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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ㆍ자연ㆍ인간, 그리고 역사에 대한 통찰

윤진섭

우주ㆍ자연ㆍ인간, 그리고 역사에 대한 통찰

                                           윤진섭(미술평론가)

 인간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처지와 운명을 극복하고 과감히 도전, 뭔가를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될 존재이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추구할 것을 역설한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70년대에 맹렬히 활동했으나 화단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인 배남한. 그는 인생의 신산과 우여곡절을 극복, 30년 만에 그동안 갈고 닦은 작품을 가지고 드디어 화단에 신고식을 치른다. 따라서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약 3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은 작가로서 그 동안의 부재(不在)를 증명하는 동시에, 그것이 단순히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모색과 존재의 증명을 위한 긴 투쟁의 결과물임을 말해준다. 30년이란 긴 기간에 그가 혼자 겪었을 고독과 불안, 번민, 불운, 병마와의 투쟁, 그리고 작가로서의 위기의식을 어찌 필설로 다할 것인가!
 배남한과 나와의 인연은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다시 재회하게 된 것은 10년 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양평의 작업실을 방문하니 온 집안이 쓰레기통 같은데 거기 보석같은 작품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는 현재의 작업실로 이사하면서 3톤 트럭에 하드보드 전지를 가득 싣고 왔는데,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거의 다 소진되고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작업에 집중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짧은 글에서 그 동안에 있었던 긴 사연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번 전시는 그가 10년이란 긴 세월을 오로지 작업실에 칩거하면서 거둔 찬란한 예술적 성과이다.    
 배남한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이다. 그의 작품에는 세상의 삼라만상이 만화경의 파노라마 형태로 펼쳐진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과 자궁 속의 태아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가운데 자연의 다양한 물상들과 사회상이 특유의 콜라지 기법을 통해 펼쳐진다. 그의 작품에는 겸재의 <금강전도> 등 한국의 고전 명화 이미지와 동서의 고전 명화, 현대의 인물과 사회의 단편 이미지들이 서로 중첩되거나 나란히 이웃하여 공존하기도 한다. 나비와 꽃으로 대변되는 생명의 탄생에 대한 예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죽음의 음산한 장송곡이 흐른다. 오욕칠정을 지닌 인간의 감정이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유감없이 발산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문명이 탱화와 같은 무속의 이미지와 공존하는 것이 배남한의 그림이다. 따라서 ‘모던 이전(pre-modern)’과 ‘모던(modern)’, 그리고 ‘포스트 모던(postmodern)’이 한 화면에 뒤섞여 있다. 그것들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원환적인 사건들의 조합을 보여준다.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이 병치되거나 중첩된 이미지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그처럼 혼란스럽게 보이는 물상들의  이면에는 노자가 우주의 근본 원리로 본 ‘질서’가 흐르고 있음을 도저한 통찰로 잡아내고 있다. 그는 현상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에 흐르는 원리를 보라고 말한다. 허상에 불과한 이미지가 아닌 실체에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뭔가가 오는 중이다. 그의 화면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영어 문구가 간명한 경고의 형태로 등장한다. “You've been waiting is on its way”, “Waiting is on its”, “Waiting” 등등. 그것들은 도대체 어떤 맥락에 있다가 잘려서 소환된 것일까? 그 해석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돌아간다. 
 배남한의 비좁은 작업실에는 초기의 오브제 드로잉 작업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내가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초기, 그러니까 10년에서 5년 전에 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업들은 제외됐다. 70년대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품들을 꺼내 보이기에 <빨레 드 서울> 갤러리의 전시면적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총체적으로 선보일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 배남한의 개인전은 근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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