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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과 복잡, 풍경과 평면의 사이에서

윤진섭

단순과 복잡, 풍경과 평면의 사이에서

                                         윤 진 섭

 한동안 화단을 뜨겁게 달군 단색화의 열기가 주춤해졌나 싶었는데, 윤형근과 이배 두 작가의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PKM갤러리에서 열린 윤형근전에는 1989년에서 1999년까지 10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2018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윤형근회고전에 출품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단색화의 1세대 원로작가들 중에서도 윤형근(1928-2007)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박서보와 정상화가 1950년대 후반의 ‘비정형 회화(Informel)’ 운동을 펼친 주체임에 반해 윤형근의 화단 데뷔는 1960년대 초반으로 연배에 비해 다소 늦은 출발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적으로 볼 때 1931년생인 박서보보다 세 살이나 위인 윤형근은 어찌된 일인지 김창열, 하인두, 장성순, 안재후, 전상수, 이명의 등등 서울미대 출신들이 주도한 1957년의 현대미술가협회 창립 멤버 명단에도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1947-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중퇴, 1955-5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얼핏 전후의 혼란스런 모습이 그의 경력에서 스쳐지나간다. 
 이 짧은 글에서 복잡다단했던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윤형근은 전후의 비정형 회화 운동의 주체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령적으로 볼 때는 서울미대 출신의 김창열, 정창섭, 하인두 등과 활동을 함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정작 그가 화단에서 부상되는 것은 1970년대의 단색화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앙데팡당전, 에꼴드 서울전, 서울현대미술전 등 단색화 중심의 현대미술 단체전에 빠짐없이 참가한 그는 정창섭, 권영우,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 단색화의 정상급 작가들과 동반자로서 활동을 함께 하면서 오늘날 보는 것처럼 세계적인 단색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미술평론가 이일도 1989년 인공갤러리 도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1967년 작인 <무제>(28x25cm, 유채)는 윤형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엄버(Umber)’ 시리즈의 맹아가 되는 작품이다. 붉은 색과 청색의 긴 줄이 죽죽 간 이 한 점의 추상화에는 남북 간의 관계에서 파생된 이념 문제로 갖은 신산을 겪은 그의 인생이 압축돼 있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작품에서 붉은 색이 사라지면서 청색이 주조색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다가 대략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갈색이 등장하면서 ‘Umber-Blue’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윤형근에 대해서는 이일을 비롯하여 이우환, 오광수, 나카하라 유스케, 조셉 러브 등등 70년대 이후 단색화의 전개 상황을 직접 목격한 여러 증언자들이많은 글을 썼다. 최근 들어서는 홍가이, 리차드 바인, 조셉 브로드스키, 김인혜 등등의 미술이론가들이 그의 작품에 관해 새로운 시각의 글을 쓰면서 ‘인품론’ 중심의 다소 관념적이며 공허한 비평적 담론의 한계를 보완하기도 했다.        
 PKM갤러리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윤형근이 인공갤러리에서 열린 도널드 저드 초대전을 계기로 저드와 만난 이후 점차 바뀌어 나간 검정 그림들이 주축이 되었다. ‘Burnt Umber & Ultramarine’이라는 제목의 이 연작들은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청색 기미를 느끼기 어렵고 검정색 일색으로 보인다. 짙은 갈색과 청색의 혼합물인 윤형근의 그림이 검정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이자 매력이다. 연령적으로 볼 때, 60대에서 70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그린 이 작품들에는 어느덧 노경에 접어든 작가의 깊은 심회(心懷)가 스며 있다. 마치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짙은 갈색과 청색이 여러 겹 교차하면서 우러나는 검정색은 삼라만상을 껴안은 것처럼 깊은 정신적 울림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 자의 몫일 것이다. 윤형근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열려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이다. 정신적 교감은 일방적일 수 없으며 쌍방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윤형근의 작품이야말로 ‘상호작용(interactivity)’이 중시되는 SNS 시대에 적합한 작업의 모델일지도 모른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윤형근의 이번 개인전 출품작들은 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나타난, 보다 엄격하게 통제된 사각의 형태와 번짐이 없는 진한 검정이 절정에 달한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번짐이 심하고 갈색 계통이며, 좌우대칭형 대문(大門)의 구조를 지닌 기존의 화면구성에서 벗어나 지적 엄밀성을 추구하려했던 당시 심경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후기단색화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인 이배는 ‘숯’을 재료로 사용하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숯은 너무나 친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눈여겨보지 않을 수도 있는 흔한 생활 재료에 속한다. 그런 것이 어떻게 미술의 표현재료로써 현대미술의 문맥 안으로 들어왔을까? 
 196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가난한 미술/Poor Art)’ 전시에서 재니스 쿠넬리스, 루치아노 파브로, 마리오 메르츠,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와 같은 작가들은 숯, 섬유, 석탄, 돌, 크롬, 나무 등등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일상적 사물들을 미술 표현의 재료로 삼았다. 그러한 미술운동의 이론적 주창자가 얼마 전에 코로나 감염증(Covid 19)으로 숨진 제르마노 첼란트였던 것. 그런데 이러한 아르테 포베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일어난 ‘모노하(もの파(派)/Monoha) 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리타 가츠히코는 사각 입방체모양의 덩치 큰 숯을 통째로 제시한 연작(SUMI/먹)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미술사적 선례들을 염두에 두고 이배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가 추구하는 풍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숯과 관련시켜 볼 때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긴 깊은 내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배의 숯 작업은 다양하다. 그리고 숯을 매재로 한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배의 숯 작업의 배경에는 먹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먹은 소나무 등의 나무를 태울 때 생성되는 그을음을 아교에 갠 것으로 숯과 불가분의 친연성을 지닌 문방사우(文房四友) 가운데 하나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이배의 작업은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전개돼 왔다. 숯을 잘라 캔버스 표면에 붙이고 이를 사포로 갈아 매끄러운 단면의 조합을 보여주는 ‘불의 근원(Issu du Feu)’, 숯을 공중에 매달거나 바닥에 늘어놓는 설치작업, 밀랍을 연상시키는 크림색의 연한 바탕 위에 숯을 배합한 먹을 사용, 넓은 붓으로 드로잉을 한 작업, 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숯가루를 접착한 후 기하학적 형태로 두껍게 쌓아올리는 작업(<풍경(Landscape)> 연작), 캔버스에 표면이 일정한 숯조각들을 부착한 후, 그 위에 흰색 백묵으로 직선을 그은 드로잉 작업 등등이다.
 부산의 조현화랑(달맞이점, 해운대점), 서울의 갤러리2, 제주도의 갤러리2 중선농원 등 모두 네 곳에서 동시에 열린 이번 이배의 초대전에는 ‘Issu du Feu', 'Landscape’, ‘Acrylic Medium’, ‘Drawing’ 등 약 30여 점이 출품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드로잉 작품으로 서울의 갤러리2에서 전시된 ‘Issu du Feu’와 ‘Drawing’ 작품이었다. 전자는 숯으로 변한 나무쪽 수십 개를 이어 붙여 표면을 매끄럽게 간 후에 그 위에 흰색 분필로 무심하듯 선을 그은 것이며, 후자는 숯 먹을 넓은 붓으로 칠한 드로잉 작품이다. 선묘는 ‘U'자 형태를 기본으로 삼아 지그재그식으로 반복된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숯 먹물을 넓은 붓에 듬뿍 묻혀 지그재그식의 선묘를 보인 드로잉 작품들은 마치 옅은 베일처럼 서로 겹칠 때 드러나는 숯 입자의 미묘한 물성이 생생하게 드러나 그 표정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종이나 비단에 스며들 때 드러나는 먹의 농담 효과와는 달리, 숯이 물기를 머금기 때문에 입자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숯 특유의 물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배는 숯이라는 단일 재료를 가지고 20여 년 동안 물성적 실험에 몰입한 작가이다. 아마도 그만큼 숯에 대해 많이 아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숯은 이제 한 몸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육화(肉化)돼 있다. 그 기나 긴 진행 과정의 끝은 과연 어디쯤일까? 다량의 숯을 이용한 설치작업이 섬세하면서도 복잡한 포장의 풍경을 보여주는 반면, 이 드로잉 작업은 그 반대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단순과 복잡, 이 두 행로의 중간에 그가 서 있는 것이다.  

                              <아트인컬처,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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