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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치 / 미적 보편성을 향한 草体(Grass Style)의 실험

윤진섭


미적 보편성을 향한 草体(Grass Style)의 실험


윤진섭 尹晋燮 | 미술평론가


 2017년, 주 안치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가 대단히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임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하이의 마오 스페이스(Mao Space)에서 열릴 예정인 그의 개인전을 위해 기꺼이 서문을 썼던 것이다. 

그 글에서 나는 주 안치의 그림을 가리켜 “추상적 구성을 창조하기 위해 극도로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썼는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실 한 작가가 인종과 지역,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예술의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을 일궈내야 하는데, 주 안치야말로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 안치의 초체(草体:Grass Style)는 예로부터 동양의 선비들이 인격을 도야하기 위해 연마한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특히 난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매(梅), 란(蘭), 국(菊), 죽(竹) 중에서 유독 ‘난(蘭)’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조형화하기 위해 고심한 것이다. 짐작하건대 주 안치가 난초의 표현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형태의 특성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대나무도 잎이 뾰족하여 얼핏 보면 난초의 잎사귀 형태와 비슷해 보이나 대나무는 줄기와 잎을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추상적 구성을 위해서는 부득이 난초를 택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주 안치의 ‘草体’는 자연에 서식하는 난초에서 모티브를 빈 것으로 그 문화적 배경에는 동양의 서예(calligraphy) 문화가 깔려있다. 짐승의 털로 만든 동양의 붓은 먹물을 머금으면 끝이 뾰족하게 되는데, 그것은 잎새의 끝이 날카로운 난초나 대나무를 그리기에 안성맞춤의 화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은 예로부터 학문을 하는 사대부나 사군자 등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위한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동양에 서양의 문화가 들어온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오랜 기간동안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예술가들은 표현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갈등의 진원지는 과연 현대의 생활감정을 어떤 형식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거기서 바로 미적 보편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주 안치의 예술세계는 미적 보편성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둘 혹은 많아야 세 가지 단색(單色)들의 상호조화는 보는 자에게 대단히 상쾌한 미적 쾌감을 가져다준다. 게다가 화면을 좌우 대칭으로 나누는 독특한 구성법은 선의 가장자리를 깔끔하게 처리한 특유의 마감질로 인해 기하학적 추상의 진수를 보여준다. 주안치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미감(美感)은 현대의 도시미관을 연상시킨다. 대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천루의 숲을 이루는 건축물들의 미니멀한 형태가 곧 주 안치의 기하학적 추상화의 요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치의 작품이 도시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굳이 도시를 예로 든 이유는 현대의 생활감정을 논하기 위해서였을 뿐, 주 안치 회화의 본질은 역시 난초와 같은 자연에 두어진다. 즉 자연의 한 비유로 난초가 화면에 들어옴으로써 자연의 소중함은 물론 인류에게 궁극적인 미(美)의 진수를 전파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산뜻하면서도 경쾌한 단색조 미감의 창출을 위해 주 안치가 구사하는 색채학적 기법은 계조(階調:gradation)이다. 그의 화면에는 회색을 비롯하여 청색, 빨강 등의 계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주 안치 그림의 또 하나 특징은 끝이 예리한 난초를 예각으로 단순화하여 둘, 셋, 혹은 횡으로 연속해서 증식해 가는 기하학적 패턴을 구사함으로써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다. 때로는 청색과 적색 등 보색으로, 때로는 회색과 노랑, 주황, 빨강 등 색을 달리하면서 화면의 색채 변화를 꾀하는데, 이는 마치 성격이 다양한 인간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 안치의 작품은 사회의 상징적 축도(縮圖)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출처: 상하이 아라리오갤러리 초대전 서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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