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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소장품전의 내일

윤진섭

미술관 소장품전의 내일 / 윤진섭



아마도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맥락(context)’일 것이다. 하나의 작품은 그것이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새로운 해석의 옷을 입는다. 그것은 또한 작품을 어떻게 보느냐 혹은 봐야하느냐 하는 맥락적 관점의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은 거듭 태어나며 보다 영속적인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서기 2천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가 열린 이후 세계의 여러 나라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공건축물들을 예술의 문맥 속에 끌어들이는 일에 부심해 왔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래 이 건물은 2차 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템즈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였다. 영국 정부와 테이트재단은 이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국제 공모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스위스의 건축회사인 헤르초크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8년간에 걸친 리모델링 작업 끝에 현재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이 태어났다. 본래의 화력발전소 건물을 외관은 손대지 않고 내부만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개조한 이 미술관은 현재 건물의 중앙에 솟은 무려 99m에 달하는 높은 굴뚝과 기획전시실로 쓰이는 터빈홀의 웅장한 모습이 관람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겨 연간 4백만 명이 찾는 런던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19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방대한 현대미술 계열의 소장품을 이용한 기획 전시들은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4가지 주제, 즉 풍경(사건·환경), 정물(오브제·실제의 삶), 누드(행위·몸), 역사(기억·사회)로 나누고 각각의 미술품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형이 이루어졌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1) 가령, 테이트모던미술관이 기획한 <보다 큰 비말(飛沫): 퍼포먼스 이후의 회화(A Bigger Splash: Painting after Performance)>(2012. 11. 14~2013. 4. 1)전은 잭슨 폴록과 데이빗 호크니 등으로 대변되는 1950년대 이후의 퍼포먼스와 회화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전시로서, 한국의 김구림과 이강소 작가가 이 기획전의 퍼포먼스 부문에 초대된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테이트모던의 사례에 덧붙여 이제 소개하려고 하는 함부르거현대미술관(Hamburger Banholf-Museum fǖr Gegenwart)은 아마도 유럽 전체를 통틀어 폐기된 공공건축물의 문화적 전용을 위한 리모델링의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2) 1846년, 베를린 함부르크 구간의 기차가 머무는 철도역사를 개조한 이 미술관은 19세기의 후반에 지어진 철도역사 건축의 선례가 되었다. 그러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몇 차례의 리노베이션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자 1884년에 문을 닫기에 이른다. 따라서 현재 19세기 철도역 건물의 유일한 유물로 보존되고 있는 이 건물은 폐관 후 약 20여 년간 행정과 주거목적으로 사용되다가 1904년에 운송건설박물관으로 거듭 태어났다.  

이 미술관이 현재 보는 것처럼 총 전시면적이 약 1만㎡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미술관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동관과 서관의 건설 덕분이다. 거대한 역사답게 아치형으로 이루어진 중앙홀 건물을 중심으로 1909년에 동관이 지어졌으며, 1914년에 서관의 건축이 시작됐다. ⩎자 형태의 2층 구조물에 길이가 2백여m는 족히 돼 보이는 긴 부속 전시장은 거대한 기획전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이 건물은 1916년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데, 2차 대전 와중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원래 이 미술관이 있는 지역은 독일분단 이후 수 십 년간 서독과 동독 사이에 사람이 살지 않는 불모의 땅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에 함부르거 역사가 서베를린에 흡수되면서 시 창설 750주년을 맞아 부분적으로 복원되기에 이른다. 1987년, 함부르거반호프는 <베를린으로의 여행(Journey to  Berlin)>을 첫 전시로 이후 40여 년 이상의 세월동안 미술관으로 알찬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 요체는 재단 소유의 컬렉션을 흡수하게 된 데 있었다. 프러시아문화유산재단(Prussi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에 건물이 이양되는 것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에 걸친 재건축 끝에 마침내 1996년 현대미술관으로 재개관하기에 이른 것이다. 함부르거현대미술관은 국립미술관과 막스컬렉션의 소장품을 비롯하여 2004년에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Fridrich Christian Flick Foundation)의 소장품을 장기대여 받음으로써 마침내 좋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3)


새로운 맥락위에 재편성된 소장품

현재 함부르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헬로 월드(Hello World)>(2018. 4. 28~8. 26)전은 ‘증보된 소장품(Revising a Collection)’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소장품을 활용한 기획전이다. 전시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1만㎡에 이르는 거대한 전시장 전체를 할애하여 모두 13개의 장(章)으로 꾸며졌다. 고대 그리스의 토론광장에서 따온 중앙홀(Agora)을 중심으로 본관 1, 2층(중앙홀, 동관, 서관) 전체와 긴 박스 형태의 별관에 주제에 따라 동서양, 북남미, 아프리카 등지의 250여 작가 750여 작품이 수많은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분산, 배치됐다. 

좀 더 상세히 소개하자면, 본관 1층 서관에는 요셉 보이스와 중국의 친 유펜(Qin Yufen)의 거대한 설치작품과 함께 앨런 캐프로, 조지 브레히트, 온 카와라, 조셉 코수스, 마르타 미누힌, 백남준, 볼프 포스텔 등등 다양한 국적과 문화권의 행위예술가들과 개념미술가들 약 20명의 작품이 ‘글로벌 해프닝으로서의 소통-퍼포먼스, 개념미술, 미디어 아트(Communication as Global Happening-Performance Art, Concept Art, Media Art)’이란 주제 하에 펼쳐졌다. 1층 본관과 동관에는 ‘끝나지 않은 용어집(Unfinished Glossary)’이란 관객참여형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는 13개의 장을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 예컨대 반향(Echo), 영향(Influence), 유령들(Ghosts), 경계(Border), 무역(Trade), 나(I), 권력(Power), 네트워크, 언어(Language), 물결(Wave), 가치들(Values) 등의 어휘에 대한 의견을 해외의 작가, 이론가, 큐레이터 등 약 30명에게 의뢰하고 이를 프린트해 벽에 게시하였으며, 동시에 이 단어에 대한 관객의 의견을 묻는 관객참여형 프로그램이었다. 

동관 전시실에서는 요셉 보이스,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사이 톰블리, 키스 헤링 등 함부르거현대미술관의 주력 소장품(막스컬렉션)이 ‘눈의 인간 권리들(The Human Rights of the Eye)’이라는 주제 하에 소개되고 있었다. 이 방의 특징은 작품 옆에 만화의 말풍선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참조물을 게시한 것이다. 말풍선 속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시기와 문화적 맥락에서 따온 것으로 가령 권력을 주제로 한 작품의 옆에는 권력과 관계된 전 세계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채집, 콜라주해 관객의 작품 이해를 위한 참조물로 제시하고 있었다. 주제는 “예술은 사회적 규범들의 요구들로부터 면제된 것일 수 있다.”는 미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burg)의 원리를 소환한 것이다. 또 앤디 워홀의 독자적인 도큐멘테이션인 <타임 캡슐>(1974~87) 방식을 원용한 이 콜라주는 관객들로 하여금 풍부한 참조물들을 통해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이해를 도모할 것을 권유했다.

꼼꼼히 살펴보고 해석하자면 여러 날이 소요될 것처럼 보이는 방대한 전시작품들 속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끈 것은 192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전위예술 그룹 ‘마보(Mavo)’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들의 활동연대가 1920년대, 즉 쿠르트 쉬비터스와 한나 회흐를 비롯한 다다이스트들과 리오넬 파이닝거, 알렉산더 아르키펭코, 바실리 칸딘스키, 페르낭 레제, 엘 리시츠키, 라즐로 모홀리 나기, 블라디미르 타틀린 등등 20세기 초엽에 왕성하게 활동한 예술가들과 동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다다와 미래파적 시각을 견지한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를 비롯하여 요시미츠 나가노, 토무 와다시는 독일을 방문하고 폭풍(Der Sturm) 등 유럽의 전위미술 그룹과 다양한 교류를 가졌다. 이들은 독일에서 돌아와 ‘마보’ 그룹을 창립하고(1923), 선언문과 동명의 잡지를 발행하는 등 유럽과 동시대의 전위예술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이들의 작품이 전시된 방의 한쪽 벽에는 당시의 활동상을 개념적으로 표시한 간단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뉴욕에서 출발하여 동경을 거쳐 유럽으로 곧바로 날아간 선들은 유럽의 여러 전위미술 거점도시들에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도시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취리히, 베를린, 파리, 드레스덴 등 20세기 초반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을 꽃피운 13개의 거점도시들이 상징적인 이미지와 함께 표시돼 있었다. 또한 전시를 보충하는 아카이브 자료들로는 일어로 된 마보 선언문과 마보 잡지들을 비롯하여 독일의 《Merz》 잡지, 무라야마를 비롯하여 마보 작가들의 서명이 쿠르트 쉬비터스를 비롯한 유럽 다다 작가들의 서명과 함께 적혀있는 방명록 등이 전시돼 있어 당시 동서양의 예술교류 상황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진열돼 있었다. 이 무렵이면 한국에서 일제강점기 하에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될 때이니(1922), 일본의 선진적 약진이 더욱 돋보였다. ‘전위의 플랫폼들: 베를린의 폭풍과 도쿄의 마보(Der Strum in Berlin and Mavo in Tokyo)’ 섹션은 ‘헬로 월드’란 전시제목을 폭넓게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한 설정이었다.


한국 문화전략, 타개책은?

‘갈망의 장소들, 폴 고갱으로부터 티타 살리나까지’, ‘휴대할 수 있는 고향-들판에서 공장까지’, ‘지속가능성의 장소들-건물들, 선언문들과 토굴들’, ‘세상의 빨강, 노랑, 파랑’, ‘조상과 후예들-북아메리카의 회화적 문화’, ‘천국 만들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조각적 형식의 적용’, ‘도착, 각인-소요하는 여정으로서의 인디안 모더니즘’ 등 다양한 주제를 지닌 이 전시에 대해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1960~70년대의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를 다룬 ‘글로벌 해프닝으로서의 소통’ 파트는 우리와도 전혀 무관해 보이지 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전지구적으로 벌어진 퍼포먼스, 개념미술, 미디어아트의 확산은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이 시기에 해프닝이라든지 이벤트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개념미술 역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비디오아트나 실험영화가 나타났다. 한국이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한 것이 60년대부터이니 국제적으로도 소개가 된 바 있을 터인데, 백남준을 제외한 그 어떤 한국작가의 이름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이 전시가 지닌 옥의 티였다. 그러나 백남준 역시 한국인이긴 하지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독일관 작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사실(1993)을 감안한다면, 독일과의 근친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헬로 월드>전이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가 하나의 직물로 구성돼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 아니라 소통과 교류를 통해 입증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문화전략도 다시 재고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으며,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이번 전시에서 백남준을 제외한 단 한 명의 한국 작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우리의 대외 문화정책을 돌아보게 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단색화에 관한 영문책을 출판하여 해외에 배포하는 등 의미 있는 사업을 벌이고는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해외전시를 기획해 한국 현대미술의 양상을 외국의 미술관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사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물론 이번 사례를 두고 함부르거현대미술관 담당 큐레이터들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정보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으나,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의 고유 업무와 권한에 속하는 만큼 그보다는 꾸준한 출판과 전시기획을 통해 우리의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1) http://wikipedia,org/wiki/테이트_모던
2) 짧은 지면에도 불구하고 서두에 이처럼 장황하게 미술관의 역사에 대해 쓰는 까닭은 우리 역시 ‘문화역 284’란 명칭으로 옛 서울역사를 개조, 미술관으로 전용한 선례가 있는 바, 여기에는 앞으로 있을 당인리화력발전소의 문화공간 개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불필요한 소모적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3 https://www.smb.museum/en/museums-institutions/hamburger-bahnhof/about-us/profile.html
                                                

                                                           <Art in Culture, 201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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