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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의 타살>과 그 이후, 리메이크 해프닝의 의미

윤진섭

<한강변의 타살>과 그 이후, 리메이크 해프닝의 의미

윤진섭(미술평론가)

2018년 10월 13일 토요일 오후 4시. 양화대교 아래 양화한강공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이 다니는 보행로 바닥 여기저기에는 시선을 끄는 사진이 박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거기 흑백의 포스터에 붉은 색으로 인쇄된 글씨들이 시민들의 눈을 자극했다. 한강변의 타살 1968ㅡ2018. 그렇다. 이 날은 50년 전에 한강에서 벌어진 해프닝 <한강변의 타살>을 기념하기 위해 후배들이 모여 당시의 상황을 재연(remake)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8년의 비슷한 시기에 강국진(1939-1992), 정강자(1942-2017), 정찬승(1942-1994) 등 당시 20대 약관에 불과한 세 사람은 그 동안 준비해 온 해프닝을 벌이기 위해 제2한강교 다리 밑에서 약 1백 미터 떨어진 모래사장으로 들어섰다. 해프닝이 벌어질 현장에는 기자들을 포함, 관객 수십 명이 모여들어 지금부터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잔뜩 기대감에 휩싸여 있었다. 날씨는 시월답지 않게 살을 에이는 듯 강바람이 매서웠다. 날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살벌했던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들 삼인은 예술적 도발과 저항을 감행했다. 모래를 파 자신의 몸을 파뭍은 후 자신들이 직접 한강에서 떠온 양동이의 물을 사람들로 하여금 뿌리게 하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 자신들을 타살했음을 증언해 줄 목격자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하나의 메타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당시 나이가 20대 약관인 점을 감안한다면 언론 검열과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강변의 타살>이라는 제목이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래구덩이에서 나온 뒤 몸에 두른 비닐 가운에 '문화 사기꾼(사이비 작가)', '문화 부정축재자(사이비 대가)', '문화 보따리 장사(정치작가)' 등등의 문구를 적어 미술계를 비판함으로써 정권의 예리한 감시의 눈을 피해갈 수 있었다.

당시 전형적인 '앙팡 테리블'의 행태를 보인 이들은 미국의 히피문화와 프랑스에서 발원한 68혁명의 여파로 한국의 젊은이들의 심장을 강타한 통키타 문화에 젖어들었다. 명동의 세시봉은 그런 젊은이들의 빈 가슴을 뜨겁게 채워주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또 하나의 도발적인 해프닝을 벌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강변의 타살>이 발표된 1968년은 국전의 심사 비리가 터진 해였다. 국전을 둘러싼 잡음은 그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이 해는 달랐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남관 화백이 심사위원 자격으로 국전 심사에 들어갔다가 도무지 목불인견의 비리를 목격하고 심사장을 박차고 나와 심사부정을 언론에 폭로한 것이다. 이들은 몸에 두른 비닐가운에 쓴 문구는 바로 당시의 국전 비리를 풍자한 것이다. 작가로서 사회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국전에의 진출이 봉쇄된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이란 해프닝과 같은 난해한 문법을 지닌 발언뿐이었던 것이다.
문재선, 심혜정, 정기현, 허은선 등 4인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 <한강변의 타살> 리메이크 해프닝은 원작이 발표된 때로부터 50년이 흐른 뒤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거의 창작에 가까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지형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었던 모래사장은 공원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들은 거대한 마대 자루에 모래를 채우고 그 안에 들어가 메가폰으로 구호를 외치는 행위를 했다. 양동이로 물을 떠오거나 관객들의 물세례 행위가 끝난 뒤 비닐 가운에 글을 쓰는 행위도 원작에 충실하게 이루어졌다. 이 해프닝 재연은 작가들이 오랜 기간동안 공을 들이고 연구와 토론을 한 끝에 나온 것이다. 문헌 연구와 인터뷰, 수 차례에 걸친 현장답사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좋은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었다. 작년은 한국 행위미술이 50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이었다. 차제에 이미 흘러간 옛 사건을 다시 소환하여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문화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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