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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과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의 삶과 꿈

윤진섭

유목과 디아스포라, 카자흐스탄의 삶과 꿈
                          
                                              윤 진 섭 

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주최한 [포커스 카자흐스탄 : 유라시안 유토피아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공화국의 근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중앙아시아에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하여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등 많은 국가들이 있지만 국내에 이처럼 대규모로 이 지역의 근현대미술이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카자흐스탄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57명(팀) 작가의 100여 점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1부는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과 키스티프 주립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2부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급격한 정치적 격변과 사회변혁을 통해 나타난 경제적 변화, 그리고 글로벌 이슈를 반영한 신세대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작품에 반영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자흐스탄공화국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최근 들어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하여 타쉬겐트, 카자흐스탄 등등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에 대한 교역을 바탕으로 많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고 막연한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지닌 의미라면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이처럼 막연한 인상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 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우즈베키스탄, 키르시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공화국으로 출범한 것은 지난 1990년대 초반이었다. 격동하는 현대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들은 각자도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합체의 필요성을 인식,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으로부터 탈퇴, 1993년에 독자적인 연방체의 구성을 시도했다. 그만큼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여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 것이 과거 30년간 중앙아시아 지역에 불어 온 새로운 변화였다.  
 카자흐스탄은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중심을 이룬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연해주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정책은 한민족에게 디아스포라의 사무친 한(恨)을 남겼다. 이곳에서 거주하다 작고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삶이 말해주듯이,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제3인터내셔널’, ‘아방가르드’ 라는 이름의 꼴호즈(집단농장)을 건설, 낯선 땅에서 신산한 삶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절절한 사연이 있기에 카자흐스탄은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번 전시의 의의라면 아마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 한다. 디아스포라(이산(離散))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래 전에 우리 미술계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변월룡, 니꼴라이 박, 신순남 전의 연장선상에서 이 전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리스 박(Boris Pak), 미하일 김(1923-1990) 등의 고려인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1923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1937년에 스탈린의 고려인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에 정주한 미하일 김은 N.V 고골 무대 및 예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서 메탈루스지스트 궁전에서 예술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초상화와 정물화에 정통한 그는 서정성이 강한 화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번 출품작인 <부채>(캔버스에 유채, 99x79cm, 1980, 카스티프 주립미술관 소장)는 일단의 여성들이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춤의 격렬한 동세보다는 정지 화면을 연상시키는 인체 묘사를 통해 명상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느낌이 짙다. 
 미하일 김의 작품이 보여주는 이러한 정적인 세계는 가령 콕파르(Kok-par)라는 카자흐스탄의 전통 스포츠 장면을 묘사한 카나파아 텔자노프(1927-2013)의 <콕파르>(캔버스 위에 유채, 120x158cm, 1970년대,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 소장)가 보여주는 말과 기수의 역동적인 동세와는 현격히 다른 것이다. 
 1부 전시의 특징은 구상계열의 작고 및 원로 작품을 통해 나타난 유목적 분위기(오랄벡 누르주마에프, <노래>(캔버스에 유채, 110x130cm, 1961,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 소장)와 눈 쌓인 험준한 산악을 소재로 한 아우바키르 아스마이로프의 <높은 산>(캔버스에 유채, 99x120cm, 1981,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 소장)에 나타난 민속적이거나(노래), 리얼리즘적 묘사에 있다. 이러한 경향에 덧붙여 트랙터가 밭을 가는 장면의 묘사를 통해 러시아 리얼리즘의 영향을 보여주는 블라디미르 에이퍼트(1984-1960)의 <처녀지의 폭풍>(캔버스에 유채, 49x62cm, 1954,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 소장)은 생산성 증대를 통해 경제개혁을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Ⅱ.  
소련의 오랜 지배를 받은 탓인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름에서부터 언어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서구의 영향은 현대미술에서도 역시 지역을 막론하고 글로벌한 차원의 평준화를 낳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근현대미술을 다룬 이번 전시는 구상미술에서 추상화, 설치, 개념미술, 미디어아트,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을 소개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일부 원로들의 구상화에는 구소련의 영향이 분명히 느껴지지만, 연령이 낮아질수록 당대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 전시의 2부에 해당하는,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설치, 오브제, 개념미술 등에 주력하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당대의 현실에서 소재를 구하고 이를 작품화함으로써, 적어도 매체 면에서 만큼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는 SNS 매체를 비롯하여 인터넷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평준화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단점도 있지만, 이들의 발언은 유목을 비롯하여 모더니즘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과 세계화에 대한 질문,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배태된 긴장 관계 등이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개진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전통가옥인 유르트(Yurt)를 이용하여 설치와 비디오 아트를 결합한 작품을 제작한 세르게이 마슬로프(1952-2002)의 <바이코누르 2(Bykonur 2)>는 자신이 외계인이 돼 우주로 가는 가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는 유르트를 로케트 형태로 변형시키고 그 안에 T.V 모니터를 설치하였다. ‘바이코누르’란 제목은 러시아가 우주선을 발사한 지역의 이름에서 딴 것으로 종주국인 러시아와 속국인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몽환적이며 유머러스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풍자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오랜 소비에트의 지배는 카자흐스탄 국민들에게 치유되기 힘든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이번 전시의 2부에 출품된 대다수 작품들이 은유와 풍자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소비에트 시대와 당대 현실 사이에서 배태된 갈등과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독립을 했지만 아직도 소비에트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흔은 엘레나와 빅토르 보르브에프 그룹이 짠 길이 8미터 폭 1. 6미터의 붉은 색 카펫에 새겨진 ‘Red Carpet’이란 단어 속에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변모된 사회 경제적 상황은 카자흐스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유목민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콕토르’ 경기를 소재로 한 사이드 아타베코프(1965-  )의 흑백 사진과 영상작업은 말을 타고 싸우는 군중의 박진감 있는   이국적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준다. 관객들은 그의 다른 작품인 <코카콜라 안장>과 함께 이 작품을 통해 현재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겪는 문화 혼성의 동류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길항관계는 비단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3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처한 문화적 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 같은 몽골리안의 후예로서 그 속에 내장된 문화적 DNA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3만 년경에서 1만 5천년 경에 이르는 시기에 우랄산맥에서 발원한 몽골리안 루트는 모두 다섯 개의 갈래로 흩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어키 땅에 이른 길이다. 수렵과 목축을 주요 경제적 수단으로 삼아 척박한 땅에서 생존을 이어온 이들은 유목민족 특유의 문화적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과 아랍 등 누대에 걸쳐 이질적인 피가 섞이는 가운데 형성된 문화적 혼성은 그러한 문화적 DNA를 찾는데 걸림돌이 될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통해 퍼즐을 푸는 것 또한 이 전시가 지닌 묘미가 아니겠는가?       

                                 <Art in Culture, 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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