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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문명의 매개체로서의 인간

윤진섭

자연과 문명의 매개체로서의 인간


 ‘자연’과 ‘문명’이라고 했을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이 둘이 서로 대척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이 있다. 자연은 문명의 요람이며, 자연의 토대 위에서 인간에 의해 문명이 건립돼 왔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문명’이라고 했을 때 문제적 상황이 발생한다. 알다시피 현대문명이 서구 모더니티(modernity)의 발생 이후 오랜 전개과정을 거치는 동안 발달된 과학기술에 의해 그 문명의 모태인 자연 파괴가 가속화돼 왔으며, 인간 소외 역시 그와 동시에 심화돼 왔다. 따라서 자연파괴와 인간 소외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문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자연의 파괴는 수많은 환경문제를 유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서구 계몽주의 프로젝트 이후 산업화와 인구의 증가, 화석연료의 사용 등등 지구의 평균 기온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 시기가 대략 2천년대 초반인데, 극지대와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아 평균 해수면이 높아지게 되면서 저지대의 침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최근 한 강연에서 방글라데시를 예로 들면서 이러한 지구온난화 현상을 경고한 바 있다.
 인간소외는 인간이 자연의 품에서 떠나 도시를 건립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추진된 기계문명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형성은 인간의 소외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일찍이 데이비스 리스먼(David Riesman)은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을 쓴 것이 1950년이니 그때에 비해 현재의 군중이 느끼는 고독의 양태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달이 불러온 산업의 자동화가 인간 노동의 소외를 가속화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참으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이러한 위기적 증상은 세계의 흐름에 대해 예리한 지성과 감각을 지닌 작가들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발언을 하게 만드는 다양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연과 문명은 매우 포괄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작가들이 다루는 소재나 주제가 아무리 협소하다고 하더라도 큰 범주에서 보면 대부분 자연과 문명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도시와 일상을 비롯하여 전체와 개별, 환경과 인간, 자연과 문명, 자본과 인간소외 등등은 오늘날의 작가들이 상투적일 정도로 즐겨 다루는 주제에 속하는 것들이다. 
 윤정원, 금민정, 이준, 정해윤, 차승언, 주세균, 권용래, 김동유, 김강용, 허수영, 손문일, 김성룡, 빈우혁 등 12명의 작가들은 다 같이 한국의 미술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로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통해 국내외 미술계의 중요한 기획전에 초대를 받고 있으며,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해 보면 한국 현재 현대미술의 쟁점과 흐름이 무엇인지 한눈에 파악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지닌 의의라면 무엇보다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개관을 이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윤정원은 새의 깃털과 국화의 꽃잎을 병치하는 채색작업을 통해 형태상으로는 유사해 보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소재들을 한 화면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금민정은 화전민의 주거지와 같은 특정한 장소에 관심이 많으며, 그곳에서 구한 문짝이나 나무, 나뭇잎을 태운 재를 사용한 설치작품을 통해 시간성과 역사성, 삶의 흔적 등을 소환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준은 다양한 색상의 실을 감은 오브제들을 집단적으로 설치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인의 초상을 위트있게 비트는 사회비판적 작업을 보여준다. 정해윤은 사적 공간인 서랍을 소재로 박새와 실을 연결시켜 회화의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변주를 꾀하고 있다. 차승언은 캔버스 프레임과 직조(실) 행위를 통해 기존 회화의 모던 스타일을 비트는 메타 발언을 주제로 삼는다. 주세균은 국보급 도자기의 잘 알려진 이미지를 다른 평범한 도자기에 연필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소위 명품이 지닌 고급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텍스트가 지닌 기호를 해체, 원통형의 세라믹 용기로 재탄생시킨다. 권용래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태도는 빛에 대한 것이다. 물체의 표면과 광원의 빛이 만날 때 이루어지는 빛의 다양한 변주가 특징이다. 40여년간 벽돌만 그려온 김강용은 체로 곱게 거른 모래 위에 물감을 칠해 벽돌을 그림으로써 실재와 환영 사이의 시지각적 딜레마를 연구한다. 김동유의 작품은 마릴린 먼로, 존 F 케네디 등 잘 알려진 유명인사의 이미지가 갖는 사회적 컨텍스트를 중의적인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잘 보여준다. 
 허수영은 숲에 대한 정교한 묘사를 통해 숲이 지닌 원시적 야생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무수히 중첩된 붓질은 숲 특유의 아우라를 잘 보여준다. 겹쳐진 천이나 단순하게 보이는, 인체가 배제된 옷들을 통해 일상적 사물의 환치(데페이즈망)를 시도하는 손문일의 작업도 주목된다. 90년대 초반 고통스런 인간의 내면풍경을 다색의 볼펜으로 그려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김성룡은 시선을 자연으로 돌려 풍경을 그리고 있으나 소외된 것들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이입돼 있다. 빈우혁은 자신의 관심이 쏠리는 주변의 숲을 정직하게 화면에 담아내는 일에 주력해 왔다. 익숙해 보이는 풍경을 생소한 것으로 바꾸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12명의 작가들이 관심을 표명하는 주제는 1) 도시 혹은 개인의 의식과 일상성(윤정원, 이준, 정해윤, 손문일, 김동유), 2) 신령한 숲에 대한 묘사를 통한 자연의 회귀와 인간에 대한 관심(금민정, 허수영, 김성룡, 빈우혁), 3) 미술에 대한 메타적 시선 혹은 회화의 매체에 관한 연구(차승언, 주세균, 김강용, 권용래)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회화를 비롯하여 조각, 도예, 오브제,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이들의 주제는 앞서 분류한 것처럼 대주제인 ‘자연과 문명’에 비하면 다소 협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의 작업은 다 같이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대주제와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을 상정하지 않은 자연은 무의미하며 문명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인간은 자연과 문명을 매개하는 주체로서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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