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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생성, 소멸의 원리로서의 ‘주름’에 대한 미적 천착

윤진섭

   만물의 생성, 소멸의 원리로서의 ‘주름’에 대한 미적 천착   

                                   윤 진 섭(미술평론가)

 단색으로 깨끗이 밑칠이 된 캔버스에 빨간색 물감으로 중심점을 찍는다. 김영자의 <생성ㆍ소멸>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또한 앞으로 몇 날 며칠이나 지속될 지 모를 인고(忍苦)의 작업이 비로소 첫 생명의 울음을 터트리는 탄생의 순간이기도 하다. 
 유크리드 기하학의 창시자인 유크리드가 <기하학원론>의 첫 문장으로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라고 정의한 이래, 모든 도형의 기본적 구성요소로서의 '점(point)'은 실체가 없는 가상적 개체를 일컬어 왔다. 이처럼 순수한 사유의 대상으로서의 점은 일정한 크기도 없고 공간도 차지하지 않지만, 특정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 
 반면에 김영자가 그린 점(dot)은 일정한 크기를 지닌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로써, 2018년부터 그가 그리기 시작한 <생성ㆍ소멸>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김영자는 거기서 시작해서 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전히 눈짐작으로만 원을 그려나간다. 원은 중심에 존재하는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서 파상(波狀)의 형태로 점점 커져 나중에는 백호 혹은 그 이상 되는 커다란 정방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면 실로 ‘인고(忍苦)’라는 말 외에는 달리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시간의 축적을 알게 된다.   
 김영자는 원하는 색과 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파렛트 위에서 물감을 혼합하여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고 이를 붓에 찍어 캔버스에 짤막한, 그러나 면밀하게 계산된 선을 긋는다. 주로 파랑과 빨강 계열의 색들이며, 그 사이에 흰색을 곁들인다. 그러니까 어떤 색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최종적으로 나타난 색은 주조색, 가령 빨강이나 파랑 등이 강조되지만 대개는 그러한 색의 기미를 지닌 중성색들이 지배적이다. 이는 아마도 극단을 싫어하는 작가의 기질에서 나온 것 같다. 
 다음에 살펴봐야 할 것은 제작기법에 관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영자가 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은 옛날 시골에서 아낙네들이 맷방석을 만드는 방법을 연상시킨다. 둥근 맷방석을 만들 때 맨 처음 시작은 가운데에 가는 새끼줄을 여러 갈래의 방사상(放射狀) 형태로 놓은 다음 잘 다듬은 볏짚을 일일이 엮어 나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크기가 점점 더 커지면서 둥근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씨줄과 날줄에 의한 정교한 교직(交織)의 행위는 나중에 사람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맷방석의 기능으로 그 제작 목적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김영자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순수한 예술적 행위이다. 그것은 공예처럼 실용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맷방석의 제작방식을 연상시키나 그 목적은 판이하다.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김영자는 그림을 그릴 때 느끼는 희열이나 쾌감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도 때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극단의 양가적 감정을 오간다. 선을 긋는 단순한 동작에서 오는 지루함을 참아야 하고, 한번 시작하면 최소한 몇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고통의 순간을 넘겨야 한다. 그녀가 30호 크기의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은 최소한 한 달이 걸리는 이유이다. 물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펼쳐놓고 동시에 진행하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그 어느 것이 됐든지 간에, 20여 차례나 반복되는 선의 겹침이 결과적으로 뉘앙스가 아주 섬세하고도 미묘한 색의 효과를 낳는 직접적인 이유인 것이다.  
 원로 단색화 작가들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행위의 반복을 논하는 대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70년대 이후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무수히 선을 그어 종이가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그린 최병소의 발언은 경청할만 하다. 그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선을 긋는 작업에 빠져있다 보면 나중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몸의 생생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선을 긋는 반복적인 행위는 일종의 수행의 과정에 가깝다. 시선을 좌우상하로 연신 살피면서 선을 긋은 행위는 정신의 통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녀는 캔버스의 바탕에 원을 비롯한 그 어떤 작도(밑그림)도 없이 순전히 목측(目測)으로만 그 일을 수행한다. 그 그림에는 평면에 그린 것이되, 빨강과 파랑 등 서로 다른 색에서 오는 색가(色價)의 차이와 선의 교차에서 오는 음영의 차이가 만드는 일루전이 존재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평면 위의 선이 분명한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요철이 있는 주름으로 보이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사유의 핵심은 주름이다. 주름은 한 마디로 접힘과 펼침이다. 나의 작품의 구성요소이며 주제인 주름은 접힘과 펼침으로 감소하고 증폭하면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삶 속에서 들어간 골과 봉곳하게 솟은 마루로 드러나고, 시간과 공간, 의식 속에서 사유의 흔적, 문명의 영토가 되기도 한다.”  

 이 글을 통해 김영자는 우주와 삶, 그리고 문명의 원천으로서 주름을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름이란 펼침과 접힘이 반복된 형태로서 아코디언의 바람통이나 60년대 유행했던 주름치마에서 볼 수 있듯이, 동일한 패턴의 반복적 형태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어둠을 뜻하는 음(陰)과 밝음을 뜻하는 양(陽)의 반복을 가리킨다. 이를 그녀의 작품 제목인 <생성ㆍ소멸에 대입하면, ‘펼침(양)’은 생성으로써 사물의 태어남, 자람, 이루어짐, 발전 등을, ‘소멸(음)’은 사라짐, 끝남, 줄어듬, 쇠퇴, 마침 등의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김영자는 원형의 근작이 나타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면들의 겹침으로 대변되는 <생성ㆍ소멸> 연작을 제작한 바 있다. 이른바 난색과 한색을 위주로 한 이 연작들은 겹쳐진 색면들이 자아내는 미묘한 색의 뉘앙스 표출에 주력한 작품들이다. 그 어느 작품이든 기조만 달랐지 현재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주름’으로 대변되는 생성과 소멸의 철학을 담아내는데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김영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존의 화풍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식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앞서 많은 고뇌가 따랐을 줄 믿는다. 그러나 이 작품들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름’의 심오한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김영자의 새로운 화풍의 탐색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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