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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연

하계훈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의 일정한 기억은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재의 상황과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심리적 회피와 현실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면서 내 삶의 경험에서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웠던 과거의 어떤 시기를 회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회고의 작용이 가동되는 경우 기억은 사실을 넘어 미화되고 부풀려지기도 한다.

물론 과거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을 보상하는 퇴행적 차원에서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고 긍정적인 정황에서도 우리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상황이 마치 데자뷰 현상처럼 과거에 이미 경험한 상황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역시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상황에 덧칠해져서 보다 또렷하게 현재의 이곳으로 불러들여지기도 한다. 

양주연이 황동선을 꼬아서 만들어내는 나뭇잎의 형상은 관람객들이 작가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아야 이해를 할 수 있는 배경을 형성한다. 부모님의 직장을 따라 영국과 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양주연에게는 숲과 공원, 집앞의 녹지대 등이 낯설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변 환경에 대한 기억에서 작가는 나뭇잎과 같은 모티브를 쉽게 자신의 작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양주연이 풀잎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나아가는 수맥을 황동으로 표현하고 이러한 잎들을 역어내듯이 천장에서 늘어트린 초기 작품들은 자연과 함께 해 온 어린시절 작가의 자서전적인 내러티브의 조형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양주연의 개인적인 경험이 시각적으로 재현되는 작업은 이후에도 회화와 조각의 이원적인 트랙으로 전개되어 왔다. 회화 작업에서 작가는 나무줄기의 형상에 집중해왔는데 숲과 하늘을 암시하는 듯한 붓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한 줄기의 형상에서는 붉은 색 계열의 평면적인 도안 형식의 줄기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생명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나무를 표현한 또 다른 회화 작품에서는 검정과 갈색 톤의 단색에 가까운 화면 안에서 나무줄기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다양하게 표현된 작은 작품들을 여러 개 집합시켜 전체 화면에서 운동의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삶 속의 자연에 대한 교감과 추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해 온 작가가 얼마 전 미국 서부지역을 다녀온 뒤 또 하나의 모티브로 선정한 대상은 선인장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푸른 생명을 지켜나가는 선인장에서 작가는 자연의 경이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며, 그러한 체험과 인상을 밝은 색과 탄탄한 볼륨감으로 표현한 선인장의 오브제로 제시하고 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이번에 다시 작품전을 열게 된 양주연의 작품들은 한눈에 보기에 양식적 비약이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로부터 개인적인 감각의 경험과 자연에 대한 교감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면 관람객들은 이러한 비약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양식적 전이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작가로서의 개인전을 선보이는 양주연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접해온 자연으로부터 도출해 온 창작의 모티브를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작가로서 성장하여 나아가는 지 주변에서 모두 함께 지켜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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