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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효진 / 소통을 지향하는 공존과 융합

하계훈

소통을 지향하는 공존과 융합


하계훈(미술평론가)


육효진이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작업해 온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이라는 개념은 사회학이나 언어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중심적인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대상으로서 그 분야에서의 연구는 언어를 넘어서서 점차 비언어적 행동이나 표현 등으로 연구의 영역이 확대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인접 학문이나 예술 분야와의 접점을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육효진은 이러한 분야에서 관심을 두는 개체간의 소통의 문제를 작가의 입장에서 미술의 영역에서 연구하여 그것을 시각 언어로써 풀어내고, 그 결과로서 창출되는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조형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사각형의 화면에 창문이나 출입문을 암시하는 도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도형 속의 문들은 반쯤 열려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서 문을 경계로 하는 이편과 저편의 이질적인 상황과 소통의 단절을 해소해주고 동질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기작에서 육효진은 이러한 공간의 구분을 이루어내는 문을 마치 얇은 뚜껑처럼 표현해내고 화면을 균일한 4개의 작은 사각형으로 구분하여 환형대칭이나 좌우대칭 등의 조형적 리듬감을 주기도 하고, 평면화된 파스텔 톤의 색채를 통해서도 일정한 리듬감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다분히 기하학적 표현이나 색면추상 혹은 미니멀아트에서 견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없는 기계적 비개성의 추구,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예술적 표현을 최소화한다는 탈감성적인 상태를 지향하는 경향과 맥이 닫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육효진이 구사하는 화면에서의 색채와 그 색채들의 조합은 관람객들이 이러한 기계적 비개성이나 탈감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정서적인 부분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작가는 차갑고 냉정한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화면 속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조형적 연출가로서의 작가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듯하다.


육효진의 이러한 이중적인 심리상태는 다음 단계의 작품에서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작품의 연장선에서 평면의 화면에 색채를 더욱 단순화시키면서 굵은 윤곽선을 도입함으로써 보다 더 차갑고 통제되는 화면의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열려진 문의 저편의 공간을 마치 푸른 하늘에 구름이 뭉실뭉실 떠오르는 공간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가함으로써 추상성과 사실성, 엄격함과 친근함의 공존과 융합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또 따른 작품에서 작가는 평면을 벗어나 일종의 공간드로잉을 구사한다. 메탈과 알루미늄을 가지고 마치 방범창의 패턴을 구사하듯이, 이제까지 평면으로 표현해왔던 도형을 공간 안에서 입체적으로 구사한 작품들은 작가가 추구하는 명제인 공간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이전의 작품들보다 더욱 극대화시킨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체작품들은 일정한 크기로 유니트(unit)화되어 있음으로 해서 전시환경과 작가의 표현의도에 따라 무한 증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평면작품들과 달리 이러한 입체 작품에서는 색이 배제되고 수평과 수직을 이루는 직선과 사선이 만들어내는 직각과 예각이 화면을 재단하고 있으므로써 좀 더 이성적이고 엄격하며 객관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이 실제로 전시되는 상태에서는 조명에 의해 이러한 상황이 그림자로 증식됨으로써 마치 흑백으로 표현된, 직선에 의한 단색의 공간 드로잉의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앞으로 이러한 작품들이 어떻게 공간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가 하는 것과, 다른 한 편으로는 평면작품에서와 같이 색채와 윤곽선의 결합과 공존의 가능성이 3차원적인 입체 공간에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 육효진의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처럼 육효진이 구사하는 작품들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암시적이고 형태와 색채 등의 조형요소들 역시 지시적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관람객들의 입장에서는 해석상의 수동성을 벗어나 각자의 경험과 사고의 배경에 따라 해석의 자의성을 허용받는 객관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작품들처럼 작가의 손길이나 의도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품들은 관람객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경험의 공유나 내러티브를 통한 공감의 가능성이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육효진은 평면작품이건 입체작품이건 관계없이 일관되게 단순하고 절제된 조형을 통하여 공간의 연결과 소통을 지향하는 주제에 집착함으로써 작가 자신만의 조형 이미지를 구축해내고 있으며 관람객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정서적 접근을 대신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차원에서의 교감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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