟁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전투력의 상당부분이 무기의 성능에 좌우되었을 때 철은 구리나 그 밖의 금속으로 만든 무기들을 제압하는 강력한 전쟁무기의 재료였다. 고대 중동의 히타이트 부족은 철 제련술 분야에서 앞서 나아감으로써 세력을 넓히고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서 시작된 철제 무기류의 제조 기술이 서쪽으로는 그리스, 로마, 중세의 스페인 등으로 퍼져 나아가 그 지역의 전쟁과 산업의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 한 편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1세기 경에 중국으로 철의 제련술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철 제련술의 전파는 곧 고대 아시아의 군사력의 판도와도 연결 지어 역사의 전개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근대 산업사회에서도 생산력의 증가는 기계의 발명으로부터 유래하였으며 그러한 기계들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던 것이 곧 철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개최되기 시작한 만국산업박람회에서도 각 나라가 앞다투어 자랑하고싶었던 것은 자국의 산업기술 발전상이었으며 그 발전의 토대는 얼마나 성능이 좋은 기계를 발명해내는가에 달려있었다. 1851년 영국의 런던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것이 철제 빔으로 지은 대형 건물인 수정궁(Crystal Palace)이었고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프랑스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선보인 것이 유명한 에펠탑이었던 것만 보이도 이 시기의 산업과 철이라는 재료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된 30여 점의 작품들은 철을 재료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으로서 주최측이 의도한 “Enjoy Pohang Enjoy Steel Art'라는 슬로건과 “신 철기 시대의 대장장이”라는 전시 주제에 맞게 재료의 물성을 확장시킨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차가운 느낌을 주도는 철의 시각적 효과를 극복하기 위하여 화려한 색으로 채색되었으며 모티브 선정에 있어서 주로 인체나 동물의 형상을 채택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게 변형시킨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개막식 장소에 설치된 최정화의 작품의 경우에는 보통 사람들의 키를 넘는 대형 꽃나무를 형상화시키고 있는데 식물학적 사실성은 없지만 밝은 원색으로 탐스럽게 만개한 각종 꽃들이 뭉쳐져 커다란 구(球)형으로 표현된 나무는 활력과 풍요, 그리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으로서 이번 전시의 컨셉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의 작품들로는 포항 바닷가의 미풍(美風)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모티브로 하여 마치 연인이나 부부 또는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표현된 최성절의 <바람불어 좋은 날 (Happiness in the wind)>을 들 수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포항 도심 주변을 밝고 화사하게 장식하고 시민에게 즐거움과 친근감을 주며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형상화하여 시민이 작품과 더불어 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이번 작품은 조각적인 볼륨과 곡선뿐 아니라 회화적인 표면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며 이번 행사의 포토 존 작품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품작 가운데 인체를 표현한 작품들은 인체 전신을 표현한 작품들과 신체의 일부분을 표현한 작품, 그리고 동물과 인물을 함께 표현한 작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김정민의 <장사의 꿈>은 역기를 들어올리는 우람한 체구의 인물을 과장되게 표현한 작품으로서 과장된 얼굴 표정과 부풀어진 몸통은 다소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관람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재료로 사용한 철의 딱딱한 성질을 넘어서서 마치 라텍스 풍선을 불어놓은 것처럼 표면이 팽창되는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금속이라는 재료에 대한 확장된 개념을 제시하면서 철을 재료로 하면서 관람객들과 쉽게 친화할 수 있는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배형경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 - 인물1>은 사실적인 인체를 표현하되 직립하고 있는 인물이 네 개의 나뭇가지 위에 서있는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불안정한 상황 속의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와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물의 얼굴이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은 보편적이고 익명적으로 표현된 인간의 형상을 암시하며 말이나 글 또는 그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조형화하는 작업을 이러한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우리들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최정미 역시 바닷가의 커플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물 작업에 사실적인 색을 입혀 여유 있고 감각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도시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변대용의 <너는 나다. 나는 너다>는 스포츠와 예술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주제에 착안하여 구상적인 작품을 제작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 자아 성찰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이중적인 작품의 해석을 유도한다. 소현우의 <2050 비너스의 탄생>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해 진화하는 인간의 미래를 예측해보고 마치 새로운 종의 탄생처럼 전혀 다른 의식과 지능을 가진 인간이 미래의 세계에 탄생한다는 상상을 비너스의 탄생에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명비판적이며 예지적인 작품이다. 


이에 비하여 몇몇 작품들에서는 해학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고재춘의 <김여사의 나들이>나 김래환의 <러브 쇼핑>은 각각 애완견과 함께 현관을 나선 김 여사라는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인간상을 마치 종이접기한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대량 소비사회의 인간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김택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로봇태권V라는 강철같은 힘과 파괴력의 아이콘이 인간적인 정서를 발휘하여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신선한 감각을 자아내게 해준다. 정국택의 <비즈니스맨>은 서로 다른 크기의 원통형의 스테인리스 스틸을 조합하여 현대 사회의 샐러리맨을 돈키호테(Don Quixote) 같은 모습으로 재미있게 표현함으로써 현대인의 도전, 꿈,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상황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인체의 부분을 표현한 작품 가운데에는 이용규의 <가족>, 김정명의 <내 손안에 있소이다>, 김병철의 <도약> 등이 있다. <가족>은 남녀의 얼굴이 반쪽씩 결합된 사이에 어린 아이의 두상이 삽입되고 그렇게 구성된 형태를 두 발로 지지하고 서있는 조형물을 보여줌으로써 가족간의 유대와 사랑을 떠올리게 해준다. <내 손안에 있소이다>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우리 몸의 일부인 손을 두툼하게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으로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을 빌어보면 “여기에는 좌충우돌 종횡무진 하는 무적의 용사들인 피터팬, 아톰, 홍길동, 마징가 Z, 뽀빠이 등이 있고, 말썽꾸러기들의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 짱구, 피노키오, 둘리, 도널드 덕, 심슨가족도 보인다. 그리고 사랑과 우정이 충만한 인어공주, 어린왕자, 미니와 미키, 그리고 일곱 난장이 등도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내 손안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온과 사랑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든든한 벗들이다.” <도약>은 21세기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현실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뛰어가는 희망을 표현한 작품에서 과장된 인체의 운동감은 보는 이들에게 전진하고자 하는 의욕과 사실성을 뛰어넘는 만화적 흥미를 안겨준다.


인물 표현 다음으로 많은 작가들의 소재가 된 것은 동물이다, 그 가운데 손현욱의 <크랩 벤치>는 철판을 벤치 형태로 재단하여 게의 형상을 벤치로 치환한 작품이다. 마치 유치원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한 번 쯤 보았던 것같은 단순하고 재미있는 작품으로서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을 찾는 시민들과 작품으로서라기보다는 생활공간에 놓인 기물의 하나로서 함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김성복의 <신화-2013>은 상상속의 수호동물인 해태에서 모티프를 끌어들이되 해태의 본래의 임무인 선악을 판단한다거나 왕권의 상징으로서 위엄을 갖추기보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호랑이의 형태를 삽입함으로써 무거운 현실을 가벼운 익살로 넘기고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최일의 <정지된 말>은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말을 표현한다. 동물 해부학적 의미에서 말은 인체에 버금가는 조형미를 갖추고 있고 역사적 가치 면에서도 빠른 이동수단으로서 역사상 인류문화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말이 오늘날에는 고작 스포츠 산업에 동원되는데 그치며 일상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상황은 마치 박제된 말의 모습으로 비쳐 진다. 그래서 작가는 ‘정지된 말’의 의미는 서글픈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도성의 <에덴동산2>는 거친 석재와 스테인레스 스틸을 함께 이용해서 원시의 자연과 현대문명, 물속세계와 물 밖의 세계가 공존하는 이원적인 공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주변공간을 배경으로 광택과 거울효과, 자연광의 반사가 일어나는 스테인레스 스틸 부분을 통해서 바다 속의 꽁치떼로 상징되는 포항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손규호의 <풍경>에서도 일부 동물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어린 시절 조립식 플라스틱 장난감의 틀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여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태 질서 속에 공존하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류신정 <인상 : 해돋이>는 포항이라는 도시의 지리학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일출의 광경을 간단한 기호처럼 보이는 추상적인 조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출의 순간에 바다에 비친 햇살을 해의 모습과 함께 표현한 작품은 120여년전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의 첫 전시회에서 모네가 출품한 작품의 제목과 일치함으로써 동서고금에 관계없이 자연의 순환현상이 보편화된 우리의 환경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김건주의 <미지의 여행>은 움직임을 주제로 사유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작품은 무한함과 자유를 상징하는 구름의 형태와 존재와 휴식을 의미하는 소파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허공에 써놓은 커다란 글씨 모양으로 제작된 작품은 운동성을 암시하기도 하면서도 작품 그 자체로서는 다시 벤치의 역할을 함으로써 정지와 휴식의 의미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류훈의 <공존의 표상>은 직선과 곡선, 수직과 수평, 다듬어진 청동과 철판의 투박함 등 다양하고 대립되기도 하는 요소들이 결합하면서도 공존함으로써 생겨나는 공간을 제시해주고 있다. 오의석의 <사랑으로>는 하트 형태의 내부 곡선이 드러날 수 있도록 철 오브제를 집합적으로 용접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사랑의 기호인 하트 형태를 열린 공간으로 중앙에 넣고 철 오브제를 물결처럼 횡선으로 접합하여 현대 문명의 흐름 속에서 사랑의 이미지를 시각화하고자 하였다. 


이기칠의 <거주> 연작은 철판을 용접하여 제작한 작품으로서 철판의 표면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상태에서 부식되면서 시간을 담은 철의 고유색을 드러내도록 의도된 작품이다. 작가는 간략화된 도형과 공간을 통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규정하고 건축적 기본 요소인 문, 창호 등을 상징화시키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작고 작가의 자격으로 촐품된 문신의 작품들은 원과 선의 만남이라는 조형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칭성에 관한 탐구와 자연의 생명력을 담고 있는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번에 개최된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작가들의 이러한 작품들을 설치하는 작업 이외에 이들 작품들이 놓인 공간 안에서 관람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체험행사들이 함께 개최되어 관람객들의 흥미와 행사 참여도를 높여주었다. 본 전시와 함께 진행된 축제기간에 열린  “100개의 철가방 배달 서비스”, “오감철철” 등의 행사에서는 관람객으로서의 시민들이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그 결과물을 축제기간 동안 전시하였다. 그 뿐 아니라 <2013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에서는 스틸아트의 영역을 전시에 국한하지 않고 “아트노리-FUN FUN한 예술”,  대장간 시연 및 체험이 가능한 “두드리 대장간”, “로봇극장” 등 음악, 마임, 그리고 과학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접목한 창의적인 행사를 병행하여 예술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이 결합된 교육적이면서도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함께 가미된, 시민과 함께 즐기고 만드는 축제가 펼쳐져 철강의 도시 포항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스틸아트의 페스티벌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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