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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언덕에 서서

윤진섭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언덕에 서서


윤진섭 | 미술평론가


“바람이 분다: 조각에 관하여”는 리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초대전의 제목이다. 규모는 작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최근에 이르는 조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총 19점 중에서 그림 4점을 빼면 15점이 조각이다. 


 익히 아는 이강소의 작품세계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2016년에 발간된 생테티엔느 현대미술관 초대전 도록을 꺼내 찬찬히 살펴봤다. 50여 년에 걸친 이강소 예술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썩 잘 편집된 두툼한 화집이다. 


 1974년에 태어난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 동인인 이강소는 이 책에 잘 정리된 것처럼, 한국 실험미술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눈부신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 성과가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출범하여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L.A의 해머미술관으로 이어지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에 그대로 반영됐다. 김구림, 이승택, 이건용, 성능경 등과 함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세계가 집중 조명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강소 작품세계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전공인 회화는 물론, 조각, 입체, 설치,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사진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방위적으로 매체의 범위를 넓혀왔다. 60년대 후반 이후 <신체제>와 <AG>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전위미술에 빠졌고, 70년대 중반에는 개념미술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사실 이강소에게 있어서 개념미술과 회화, 조각, 퍼포먼스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는 비단 이강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라, 70년대 실험미술 작가들에게서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의 경우 유난히 현저하다. 이른바 미술 장르의 경계를 타고 넘나드는, 그래서 다른 제3의 영역을 찾아 융합하고자 하는 예술의지가 실험과 전위정신으로 몸에 밴 것이다.   


 한 십여 년 전, 전시기획 일로 안성의 이강소 작업실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드넓은 작업실에서 교반기(攪拌機)에서 빠져나온 두툼하고 넓적한 흙더미들이 잘려 산을 이룬 광경을 목격했다. 뿐만아니라 많은 수의 흙더미들이 작업실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짐작컨대 나오는 대로 대충 끊어 집어던진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강소의 손을 떠난 흙더미들은 바닥에 부딪힐 때의 충격으로 인해 이지러지거나 휘어진 모습을 띠었다. 이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일까? 그렇다. 이강소는 분명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로서의 흙더미들은? 조각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리안갤러리 전시장에 놓인 무작위적인 작품들은 이들의 다양한 양태를 보여준다. 다듬고 매만지는 것에 대한 반란, 기존의 조각 개념에 대한 ‘무저항적’ 저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작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1년 작인 <8개의 전투대형(Eight Battle Assay)>와 만나게 되지만, 이 작품은 비단 흙만이 아니라 돌, 자갈, 나뭇가지, 시멘트 블록, 각목, 새끼줄 다발 등등 다양한 재료들을 동원해 흐트러뜨린(散在) 설치작업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강소는 여기서 왜 굳이 ‘전투대형’이란 전쟁용어를 사용했을까?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루려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공격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나는 이강소가 당시 흉중에 품었을 그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가는 바가 없다. 그러나 그의 50여 년에 걸친 예술 행적을 더듬어볼 때 유추할 수는 있겠다. 그것이 혹시 이른바 ‘모더니티’ 혹은 ‘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서구가 아닐는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80년대 초반 이후 이강소 회화의 장대한 족적은 평면의 공간해석과 표상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에 다름아니었던 것.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청명>(227x182cm,2023), <바람이 분다>(227x182cm,2023) 연작은 이미지 표상의 과잉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것은 어떤 새로운 회화적 행보를 위한 조짐일까? 환골탈태를 위한 진통? 궁금하다. 


아트인컬처, 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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