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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의 회의(懷疑)

윤진섭




강명희의 회의(懷疑)

윤진섭 | 미술평론가


 “보는 눈이 보이는 세계에 속하여 있지 않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보는 눈이 세계에 없음을 말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다만 보이는 세계의 반대편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가. 보이는 세계가 세계에 있는 것이라면, 보는 눈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는 눈은 다만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1)



Ⅰ.
 강명희의 그림을 단 몇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그녀의 그림들이야말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르고, 그 안에는 그림을 그릴 때 작가가 느낀 자연에 대한 감흥과 대면의 흔적이 예민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강명희는 풍경이나 정물을 그릴 때 결코 사진을 이용하지 않는다. 세계와 직접 대면하길 즐기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나가서 캔버스를 펼쳐놓고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녀는 영락없는 세잔의 후예이다.2) 이는 물론 작업의 태도를 이름이지만, 이러한 태도는 세잔의 시대로부터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유는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3) 자연의 세계는 아직도 숱한 질문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4) 세상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이 그렇듯이, 강명희는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풍경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특정한 장소를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자주 찾을 이유가 없으며5) , 세월이 지남에 따라 형성된 자연의 변화를 하나의 그림에 중첩해서 그릴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선택한 장소를 시간을 달리하며 그리는 행위의 이면에는 자연에 대한 강명희의 깊은 회의(懷疑)가 있다. 미술사적으로 말하자면, 풍경을 다룬 기존의 화풍이나 사조에 대한 ‘은근한’ 부정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글 중에 ‘아니다’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강명희가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낳은 근본적인 태도이다. 그러한 강명희의 회의는 비록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풍경일지라도 일단 의심하고 보는 부정의 정신에 기인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진정 대상의 참 모습인가? 저 바위는 그 옆의 나무 ‘뒤에’ 과연 있는 것일까? 아니,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옆에서 보면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각기 다른 성질의 사물들. 그것을 보는 주체는 과연 나일까? 내가 봄으로써 그것들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가 없어도 거기에 존재하는가? 
 강명희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보는 주체로서의 ‘나’를 소거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흐리게’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흐리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철학자 박동환은 때로 주어가 생략돼도 의미가 통하는 한국어의 특질에 주목했다. 가령, “(지금 내가 저 나무를)‘ 보고 있잖아.” 라는 문장이 있을 경우, 이 문장은 한 친구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뭘 보고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적합하다. 한국에서는 이런 대화가 흔하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나무를 보고 있는 주체인 ’나‘가 생략돼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영어에서는 어떨까? 예컨대 ’나는 간다(I go.)라는 문장이 있을 경우, 주어인 ‘나(I)’를 생략하면 이 문장은 명령형이 돼 행위의 주체는 타자가 된다. ‘가!(go!)’.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몽 생 빅토와르 산에 대한 ‘세잔의 회의’가 내(I)가 주체가 되는 회의였다면, 강명희의 회의는 내가 부재하는(마치 한국어에서 주어가 생략돼도 통용되는 것처럼)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주어가 없어도 통용되는 한국어의 특질로 미루어볼 때, 강명희의 희의는 근대 이전의 시원(始原)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먼 태고적,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풍경이 강명희가 드러내고자 하는 풍경은 아닐까? 강명희가 즐겨 찾는 몽골의 초원을 비롯하여 시리아의 산야, 파타고니아의 빙하, 심지어는 남극에 이르는 도정은 한결같이 문명이 자리잡지 않은 시원적 자연을 향한 구도의 몸짓이었다.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찾은, 태고의 숨결을 간직한 장소에서 강명희는 비로소 자연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자연을 그리면서 강명희는 가능한 한 대상을 흐려 남이 알아보기 어렵게 한다. 이는 강명희의 그림이 얼핏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유이며,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비록 그녀의 그림이 남의 눈에 모호하게 비칠지라도 그 자신은 풍경을 둘러싼 정황을 분명히 기억한다. 6)
 이것이 강명희가 자신의 그림에 그림을 그린 날짜와 장소 등을 간략히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그럴진대, 분석과 논증을 중시하는 서양적 사유의 전통에서 세잔의 풍경화가, 주역과 시경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사상적 전통과 추사 김정희의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문화적 전통에서 강명희의 선 드로잉이 나온 것도 자연스런 일이리라. 특히 비교적 중기작들인 <오동나무>(1999)를 비롯하여 <모론>((1999), <인(燐)>(1998) 등등과 그 이후 현재에 이르는 화면 속의 여백은 동양적 전통에 기대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 두 문화적 요소의 혼효(混淆)는 강명희의 화면을 지배하는 특유의 색채감과 공간감으로 발현된다. 내가 강명희의 그림들을 보고 받은 인상은 엷은 청색조의 세련된 프랑스적 감성과 풍부한 여백이 주는 안정적이며 풍요로운 공간의 울림과 관계가 깊다. 그것이 강명희의 그림에서 나는 냄새다. 그 특유의 냄새는 자연이 내뿜는 숨결을 이루는 빛, 색, 바람, 비, 눈, 물, 그림자, 먼지들이 오래 쌓이고 삭아서 된 것이다. 만일 강명희의 그림이 하나의 ‘몸’으로 읽힐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그녀의 그림이 이처럼 특유의 냄새를 발산한다는 점에 있다.    
       
Ⅱ.
 강명희는 한국인이다. 1947년 대구 출생인 그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72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제주도와 프랑스를 오가며 그림을 그린다. 
 강명희의 삶에서 두드리진 것은 유목적 태도이다. 그녀는 세계를 거처로 삼는 유랑인(nomad) 이다. 한국의 제주도와 프랑스에 고정된 작업실을 두고, 이 두 곳을 거점으로 그림을 그리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즉시 짐을 꾸려 떠난다. 야생이 살아 숨쉬는 몽골의 초원을 무려 여덟 차례나 방문한 그녀의 범상치 않은 이 대담한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의 이 돌발적인 행동은 ‘분노’에서 나온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분노일까? 가공할 현대문명이 저지른 대지의 황폐화(荒廢化)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프랑스의 시인이며 총리를 지낸 저명한 정치가인 도미니끄 드 빌펭(Dominique de Villepin)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연이 퇴색하고 소진되어가는 시기에 작가는 우리가 인류세에 대한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태고의 그림, 생물의 다양성과 생명체의 독특함에 관한 그림을 영원한 존재의 시적 본질과 예상치 못한 힘의 탁월함으로 보여준다.” 7)
 

 자원의 고갈과 생태계의 교란, 야생동물의 급감,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현상 등등에 자극을 받아 제안된 인류세(Anthropocene) 논의는 그 반대급부로 자연의 시원에 대한 재발견을 부추겼다. 그것은 마치 1차대전이란 전대미문의 대량 살육을 목격하고 “천하태평의 매미들”(한스 리히터)에 둘러싸여 경고음을 발신한 다디이스트들의 다급한 육성을 상기시킨다. 앞에서 빌펭이 언급한 ‘태고의 그림’이니 ‘영원한 존재의 시적 본질’과 같은 표현은 저항을 생명으로 하는 전위적인 예술가들에게 맡겨진 소임일 터이다. 부정의 정신과 저항 의식으로 무장한 전위작가들은 당대의 인류가 직면한 위기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온몸을 던져 정열을 불사르는 자이다. 강명희가 실로 그러하다. 강명희는 비록 캔버스에 유채로 그림을 그리나,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첨단의 매체로 무장한 사이비 전위주의자들보다 더욱 경고적이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더욱 반향이 클 수 있다. 때로는 무자극이 강렬한 자극을 이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 잔잔해 보이는 강명희의 그림은 노자에 따르면 “빼어난 솜씨는 오히려 어리숙하게 보이고(대교약졸(大巧若拙))”, 부드러운 물이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광포(狂暴)해 지는 것과도 같다. 

Ⅲ. 
 평생 동네 밖을 벗어나지 못한 칸트가 뉴욕 시내를 두루 꿰는가 하면, 집 앞의 정원만 잘 관찰해도 세계를 유람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쓴 중국의 석학 린위탕(林語堂)의 경우를 상기할 때, 우리는 능히 강명희의 그림에서 세계의 본질을 볼 수 있으리라. 통찰은 숱한 경험에서 나오고 지혜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갑속에 든 칼이다.” 8)  강명희의 그림을 보면 화풍이 비슷하여 그게 그거같고 저게 이거 같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녀의 그림들은 모두 특정한 장소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난히 눈길이 가 애착을 지닌 곳이다. 강명희는 때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찾아 서로 다른 시간대의 풍경을 한 캔버스에 그리기도 한다. 자연의 숨결에 집중하여 그때그때의 감흥을 빠른 필치로 그린다. 그림의 부분을 확대한 사진을 보면 연필로 대담하게 그린 스케치 위에 점을 찍거나 좌우, 상하, 빗금 등 빠른 필치로 뭉개듯이 그리는가 하면 툭툭 친듯한 스트로크, 물감을 두껍게 찍어 힘 줘 뭉갠 노랗거나 빨간 점획 등 한마디로 말해 난장을 이루고 있다. 강명희 그림의 신비는 바로 이처럼 자연과 벌이는 그녀만의 은밀한 밀교의식이 벌어지는 성소(聖所)로부터 나온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강명희는 영락없이 신들린 무당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신기(神氣)를 젊은 시절에 그린 자화상에 나타난 눈의 표정과 얼굴사진(1996), 그리고 근자에는 제주도에 있는 화실의 모습에서 언뜻 본 적이 있다. 그녀에게 종교와도 같은 그림을 그릴 때 강명희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작가로서의 명예 따위는 아예 관심 밖이며, 출세는 가당치도 않다. 그것이 화가 강명희를 강명희답게 만드는 비결이자 그녀의 영혼을 순수한 물처럼 맑게 만드는 본질이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그림에서 읽는다. 
 화력(畵歷)이 60년에 가까운 강명희는 일찍이 퐁피두센터에서의 초대전(1986)을 필두로 국립현대미술관(1989), 중국 베이징 국립미술관(2005) 등에서 가진 바 있다. 화가로서 많은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녀는 80세 노년에 이른 지금도 아이처럼 여전히 호기심에 가득찬 시선과  겸손한 태도로 자연에 임한다. 아직도 청춘이다! 
     


ㅡㅡㅡㅡㅡ
1) 박동환,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 까치, 1988, 64쪽. 

2) 1972년, 강명희가 도불, 처음 정착한 곳이 다름 아닌 세잔의 고향이자 세잔이 즐겨 그린 몽 생 빅토와르(Mont Saint-Victoire) 산이 있는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였다. 이는 자연과 대면하여 진리를 찾고자 한 강명희의 속 깊은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3) 가령 요즘 유행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등의 SNS 매체들, NFT, 메타버스, A.I, 챗GPT 등등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 만능의 시대를 가리킴.

4) 그런 점에서 볼 때 강명희의 그림은 오늘날 타성에 빠져 비숫한 풍경화를 그려대는 작가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타성은 곧 맹목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5) 강명희의 그림들 중에는 여러 해에 걸쳐 제작된 것들이 많다. <벚꽃>(2003-2021), <황우치Ⅱ>(2010-2012), <북원>(2014-2016), <막다른 길>(2019-2020), <대평 바다>(2009-2013) 등등.  

6) “명희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내가 보기 전에 그녀는 나에게 몇 개의 데생들을 보여주면서 매번 이 데생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아주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것은 파타고니아에서 새를 쫒아가는 개들이고, 이것은 알프스 산맥에서 ”시작되는 길“이고, 또 “이것은 차가운 개울물입니다”라고. 
   필립 라꾸 라바르뜨(phillippe lacoue-labarthe), <지칭>, 강명희 그림, 경남도립미술관 도록, 2006, 33쪽, 

7) 도미니끄 드 빌펭, <강명희 또는 세계의 재창조>, Myonghi Kang Orgins 2, 2022, 72쪽. 

8) 민태원, <청춘예찬>.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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