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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자연존중 사고의 발현

윤진섭

자연과의 동화를 통한 자연존중 사고의 발현

                                             윤 진 섭(미술평론가)
                    
Ⅰ.
 [Green Body]는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주최한 ‘프로젝트 그린 2018(Project Green 2018)’의 행사명이다. 이 행사는 현장 레지던시와 전시로 이루어진다. 현장 레지던시는 2018년 10월 1일부터 9일까지 경기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선재도와 목섬 등지에서 8박 9일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와 연계된 전시는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10월 9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참여작가는 권오열, 김순임, 니카 로페즈, 무르겐 라소드, 마티 밀러, 샤오 리, 임승균, 전원길, 제라 칸, 첸 칭, 최예문, 카린 반 데르 몰렌 등 12명이다. 
 이 행사가 주목되는 이유는 현재 인류가 처한 생존 조건의 변화 때문이다. 왜 이들은 무더위가 심한 한 여름에 굳이 바다로 갔을까? 특히 올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가 높아진 이상기온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지 않았는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현상은 이처럼 인간적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최근의 한 강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극지와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 이를테면 방글라데시의 경우 멀지않은 미래에 지구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대기 및 수질 오염을 비롯한 환경 오염의 문제는 이미 우려의 단계를 넘어 몸으로 체감하는 ‘위기’의 단계에 와 있다. 즉 인간의 생존 조건에 대한 관심
은 이제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산, 그 대책이 심각한 실정이다. 
 이러한 차에 일군의 예술가들이 모여 ‘몸(body)’으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한 것은 결코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즉 ‘Green Body’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촉’으로 지구촌 사회에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발언한 일종의 경고성 행위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들은 예년에 비해 확연한 이상고온으로 인하여 푹푹 찌는 한 여름에 서해 바다의 섬으로 가서 8박 9일간 체류하며 현장 작업을 수행했다. 이들은 일련의 행위(live action)를 통해 공통적으로 자연친화적 태도를 견지했다. 퍼포먼스라기보다는 ‘행위(action)’라는 단어가 더 어울려 보이는 이들의 ‘몸짓(Momjit)’은 매우 독특한 데가 있다. 대개의 퍼포먼스가 자기의식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이들의 ‘짓(Jit)’은 심심하고(plain), 단순하며(simple), 자연스럽다(natural). 즉 마음을 놓은 상태에서 무심하게 행하는 것이 특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 시간이 대부분 짧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길게 지속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작가가 바닷가나 숲에서 모래나 나뭇잎을 덮고 잠을 잔다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연미술가들의 행위와 작업에 있어서 몸은 자연의 일부이자 연장이라는 생각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의식은 자연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同化)되며, 결과적으로는 자연에 귀속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작업이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적 특징은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에게 일말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게는 그러한 인류적 차원의 재앙을 가져온 서구문명에 대하여, 작게는 자원을 낭비하고 고갈시키며, 환경을 함부로 다룬 인간의 습성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하고 있다. 이 일단의 자연미술가들의 이러한 사회참여는 비록 온건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인간적 삶의 조건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미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행위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진정한 예술가들이 드문 현실에서 상업주의와는 무관한 행위를 통해 아방가르드 예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선택된 소수(selected minority)’로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의당 견지해야 할 저항과 도전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의 삶과 예술적 태도는 명상과 관조, ‘최소한의 행위’에 가깝지만 그 이면의 밑바닥에는 이러한 저항, 즉 서구문명이 낳은 폐해에 대한 저항과 치유의 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Ⅱ.
 다음의 기술(記述)은 2018년 10월 9일 오후 1시부터 약 1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작가별 행위의 발표 내용에 대한 것이다. 이들이 이날 발표한 행위는 대부분 서해안의 선재도와 목섬에서 발표한 기존의 워크숍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발표순으로 간단히 적어본다. 
 전원길은 바닷가에서 주운 녹색의 소주병 파편과 쓰레기가 담긴 녹색 페트병에 역시 바닷가에서 주운 로프를 끼우고 약 1분간에 걸쳐 줄넘기를 하였다. 그의 행위는 자연을 오염시키는 인간의 행위들에 대해 쓰레기로 상징되는 오브제를 통해 비판하는 동시에 녹색의 이미지를 통해서는 자연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나카 로펫은 한쪽 끝에 분청사기 컵이 매달린 장대를 머리에 이고 균형을 잡으면서 걸어간다. 장대를 천천히 돌리거나 기울여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물에 컵을 내려놓는 등 일련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신체와 자연 사이의 균형과 긴장관계, 무한순환, 에너지의 활성화에 대해 발언한다. 
 첸 칭은 바위와 대화를 시도하며 “안녕, 나를 보고 있어? 내 존재를 느껴? 너와 나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어. 너는 나보다 나이가 많구나.” 라고 말한다. 그는 우주의 만물과 교감을 시도하며 그러한 행위를 통해 세계가 주체와 서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한다. 
 카린 반 디 몰렌은 비닐이 쳐진 백초의 집 안에 설치된 침대 위에 낙엽을 수북이 깔아놓고 그 위에 나체로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 일상적 동작을 수행했다. 나뭇잎 더미에 인체의 눌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녀는 자연에 인위적 흔적을 전혀 가하지 않고 완전히 동화되는 행위를 보여주었다. 
 무르겐 라소드는 갯벌에서 게들이 동글동글한 집을 만드는 행위에 착안, 갯벌의 흙으로 뭉친 둥근 공 형태의 오브제에 인도산 빨간색의 식용 안료를 부착, 삼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한 후, 전시가 끝나면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 흙이 다시 자연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라 칸은 박스를 해체하여 넓게 편 후 그 위에 아크릴 칼라로 점을 찍어 마치 표범 무늬를 연상시키는 추상화를 제작하였다. 그녀는 팔과 다리 등 몸의 여러 부위에 표범 무늬의 점을 찍은 상태에서 박스 그림 위에 누워 여러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작업은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과 완전히 합치할 수 없는 절망감을 보여준다. 
 마티 밀러는 신체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사진에 찍힌 이미지, 혹은 카메라에 대한 자신의 집착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피사체로서 자신의 몸과 찍힌 이미지의 관계도 마티의 관심거리다. 그는 머리의 일부를 잘라 유리병에 담았으며 소장하고 싶은 관객은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 관심이 있다. 
 샤오 리는 자연에서 구한 오브제를 사용하여 신체와 결부시키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이날 그녀는 숲에서 구한 밤송이들을 커다란 다발로 엮어 몸에 쓰고 자연이 곧 신체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오늘 밤송이가 된다. 나는 중국에서 왔으며....부디 밤(栗)을 즐기고 경험하세요.” 그녀는 자연에 깃든 정녕과 대화를 시도한다. 
 김순임은 돌과 관련된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돌은 그녀의 행위와 설치작업의 주된 소재이다. 전원길의 전언에 의하면 김순임은 바닷가의 워크숖 행위에서 해변에 한 시간 이상 서있으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하였다. 그녀는 이날 다양한 형태의 돌들을 관객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위를 통해 신체와 저연의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권오열은 자신 스스로 ‘몸치’라고 말한다. 몸을 사용한 행위를 한 적은 없으나 나이가 듦의 징표인 주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갯벌에 형성된 주름을 바라보며 자연과 인생의 유비로서의 주름을 인식하고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 행위를 통해 겹침과 펼침의 자연 작용을 인식하게되고 개입의 방법을 찾다가 로프에 돌을 묶어 끄는 행위를 통해 주름을 만들어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방법을 표현하게 됐다고 말한다. 
 최예문은 붉은 망사천을 사리처럼 전신에 입고 바닷가에 서서 바람을 맞는 작업을 통해 자연에 몸을 맡기는 행위를 수행한다. 그녀는 늘 이어지는 미술활동을 통해 미술 안에 살아왔지만 최근의 행위와 설치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말한다.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고 싶고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임승균은 바디아트적인 행위를 보여준다. 측도의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면서 몸은 자연에 맡겨지며 그 과정에서 바위나 조개껍질을 비롯한 자연물이나 지형지물에 부딪혀 몸이 상처를 입게 된다. 그는 그처럼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특정한 조건에서 생긴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아 전시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몸의 수동성을 환기시킨다.  
   
Ⅲ.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번 행사에 참여한 12명의 작가들은 대부분 자연에 동화되거나 자연존중의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친화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은 이들이 일정한 기간동안 수행한 행위의 기록물들로써 전시가 되고 있다. 그것들은 또한 이들의 행위를 기록한 아카이브로써 훗날 이들의 작업을 평가하거나 기술하는데 필요한 소중한 미술사적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번 행사는 국제전인 만큼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기록과 자료의 보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될 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이 행사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2018, 그린바디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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