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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추상을 찾아서: 이상욱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서체추상을 찾아서: 이상욱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 미술평론가


 작년에 한 뜻깊은 전시회가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렸다.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 한국 추상화가 7인]전이 바로 그것이다. 
 1976년에 창간한 계간미술(‘월간미술’의 전신)의 기자로 미술계에 입문하여 현재 ‘아트인컬처’를 운영하는 김복기(미술사학자, 비평가)가 기획한 이 전시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큰 행사였다. 내가 이 전시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추상화의 의미를 짚되, 큰 틀에서 흔히 간과해 온 어떤 지점에 눈길을 준 데 있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시기획자로서 김복기가 들여다본 것은 다름 아닌 ‘사이(between)’였다. ‘사이’란 무엇인가? 무엇과 무엇의 사이, 예컨대 지리적으로 말하면 남산과 북악산의 사이쯤 되겠다. 즉,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 낀 어떤 것에 주목하고 그 존재의 의미를 추적해 나간 작업이 바로 [에이도스]였던 것. 

 일개 상업갤러리가 주최한 전시회였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권위있는 어떤 미술관 전시에도 못지 않았다. 꼼꼼한 연표작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한 아키이브 자료의 구성은 특히 근대미술에 밝은 미술사학자 김복기의 풍부한 경험과 식견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터, 그로 인해 전시에 권위가 실렸다. 

 그것다면 그 ‘사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김복기가 주목한 인물은 이봉상(1916-1970), 류경채(1920-1995), 강용운(1921-2006), 이상욱(1923-1988), 천병근(1928-1987), 하인두(1930-1989), 이남규(1931-1993) 였다. 

 여기서 잠깐 이들의 연령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16년생인 이봉상과 30년, 31년생인 하인두, 이남규를 제외하면, 류경채, 강용운, 이상욱, 천병근 등 이 전시의 주축은 1920년대 생 작가들이다. 

 두툼한 전시 도록의 맨 앞에 수록된 전시기획자 김복기의 서문 제목도 ‘한국 추상회화의 얼굴’이었다. 즉, 추상화가들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 같은 추상이되, 앞의 것은 무엇이고, 뒤의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그 ‘사이’를 이루는가? 나는 여기서 앞의 것을 수화 김환기(1913-1974)와 유영국(1916-2002)등으로 대변되는 ‘신사실파’로, 뒤의 것은 박서보(1931- )와 정상화(1932- ) 등으로 대표되는 ‘단색파’로 규정하고 싶다. 그러니까 한국 현대미술사 서술에서 큰 위상을 차지하는 이 물결들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인물들에 대한 탐구가 바로 이 전시와 그에 대한 미술사적, 비평적 기술이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공교롭게도 이 글의 주인공인 이상욱의 학고재갤러리 초대전(2023.2.28.-7.29)이 열리는 동안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는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규상, 이중섭, 장욱진 등의 ‘신사실파’ 미술을 조명한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들]전(2023.7.4.-11.19)이 개막을 했다. 

 1922년생인 백영수를 제외한 나머지 신사실파 회원들 전원이 모두 1910년대 초중반 출생의 작가들이다. 그러니까 1910년대 생의 작가들이 중심이 된 이 ‘신사실파’라는 하나의 산과 1930년대 생이 주축을 이루는 ‘단색파’라는 또 하나의 산 ‘사이’에 1920년대 출생의 ‘에이도스’라는 산이 있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러 굳이 어떤 특정한 유파로 지칭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풍경을 다채롭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각론(各論)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단색화’라는, 이제는 현상이 본질을 덮어버린 상업주의의 환영으로부터 한국미술을 구할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술이 지닌 본래의 청순한 얼굴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학고재갤러리의 이상욱초대전은 각론에 대한 한 시도로서 충분한 자격과 의의를 지니고 있다. 바라건대, 부디 이 전시를 시발로 이 시기 작가들에 대한 많은 연구와 전시가 풍성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물론 그동안 많은 갤러리와 공사립미술관들이 이 시기에 작고한 작가들과 원로작가들의 작품세계에 주목한 좋은 전시회들을 열었다. 문제는 열풍이다. 예컨대 ‘단색화 열풍’이 부는 동안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이 숨죽여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크게 볼 때 그것은 우리의 손실이 아닌가? 
 1988년에 작고한 이상욱은 서체에 기반을 둔 추상화로 잘 알려져 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실향민이다. 그 정서가 가슴 밑바닥에 깔려 그림에 원을 자주 도입했다. 고향이 지닌 원형성의 의미가 아닌가 짐작한다. 1970년대에 제작한 ‘망향76’이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화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이 둥근 원의 이미지는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예의 서체적 이미지들로 차지하게 된다. 

 동양의 서예에 기원을 둔 서체 추상회화는 필획을 그을 때 나타나는 기운생동(氣運生動)이 특징이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 속에 이는 상념을 필(筆)을 통해 나타낼 때, 기운이 충천한다. 그 기(氣)를 몰아 단숨에 내리그은 필획의 다발들, 그 날카롭고 힘찬 예각의 선들이 모여 다발을 이룬 것이 이상욱 서체추상의 특징이다. 때로는 지그재그 형태로, 때로는 상하좌우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속도감 있게 연속적으로 전진하기도 한다. 필획은 넓은 것, 좁은 것, 중간의 것 등등 다양하게 구사하여 그때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상을 즉발적으로 표현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다양한 색채의 서체추상을 추구하던 이상욱에게 70년대 후반에 변화가 찾아온다. 색을 베이지, 회색, 흰색 등 무채색과 중성색으로 제한하면서 그 안에서 운필의 자유를 찾으려 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70년대를 풍미한 단색화의 어떤 영향을 암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또 그를 단색화 작가로 간주한 어떤 시도도 이제까지 없었다. 이제까지 그에 대한 접근이 색보다는 형태(形態)에 초점을 둔 까닭이다. 

 학고재의 이번 전시가 중요한 이유는 작가 이상욱에 대한 연구의 본격적인 단초가 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시다. 

월간미술, 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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