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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기술(記述)-모노하(のも派)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윤진섭



경험과 기술(記述)-모노하(のも派)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현해탄을 사이에 둔 한국과 일본. 이 ‘가깝고도 먼 나라’ 사이에 양국의 현대미술사를 크게 뒤흔든 두 개의 서로 다른 미술운동이 공교롭게도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탄생했다.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もの派)가 그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근 환갑(還甲)에 가까운 연륜을 지닌 이 미술운동들은 그러나 친근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멀게만 느껴진다. 역사적으로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이 2000년에 열린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에서 였으니, 오랜 연륜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의 모노하를 주제로 한 이 책의 서문을 쓰고 있자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내가 모노하를 처음으로 다룬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어느덧 23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고 그사이에 세끼네 노부오 선생을 비롯한 모노하 작가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스가 기시오 선생을 비롯한 대다수의 작가들이 현재도 모노하의 태도와 방법을 지속하고 있어 모노하가 일본 현대미술의 중심적인 사조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Ⅱ.
 이 글을 쓰면서 각별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다 안타깝게도 지병으로 작고한 고(故) 김미경 교수(1958-2016)다. 김 교수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단색조 회화에 대한 연구를 하는 동시에 일본의 모노하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대에 벌어진 이 두 사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김교수는 한국의 실험미술에 대해 오랜 기간에 걸쳐 천착해 들어갔다. 그 연구성과가 집약된 것이 2000년에 결실을 본 박사학위 논문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이다. 김교수는 1960-70년대를 풍미한 한국의 실험미술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한편, 일본의 실험미술도 같은 비중을 두고 깊이 연구를 했다. 일본의 실험미술에 대한 김교수의 노력과 열정은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쓴 <일본의 실험미술-하이 레드 센터(High Red Center)-직접 행동의 기록>을 번역, 2001년에 시공사에서 출판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의 단색조와 일본의 모노하에 대한 김교수의 탁월한 연구 업적은 양국의 실험미술에 대한 선행 연구가 밑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미경 교수는 항상 열정에 넘치고 일에 대한 에너지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 열정과 에너지가 한국의 단색조 회화와 일본의 모노하에 투사돼 수준 높은 학술적 성과로 나타났다. 그녀는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공간사, 2006)을 비롯하여 일본의 모노하와 실험미술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과 번역서를 남겼다. 특히 한국의 단색조 회화와 실험미술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깊은 연구는 <한국의 실험미술>(시공아트, 2003)과 <‘素’-‘素藝’로 다시 읽는 한국의 단색조 회화 : <<한국, 5인의 작가 다섯가지의 흰색>>展에 대한 고찰> 등의 저서와 논문에 집약되었다. 이러한 활동상을 염두에 둘 때, 나는 일본의 모노하에 관한 이 책의 서문을 쓸 진정한 자격과 실력을 갖춘 적임자는 다름 아닌 김미경 교수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존해 있지 않은 현실이 아쉽기 짝이 없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Ⅲ.
 <모노하와 태도들/Mono-ha and Attitude>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이 책의 출판은 여러 면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작년에 대구의 신라갤러리에서 열린 동명(同名)의 전시(2022.9.1.-10.21)에 발맞춰 이처럼 묵직한 모노하 이론서가 출판됐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개 갤러리의 차원에서는 하기 어려운, 전시와 이론서의 병행이란 이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유발할 유무형의 사회적 효과다. 현재 한국의 문화적 여건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분명 비상업적인 발상임에 분명해 보이는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돌파력 있게 추진한 신라갤러리 이광호 대표의 신념과 뚝심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대목은 무엇보다 모노하에 대한 80년대 생 MZ세대의 집단적인 발언이라는 점일 것이다. 20여 년 전 ‘김미경’이란, 한국의 단색조와 일본의 모노하에 대한 선구적 의식을 지닌 걸출한 인물이 걸어간 모노하 연구의 길을 한·일 양국의 차세대 학자들이 계승한다는 점에서 이는 새 시대의 물꼬를 트는, 가히 역사적 행보랄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모노하를 바라보는 국외자적 시선을 보여주는 미셀 누리드자니(Michel Nuridsany)의 <파리에서 본 모노하>란 제목의 글을 제외하면, 다섯 명의 한국과 일본 양국의 소장학자들이 저술한 저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삼아 글의 제목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조셉 러브의 모노하 해석에서 ‘인간적 통일’ 지향에 대하여>(박순흥), <이우환의 더블 이미지: 한국에서의 모노하와 모노하 이론의 수용>(가기타니 레이(健谷怜), <모노하와의 비교를 통해 보는 다카마쓰 지로 <제목(題名)>의 동시대성과 독자성>(오사와 요시히사(大澤慶久), <모노하가 말하는 특별한 경험: 예술과 미학의 자연화를 향하여>(손지민), <모노하의 장소성>(박창서) 등이다. 
 
Ⅳ.
 본질적으로 ‘모노하’ 1)가 제시하는 것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주변을 둘러싼 사물들과 그것에 반응하는 마음, 모노하 작가들의 작업은 인간의 마음과 사물이 갖는 관계에 대한 서술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인식주체인 인간과 그 대상인 사물들 사이에 싹트는 대화방식 중 하나가 모노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와라기 노이(椹木野衣)가 쓴 <일본·현대·미술>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좌담회 내용이 나온다. 

 “요시다: 뭐랄까, 저는 ‘모노’를 보고 무엇인가 짜릿한 것모노, もの을 느끼고 싶지요.”2)

 사와라기 노이는 거기에 덧붙여 다른 작가들이 말한 ‘짜릿하다’, ‘두근거린다’, ‘오싹하다’란 표현을 예로 든다. 그리고 그는 “중요한 것은 작가들이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모노’ 그 자체가 아니라 (일상적)인 모노를 타파한 저편에 드러난 ‘세계’와, 그러나 ‘모노’를 통해 ‘만나는’ 데 있다는 점일 것이다” 3) 라고 부연한다. 이어서 그는 아주 중요한 내용을 기술하는데, 다소 긴 인용임을 무릅쓰고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것을 가장 명쾌하게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앞에서 언급한 좌담회에서 ‘틀림없는 숯인데 숯 이상의 무언가 좀 더 다른 것모노, もの으로도 느껴지게 하는 것모노,もの이라고 말한 이우환의 발언일 것이다. 
 여기서 이우환이 ‘다른 것모노, もの으로까지 느껴지게 하는 것모노, もの’라고 할 때, 전자의 ‘모노’와 후자의 ‘모노’가 서로 상이한 ‘모노’인데도 이러한 두 종류의 ‘모노’가 모두 ‘모노’라고 불림으로써 하나의 ‘모노’로 겹쳐지는 데 우선 주목하고 싶다. 후자의 ‘모노’가 돌, 종이, 철, 흙, 나무 등 그것을 통해서 ‘세계’를 열어 보이기 위한 ‘物(사물)’인 것에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우환이 ‘다른 것もの’이라고 할 때의 ‘모노’란 도대체 무엇일까? ‘物’보다도 훨씬 ‘세계를 열어 보이는 것’에 가까운 ‘모노’란?” 4)


 우선 ‘모노’에 대한 이런 설명을 바탕에 깔고 논의를 시작하자. 일정한 지역 내지는 같은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사 교환과 정서적 유대를 위해 고안한 언어는 당연히 사물에 대한 어떤 느낌을 기술하는 데 사용된다. 앞에서 언급한 ‘짜릿하다’느니, ‘오싹하다’는 표현들이 그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시골 고향 마을의 외곽에 있는 상여집을 지나갈 때 느꼈던 감정이 그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싣고 나갈 때 쓰는 상여는 울긋불긋 매우 화려하게 치장한 물건인데, 그 물건을 넣어둔 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싹’한 느낌을 느꼈던 것이다. 
 수저나 베개처럼 상여는 하나의 사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상여는 내게 ‘오싹’한 느낌을 준 것일까? 나의 경우에는 ‘죽음’의 구체성과 더불어 상여집이 주는 어떤 스산하고 무서운 느낌, 그리고 나무문짝의 틈 사이로 들여다볼 때 그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분위기가 주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Ⅴ.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인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은 일본의 모노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 모노하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처음으로 만난 이 역사적인 전시의 기획을 맡은 나는 비로소 모노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5)
 이때 일본의 모노하 작품들에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대체로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게 이 표현은 뭔가 화끈한 자극이 없어서 어딘지 모르게 밋밋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만큼 모노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심심하다’는 한국말 역시 다채로운 함의(含意)를 지닌다. 음식이 맵거나 짜지 않고 싱거울 경우, ‘심심하다’ 고 하며, 마음이 간절할 때도 ‘심심한’이란 표현을 쓴다. ‘심심한 애도를 표하다’와 같은 용례가 그것이다. 또 한자어 ‘심심(深深)’은 ‘깊고 깊은’의 뜻을 지녀 ‘깊은 골짜기(深深幽谷)’라는 단어를 낳았다. 
 
Ⅵ.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이 열린 광주시립미술관 1층의 일곱 개 전시장에 분산 배치된 총 38명 초대작가들의 작품은 공교롭게도 조용하고 침잠된 것이 특징이었다. 나는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를 상징할 수 있는 공통어를 골라 “침묵의 목소리-자연을 향하여”라고 제목을 정했다. 
 글쎄, 이 문구가 과연 한국의 단색화와 일본의 모노하를 잘 대변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로부터 20년 후에 전개된 ‘코로나 19’라고 하는 팬데믹 상황을 놓고 볼 때, 일찍이 자연의 의미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6)  
 모노하 작가들이 서구 근대의 초극을 위한 몸짓으로 ‘모노’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현대문명이 처한 위기를 예술가들 특유의 예민한 촉수로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일부 모노하 작가들이 회화나 조각 등 본래의 매체로 돌아간 것은 미술운동이 지닌 일종의 매체적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스가 기시오(管 木志雄)를 비롯한 소수의 모노하 작가들은 최근까지도 모노하 경향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어 주목된다. 

Ⅶ. 
 지리적으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지척이라고 할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의 일본 모노하에 대한 이해나 일본에서의 한국 단색화에 대한 이해는 가까운 거리에 상응할 만큼 숙성돼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던 차에 신라갤러리가 일본의 ‘모노하’를 주제로 한 전시에 즈음하여 출판하는 이 책은 모노하를 통해 한·일간 문화교류의 증진에 이바지함은 물론, 향후 양국 간에 이루어지게 될 출판과 전시기획의 견인차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이유는 이 책의 필진이 소위 MZ 세대에 속하는, 젊고 지성적이며 예리한 시각을 갖춘 다섯 명의 한·일 양국의 학자들로 꾸려져 있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7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미셸 누리드자니일 터인데, 그는 마치 원거리에서 조망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시각에서 모노하를 바라보고 있어 모노하의 이해에 또 다른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모노하의 개념이나 역사적 형성과정, 작가 및 작품, 양태, 특징, 시대적 배경 등등에 대해 생략했는데, 그 이유는 새롭고 참신한 시각을 지닌 필자들이 쓴 논문들의 모음집인 이 책에 다 실려있기 때문이다. 7)
 

<모노하와 태도들>, GALLERY SHILLA, 2023, 서문





ㅡㅡㅡㅡㅡ

1) 흔히 기존 연구서나 비평문에서는 ‘모노하’와 ‘모노’라는 단어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어긋나게 쓰였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이 작가들의 원래 사용 방식에 충실하도록 사용되었다.

2) 사와라기 노이, <일본·현대·미술>, 김정복 옮김. 김용철 감수, 두성북스, 2012, 190쪽. 

3) 사와라기 노이, 같은 책, 191쪽

4) 사와라기 노이, 앞의 책, 191쪽.  

5) 초대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단색화 : 박서보, 윤형근, 김창렬, 정창섭, 정상화, 김기린, 하종현, 허 황, 이동엽, 최병소, 서승원, 최명영, 심문섭, 이강소, 윤명로, 김형대, 김장섭, 김태호, 김종일, 오이량, 이건용, 이재효, 장승택, 이인현, 박기원, 문범, 이우환,(도록 順) 
   일본의 모노하 : 에노쿠라 코지, 스가 키시오, 세끼네 노부오, 다카야마 노보루, 고시미즈 스스무. 토야 시게오, 쯔지야 키미오, 엔도 토시카츠, 하라구찌 노리유키, 나리타 가즈히코, 요시다 카츠로, 구로가와 히로다케, 하야시 다케시(도록 順) 

6) 현대문명의 대척점에 있는 자연에 대해 대중의 관심을 촉구한 사례로는 1981년에 창설돼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충남 공주에 기반을 둔 ‘야투(Yatoo)’ 그룹을 들 수 있다.  

7) 이에 대한 나 자신의 견해와 기술(기술(記述)은 다음의 글을 참고할 것. 
   윤진섭, <침묵의 목소리-자연을 향하여>,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도록, 도서출판 광주비엔날레, 242-334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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