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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경

하계훈

임현경의 채색화 작품에는 나무와 풀, 나르는 새와 물위에 떠있는 오리, 특이하게 생긴 돌과 작은 폭포수와 연못의 물 등이 등장하여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켜주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낭만주의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작가의 기획과 구성에 의해 화면 속에서 잘 짜인 인공적 환경의 장면으로 연출된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을 모티브로 삼아 조형적 탐구를 하는 동시에 종교적 절대자의 존재와 숨결을 감지하고 그로부터 삶의 태도를 부단히 단속하고 진정성을 유지하는 자아를 그려내고자 한다.

주제 면에서 이러하다면 기법 면에서 임현경은 채색화 기법 가운데 적색 계열과 녹색 계열의 색채를 주도적으로 사용하여 화면 안에서 보색적인 대비로부터 일어나는 활기와 선명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형적으로는 전통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석도와 화조도 그리고 산수화와 민화적인 요소까지 찾아볼 수 있는 다채로운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가만의 특색을 잘 살리고 있다. 임현경이 자연의 요소들을 화면에 도입하는 만큼 작가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명의 문제와 자연의 순환, 그리고 그 과정에 개입되는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감지하는 데에 집중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임현경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잘 짜인 구성과 안정적인 구도에 의해 관람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지만 작품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초현실주의적 공간을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신화적 내러티브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무대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을 구성하는 주요 조형요소들이 작가의 기획 의도에 의해 무대 위에 오른 오브제들처럼 제자리를 잡고 단정한 모습으로 관객을 향해 스스로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화면 속의 풍경은 마치 기념사진이나 광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준비한 배경 장면처럼 안정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거기에 화면의 활력을 더해주는 폭포수와 오리들의 움직임이나 새들의 비상이 가해짐으로써 이 공간은 마치 어느 공연무대 연출가의 손으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제시되는 삶의 무대라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가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의 가르침을 자신의 작품 안에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있음을 말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임현경의 직품에서 순수한 미학적 조형성을 읽는 것과 함께 화면에 내재된 종교적 함의를 추출해내는 것을 허용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뿌려지는 땅은 거친 사막과 같은 돌밭과 가시덤불이 무성한 잡초밭, 그리고 물과 양분이 풍성한 비옥한 땅 등으로 구별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러한 씨앗이 뿌려지는 땅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임현경의 작품 가운데 <The garden scape>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종합된 파노라마적 화면을 보여준다. 자연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인공적으로 벽돌담을 둥그렇게 두른 정원 안에는 12개 정도의 문이 담장을 돌아가며 고른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최후의 만찬에 동석한 예수의 제자들이 12명이었고, 그에 따라서 기독교에서 전세계를 향하여 선교인력을 파견하는 위원회의 구성원 숫자도 상징적으로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임현경의 작품 속에 표현된 12개의 문은 담장 안쪽의 생명력과 창조의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통로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12라는 숫자는 기독교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이며 종교를 떠나서도 우리 생활에서 여러 모로 인용되는 숫자다.

정원 안쪽 중앙에 배치된 분수대를 중심으로 담장 안의 마당에는 사계절의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나무들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마치 정원사의 손질까지 받은 듯하게 보이지만 또 다른 나무들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풍부한 토층이 부족하여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것같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이 나무들은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워 보이며 인접한 나무와 줄로 묶여 있는데, 비록 개개의 나무들은 척박한 토양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서로 줄로 묶인 나무들은 모습은 서로의 결속을 굳게 하고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힘을 느끼게 해준다. 나무로 상징되는 사회생활 혹은 종교생활에서의 우리들의 연대감을 강조하는 것은 일렬로 세워진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을 끈으로 하나하나 연결한 모습을 펼쳐 그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Together>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나뭇잎의 푸르름과 나무들을 둘러싼 주변의 시냇물이나 연못에 담긴 풍부한 수량은 이 나무들의 싱싱한 성장을 보장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의중에는 이러한 공간의 창조자로서의 작가이면서 동시에 마치 에덴 동산을 연상하게 하는 이러한 공간이 누군가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보살펴지고 있다는 암시를 비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현경이 한국화 수련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전통적 한국화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화적 표현을 이용하되 그 틀을 벗어나 보다 다채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는 서양의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세폭제단화(Triptych) 형식으로 제작된 <Closed garden>과 <Open garden>, 그리고 마치 바로크 시대 서양 건축물에서 천정을 장식했던 천정화 형식으로 제작한 <Sky in the garden>등을 들 수 있다.

<Closed garden>과 <Open garden>은 한 작품의 앞과 뒷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작가는 서양의 세폭제단화 형식으로 세 개의 틀 안에 화면을 구성하되 그 안에 표현된 정원과 나무, 돌 등의 모양이 각각의 틀을 넘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도록 표현하였다. 표현된 그림의 내용은 작가의 다른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정원의 모습으로서 나무와 돌, 날아가는 새들, 그리고 시냇물 등이 표현되어 있다. 펼쳐진 화면에는 노란 색 배경을 설정하여 이 공간이 모종의 초월적인 공간이면서 밝은 대낮임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닫힌 화면에서는 짙은 초록색 배경을 설정하여 상대적으로 어두운 화면을 통해 일몰과 침잠을 암시하고 있는 것같다.

비단에 수묵담채로 표현한 <Sky in the garden>은 바로크 시대(또는 종교적으로 반종교개혁시대) 유럽 건축물의 천장에 그려진 천상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밑에서 바라본” 혹은 “밑에서 위로 치올려가는”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di sotto in s)로 표현되는 천정화 장면은 글자 그대로 밑에서 위를 바라봄으로써 끝없는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면서 종교적 경외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유도한다. 임현경의 작품에서도 저 높고 무한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한 나무들과 새들은 이러한 종교적 감흥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천정에 배치하고 관람객들이 위를 올려다보도록 유도하였다.

 

이와 같은 임현경의 작품을 종교적 상징성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재미만큼이나 작품 속의 디테일을 감상하는 조형적 재미도 이에 못지않다. 기이한 바위의 표현에서 보이는 명암법, 세세하게 표현된 나무와 잎사귀들의 다채로운 모습, 그리고 상상의 정원답지 않게 여느 집 마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같은 수도꼭지나 펌프의 등장은 임현경의 작품이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종교적 함의를 내포하면서도 조형적으로는 관람자들과 가볍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임현경의 작품에서 천상과 세속의 모든 존재들과 하나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정원을 경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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