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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와 대안적 사회 교육의 가능성 나의 페이스북(facebook) 활동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윤진섭

소셜 네트워크와 대안적 사회 교육의 가능성
나의 페이스북(facebook) 활동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소셜 네트워크’가 가져다 준 충격
 소셜 네크워크(Social Network)? 페이스북(facebook)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인생과 사업을 소재로 한 영화. 아마 이 영화를 본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실감과 충격을. 
 페이스북은 이제 사용자가 6억 명을 넘어서면서 인구 면에서 볼 때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의 슈퍼 파워로 등극을 했다. 체제만 갖추지 않았을 뿐 이미 국가라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허허,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국가의 기본 요건인 영토가 없는 국가, 즉 사이버 국가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가가 현실의 국가가 아닌 가상의 국가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 아닌가? 이건 너무 흥미 있는 발상이다. 짜잔.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공상을 해 본다. 자, 나도 이제 나라를 하나 건설해 보자. 이름 하여 ‘파자마공화국(Pajama Republic)’. 간단하다. 페이스 북의 ‘그룹 만들기’로 들어가 국가 명을 쓰고 등록을 한다. 상황 끝. 드디어 국가 하나가 탄생했다. 페이스북에서 검색을 하니 ‘Pajama Republic’이란 국가명이 컴퓨터 화면에 뜬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 최병원 교수에게 참가 신청(add)을 보낸다. 그러자 즉각 그 친구의 사진이 나타난다. 나라의 시조(始祖)인 나, 즉 윤진섭을 포함, 인구 단 두 명의 국가. 야, 이거 단출해서 좋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아닌가? 곧 기네스북에 등재되겠구나. 그러나 실망은 하지 말자.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이제 파자마공화국으로 가 보자. 
 자, 이제 그럼 파자마 공화국의 영토를 어디로 정한담? 파도가 넘실대는 한적한 섬으로 할까? 야자수가 우거지고 꾀꼬리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곳. 좋다. 나는 구글(Google)을 검색하여 풍광 좋은 사진 하나를 골라 복사한 다음, 바탕화면에 깐다.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와 공유(share) 항목에서 사진을 골라 클릭을 한다. ‘upload a photo’에 커서를 대고 누르니 차르르 차르르 하고 파란 막대가 구동하기 시작한다. 이젠 나라를 소개하자. 여기가 인터내셔널 한 공간이니 이왕이면 영어로 쓰자. 
 잠시 후 나의 핫 메일(hotmail) 계정에 절친한 프랑스 친구인 알랭 파파로네(Alain Papalone)의 이름이 뜬다. ‘Pajama Republic’도. 나는 즉각 생각한다. 아, 호기심 많은 알랭이 드디어 이민 신청을 했구나. 프랑스에 살기가 싫은 모양이다. 좋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인증(confirm) 버튼을 누른다. 주민등록번호 3. 페이스의 친구 수가 오천 명으로 제한돼 있으니 PJ0003이다. 이 숫자가 다 차면 다시 지국(支國)을 만들면 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속국을 만들었지만 사이버 월드에선 그런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지국 이름을 미리 구상하자면 Pajama Republic/Passion, Pajama Republic/Potato, Pajama Republic/Rose, Pajama Republic/Kimchi...... 매우 마음에 든다. 흡족하다. 그러는 사이에 또 한 사람의 이민 신청이 왔다. 이번에는 미국의 절친한 친구인 다이아나 위건드(Diana Wiegand) 여사다. 1947년 생. 이 사람은 자기의 프로파일에 다양한 생활정보를 올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마음씨 좋은 여성이다. 인자하기가 꼭 어머니 같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디어맨인 최병원 교수가 어느새 국기를 제작해 포스팅을 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파랑색 바탕에 ‘Pajama Republic’이란 고딕 변형체의 흰색 글씨가 선명하다. “Fantastic! Thank you, prof. Choi” 내가 서둘러 댓글을 단다. 'I love it' 언제 봤는지 다이아나 여사의 댓글이 올라온다. “You are the best!' 알랭도 한 마디 거든다. 어느새 인구가 네 명으로 늘었다. 잠시 후에 화면을 보니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의 생태음악 작곡가 미키 슌지(Miki Shunji)의 애드 신청이 와 있다. 물론(Of course)! 저 친구에겐 국가를 작곡하라고 해야지. 자, 그건 그렇고 이제 진전된 상황을 상상해보자. 
 2년 뒤, 파자마공화국(Pajama Republic: 이하 파자마공화국으로 표기함)은 매우 번창해졌다. 그 사이에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서 꽤 규모가 큰 국가로 성장했다. 친구 수를 5천명으로 제한했던 규정도 개정돼 한 프로파일(profile)당 백만 명씩 친구를 받도록 고쳤기 때문이다. 컴퓨터상의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했다. 그 동안 파자마 공화국은 헌법을 제정하고 국회의원도 선출했으며, 각료도 선임을 했다. 지국(支國)도 열 개로 늘어났다. 세금이 없는 대신 회원들의 다양한 컨텐츠에서 발생하는 기부금으로 예산도 집행한다. 국부(國父)인 나는 스스로 뒤로 물러나 이젠 나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한적한 바닷가에 나가 그림을 그리며 가끔씩 대통령에게서 상황 보고를 받을 뿐이다. 대통령은 스페인 출신 미모의 여성 마마라차다스 비스세라레스(Mamarrachadas Viscerales)다. 이름이 너무 길어 그냥 ‘마마(Mama)’라고 부른다. 마마?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 아닌가? 중전마마, 대비마마 할 때의 그 마마가 아닌가? 그렇다. 내가 그렇게 지어줬던 것이다. 마마라차다스 비스세라레스여, 그대의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가 심히 불편하오. 한국의 옛 조선시대에 마마라고 부르던 고귀한 왕족들이 있었소. 왕을 상감마마, 왕비를 중전마마라고 불렀소. 그러니 이제부터 그대를 마마라고 부르면 어떻겠소. 코멘트 난에 그렇게 쓰니 금방 좋다는 뜻의 ‘like' 표시가 떴던 것이다. 그런 마마, 아니 대통령이 내게 보낸 서류는 유엔(U.N)의 산하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서 보낸 협조공문이다. 나는 바닷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공문의 내용은 아이티공화국이 국립박물관 건물을 신축하려 하는데 후원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알아서 하시오. 라고 코멘트를 한다. “Thanks, Jin' 마마의 댓글이 금방 아이폰 화면에 뜬다. 

국제상상대학을 창설하다. 
 파자마공화국을 건국(建國)하기 전 나는 국제상상대학(International University in Imagination:I.U.I)을 창설하였다. 2011년 2월 17일의 일이다. 개교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못 되는 신생대학이다. 그런데도 회원수가 벌써 350명을 넘어섰다.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일본, 중국 등등 국적도 다양해서 명실 공히 국제대학으로 손색이 없다. 이 대학의 성격과 설립 목적이 다음의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국제상상대학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창의력 개발을 통해 인류의 평화와 행복한 공존을 설립 이념으로 창설된 대안 교육 기구입니다. 2011년 2월 17일 아티스트 겸 미술평론가인 윤진섭에 의해 창설한 이 기구는 페이스북을 바탕으로 회원들 간의 친목 도모는 물론 온, 오프라인을 통해 설립 목적에 따른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될 것입니다. 현재 350여 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가, 예술가, 학자, 사업가, 교육자, 회사원, 주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자연과 생태 등 인간적 삶의 바탕을 이루는 환경 문제를 비롯하여 예술, 문화,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인간 활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심도 있는 토론과 활발한 현장 활동을 통해 인간적 삶의 조건들을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일종의 대안적 교육기구의 성격을 지닌 국제상상대학은 이렇게 해서 출범했다. 페이스북의 역사에서도 선례가 없는 일이다. 
 지금 페이스북의 검색창에 “International University in Imagination”을 써넣고 검색을 하면 “International University in Imagination(I.U.I)” 한 항목만 뜬다. 이는 동일한 대학 명을 가진 그룹이 페이스북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하바드나 예일과 같은 오프라인의 수많은 대학들이 팬(pan) 페이지를 개설하고 있지만, 순수한 온라인 사이버 그룹은 국제상상대학 밖에 없다. 물론 국제상상대학이 캠퍼스와 교수, 학생, 건물, 연구소 등등 대학으로서의 시설과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캠퍼스도, 도서관도, 교실도, 강당도, 교무처도, 학생처도, 연구소도, 주차장도, 식당도, 총장도, 교수도, 학생도, 기타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다. 또한 입학금도, 등록금도, 장학금도, 교과서도, 출석부도, 칠판도 없다. 모든 것은 온라인 공간, 즉 사이버에서 이루어지며 어떠한 형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일한 특징이라면 얼책 친구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가입을 할 수 있으며, 프로파일에 들어와서 글, 사진, 동영상 등을 업로드하거나 포스팅을 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이 아니 열린 공간, 국제적인 개방 대학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회원들은 온라인상에서 어떤 쟁점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언제든지 입, 탈퇴가 가능한 이 개방적인 대학은 회원 자신이 관심을 갖는 특정의 분야나 삶의 현장에서 터득한 지식, 지혜, 노하우 등을 글, 사진, 동영상 등등 다양한 형태로 올릴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의 공유(share)는 상호작용적이란 점에서 가장 장점이 많은 기능이다. 이를테면, 미국인인 다이아나 레건드는 올해 64세인 가정주부인데 그의 프로파일에는 살림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이것들은 다이아나 자신이 집안일을 하면서 터득한 것으로 가령 눌지 않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기술적 노하우가 그녀가 직접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 글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이 정보가 유용하다고 판단한 다른 회원들은 이것을 공유할 수 있다. ‘공유(share)'에 커서를 대고 클릭하면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프로파일에 옮겨진다. 이를 발견한 다른 회원이 또 공유하고, 또 다른 회원이 또 공유하고........그렇게 해서 다이아나의 산지식은 끝없이 번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오프라인 상에서 비유하자면 옛날의 봉화나 횃불, 주변의 비근한 예로는 담뱃불 붙이기와 같다. 우리의 옛 풍습에 쥐불놀이라는 것이 있는데, 정월 대보름날 달집을 태우면서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들판에 나가 횃불로 여기저기에 불을 붙이면 그런 장관이 없었다. 아무튼 이 공유 기능은 댓글과 함께 페이스북의 가장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나는 한 회원과의 대화에서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국제상상대학은 열린 공간입니다.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과주의에 빠진 우리는 그럴 듯한 피드백을 요구하고 그것으로 평가합니다만 제 생각은 미적 교육이라는 것이 그처럼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군불을 때듯 서서히, 이런 담론 하나 대화 하나도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조그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교육적 효과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저는 제 열정적인 친구인 Diana가 한글로 쓴 제 글을 읽고 코멘트를 달아서 깜짝 놀랐는데 어떻게 알았냐니까 구글 번역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면서 소개를 해 주더군요. 무려 30개 언어를 번역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세상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 제가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의 발견 시기에 살았던 선사인은 그 이전에 생식을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맛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행운아들이었습니다. 원근법과 항해술이 발달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대단한 광영을 누릴 수 있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시기에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비해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는 점에서 역사의 전환기는 폭넓은 비전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초두에 소셜 네트워크가 갖는 의미는 대단합니다. 5백년 만에 찾아온 전환기이니까요. Diana가 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지도 모릅니다. 이쯤 되면 거의 환상이지요.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국제상상대학에 ‘add’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현재 페이스북에 <Green+You>라는 생태 연구 및 환경과 자연 보호에 관한 그룹을 창설, 천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최병원 교수가 국제상상대학의 멋진 로고를 디자인하고, 프랑스의 예술가 알랭 파파로네는 ‘Snaky’라는 귀여운 마스코스를 제작해줘서 국제상상대학은 순항(順航)하는 중이다. 

‘부러진 삽(Broken Shop)’ 이야기
 이제는 국제상상대학과 파자마공화국 창설의 모태가 된 ‘부러진 삽’에 대해 소개할 차례다. 
 2010년 11월 22일, [Pan Asia Performance Festival]이 열리는 문래예술공장에 가던 나는 도로변 화단에 버려진 부러진 삽자루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은 앙상한 가지만 무성한 화초들 사이에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지나쳤다가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다시 가 그걸 주워 가지고 행사장으로 갔다. 삽자루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문득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팀원에게 매직 팬을 달라고 해 삽자루에 ‘Broken Shop’이라고 썼다. 손잡이 부분에는 정자로 ‘부러진 삽’이라고 썼다. 아무 쓸모없던 죽은 나무가 생명을 지니고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부러진 삽을 실제로 접한 사람은 알 게 될 것이다. 왜 그것이 'Broken Shop'이 된 줄을. 삽의 손잡이 부분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진실. 그것이 실제의 삽자루에 담겨있다. 이렇게 해서 부러진 삽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나는 삽자루에 당시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가들에게서 사인을 받은 뒤 그것을 들고 각자 다양한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이들이 얼마나 독특한 아이디어로 이 삽자루를 대했는가를 말해준다. 입에 문 사람, 삽자루를 사이에 두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 삽질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포즈들이 등장했다. 
 2010년 12월 12일, 나는 페이스북에 [Broken Shop]이라는 그룹을 창설하고 친구들을 모았다. 많은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애정을 갖고 ‘Broken Shop’을 돌봐준 친구들도 여러 명 있다. 프랑스의 예술가 알랭 파파로네(Alain Papalone)는 ‘Broken Shop’의 생애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그는 여러 점의 작품으로 그에게 옷을 입혀줬다. 그 정성은 여느 애견가가 사랑하는 애견에게 쏟는 것 이상이다. 나는 앞으로 이 그룹의 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이처럼 페이스북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예측불가능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매력이다. 그것의 매력은 예정된 항로를 가는 것이 아니라 옆길로 새고, 새 길을 개척하고, 다른 길로 건너뛰고, 온 길을 다시 가고, 갈 길을 예상하여 미리 길을 만드는 데 있다. 그것은 선형적인 구조가 아니라 땅속줄기와 같은 리좀(rhizome)의 구조를 닮았다. 그런 구조란 대체 어떤 것인가?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제 인류는 ‘땅속줄기(rhizome)’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면서 연결된다. 영화 아바타의 대사 중에 주인공인 제이크가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1조개의 나무들과 연결돼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은 리좀을 연상시킨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사이버 상에서의 연결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선사인들의 동굴속 삶은 제의(ritual)를 통한 환상의 세계와 생존이 위협을 받는 절박한 현실이 결합된 삶의 한 축도이다. 그들은 동굴 벽에 죽여야 할 대상인 소들을 그리고 거기에 창을 꽂는 동작을 통해 소를 실제로 죽인 것으로 믿었다. 이성으로 무장한 근대인(modern man)은 상징과 신화, 설화를 죽인 장본인이다. 문명의 장구한 진보의 결과물인 종이는 이제 인간의 상상력을 만화의 작은 칸막이 속에 가둔다. 어린이나 원시인은 팔이 잘린 만화의 컷을 보면 실제로 팔이 잘린 것으로 믿는다. 이는 선사인들이 동굴 벽에 소의 모습을 누대(累代)에 걸쳐 겹쳐 그린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나는 ‘동문서답(東問西答)’처럼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상상의 공간이 있다.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처럼, 선승(禪僧)이 던지는 법어(法語)처럼, 한 마디의 말이 진리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러면 부러진 삽의 운명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Broken Shop’의 프로파일에 “‘부러진 삽’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깊이와 넓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때로 화산도 될 수 있고, 또 때로는 달콤한 사탕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며 또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썼다. 그것이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주술적 힘을 발휘했는지 그 이후에 흥미 있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은 부러진 삽의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2011년 2월 2일, ‘Broken Shop’의 회원인 볼프(Wolf Nkole Helzle)가 벌겋게 녹이 쓴 삽날의 사진을 프로파일에 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게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뒤뜰에서 발견했다고 즉각 코멘트 난에 썼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혹시 걸작이 될지 모르니 잘 간직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Broken Shop’의 일부이니 이미 걸작이 된 거나 진배없다고 능청을 떨었다. 
 이 일화는 그다지 길지 않은 부러진 삽의 생애에서 첫 번째로 일어난 ‘사건(event)’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즉각 마르셀 뒤샹의 <샘>를 떠올렸다. 191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던가?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하여 [앙데팡당전]에 6달러의 출품료를 내고 출품한 그것은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것이 심사에서 떨어지자 뒤샹은 심사부위원장 직을 사임하고 그 사건의 전말을 잡지 <장님>에 기고하지 않았던가? 그 후 <샘>은 원래의 것은 없어졌고 두 번째 것은 1951년 뉴욕에서 시드니 재니스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세 번째 것은 1964년 밀라노에서 슈바르츠에 의해 여덟 개 한정판으로 주문 생산되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부러진 삽이 뒤샹의 <샘>의 계보에 속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부러진 삽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내가 화단에서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잠깐 눈길만 주었을 뿐 그냥 지나쳐 갔다. 그러다 한 열 발짝쯤 걸어가던 나는 어떤 알지 못 할 힘에 이끌려 되돌아가 그것을 손에 쥐었다. 나는 부러진 삽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면서 문래예술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놈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뭐라고 지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broken'이라는 영어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부러진’이라는 뜻이다. 그때 이어서 퍼뜩 떠오른 단어가 ‘shop'이다. 상점, 그렇지. 그건 ‘삽’과 매우 비슷한 발음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Broken Shop’이란 영어 명이 탄생한 것이다. 
 이 부러진 삽과의 만남 이후 대략 이십 일정도가 지난 어느 날, 나는 페이스북에 ‘Broken Shop’이란 이름으로 그룹을 하나 개설했다. 그리고는 프로파일에 검정색 의자에 부러진 삽을 세워놓고 찍은 사진을 얼굴로 등록했다. 이제부터 네 삶을 살아가거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2011년 1월 25일, 제주도에 놀러간 나는 서귀포 항을 향해 길을 걷다 길옆 축대의 돌 틈 사이에 끼워져 있는 삽날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처음 봤을 때 그것은 돌 틈 사이에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집에 두고 온 부러진 삽자루를 상기하면서 짝을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삽날을 가로수에 기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해서 부러진 삽은 볼프의 것과 내 것을 합쳐 모두 두 명의 신부를 맞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인연이라면 참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파자마공화국으로 
 다시 파자마공화국으로 가보자. 때는 1913년, 어느덧 파자마공화국이 탄생한지도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Broken Shop>과 <국제상상대학(International University in Imagination:I.U.I)> 회원들의 노력과 얼책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힙 입어 파자마공화국은 이제 인구가 천만을 넘는 나라로 성장을 했다. 국제연합(UN)에도 가입을 하여 회원국이 되었다. 헌법과 각종 법령이 제정되고 각종 행정부서와 의회가 생겨났다. 파자마 공화국은 복지국가다. 국가의 재정은 회원들의 다양한 컨텐츠에서 발생하는 기부금과 후원금에 의존하는데, 재정은 늘 넉넉하여 국제상상대학에서 평생교육이 이루어지고 부러진 삽 그룹을 통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파자마공화국은 범죄가 없는 나라지만 부득이 하게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인터넷을 제한하는 법령이 매우 발달해 있다. 페이스북에 기반을 둔 국가에서 인터넷을 제한하는 것은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자마공화국의 회원들은 이 형벌을 매우 두려워하여 여간해서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와 의회의 의원은 행정위원회에서 개발한 앱(app)을 통해 회원들의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파자마공화국의 회원들은 권력욕이나 명예욕이 없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임기를 명예롭게 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다양한 사이트에 접속하여 취미 생활을 한다. 2년여의 기간동안 파자마공화국에는 많은 그룹과 대학이 생겼다. <Broken Shop>과 <국제상상대학>은 가장 전통 있고 오래된 그룹으로 회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최병원 회원이 설립한 <Green+You> 그룹도 환경과 생태, 자연보호와 관련된 그룹으로 많은 회원들이 가입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파자마공화국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나노과학기술과 유전자공학, 외계접속통신사업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많은 재원이 발생, 회원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파자마공화국에는 오프라인 국가에 염증을 느낀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와 학자들이 많다. 미국 출신의 한 과학자는 나노과학기술의 전문가인데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과 세균 크기의 로봇을 개발, 혈액을 타고 뇌 속으로 들어가 고장 난 부위를 고치는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있다. 외계접속통신사업은 앞으로 다가올 외계인과의 접속에 대비한 사업이다. 어느 날 비행물체를 타고 지구로 오게 될 외계인과 접속에 대비하여 언어, 과학기술, 의료 등의 분야로 나누어 연구가 한창이다. 여기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회원들이 보유한 지적 컨텐츠에서 발생하는 수입 중 법률이 정한 수수료와 국가가 운영하는 웹(web) 기반의 각종 사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에 의존한다.     
    
 공상에서 나오며 
 이제까지 한 이야기들이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을까? 아이구,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상이 언젠가는 실현이 된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잠수함과 비행기를 고안했다. 그런데 벌써 오래 전에 그것들은 실현이 되었고, 인류는 지금 우주탐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나노과학기술, 유전자공학, 외계접속통신사업 등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창의력에서 나온다. 국제상상대학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창의력 개발을 통해 인류의 평화와 행복한 공존을 설립 이념으로 창설된 대안교육 기구다.”
 파자마공화국도 상상력에 기반을 둔 창의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단지 공상에 불과할 뿐일까? 사이버 국가, 마치 선사시대의 씨족사회처럼 벌집의 쪽방(cell) 같이 미분화(微分化)하는 시대가 아니 온다고 어찌 장담할 것인가?  

이 글은 2011년 유럽문화예술학회에 발표한 글을 알맞게 줄여 보완한 것임을 밝혀 둠(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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